_외출 2
슬라임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 팔뚝살을 만지고 자는 버릇 때문인지
아이는 부드럽고 시원한 촉감을 좋아했다. 문구점 슬라임보다 직접 만들어서 노는 것이 건강상 좋을 것 같아, 어린이집시절 아이가 하원하고 돌아온 7시부터 수제슬라임을 같이 만든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필요한 애정총량은 부족했다.
관심의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는 내게 울음으로, 등교거부로, 불안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참 다행이란 사실을 한참 후에.. 심리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6살부터인가 나는 아이가 슬라임 놀이 하는 걸 너무 싫어했던 것 같다. 집에서 슬라임을 하면 옷에 묻었을 때 손빨래 거리도 많이 나오고, 뒷정리도 많은데 잘 들러붙거나 방법도 쉽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아이의 관심사에 많이 공감하고 더더욱 편안하게 긴장을 풀어줘야 했다.
나는 4륜 자전거의 체력적 한계를 느끼며 슬라임 카페를 가기로 결심했다.
앉아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조금 비싸더라도 갈만한 슬라임 카페를 물색했고..
평일 오후에 찾아간 슬라임 카페엔 우리 말고 다른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는 의외로 말도 없었다.
어릴 땐 정말 사소한 일까지 뭐든 표현하느라 바쁜 아이였는데 슬라임카페가 낯선 건지 새로운 공간을 차분히 지켜보기만 했다. 나와 딸은 성향이 아주 정반대인데, 나는 외향형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걸 즐기는 반면, 아이는 내향형 집순이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취미부자였다.
내 또래였던 여사장님은 직접 슬라임을 제작하며 여러 인증도 받은 전문지식이 가득한 분이셨고 KC 인증마크에 관한 현수막이 내부에 걸려있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겨했기에 자연스럽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고, 아이도 오늘 만들 슬라임을 고르며 파츠구경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전문적인 슬라임 지식을 보유했던 딸은 사장님이 미쳐 순서를 알려줄 필요도 없이 물풀에 따뜻한 물을 섞고 색감, 향, 파츠까지 넣어 멋지게 바풍 실력을 뽐냈다. 집에서 바풍을 크게 했다고 자랑할 때마다 매번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카페에서 자신감 있게 바풍 실력을 뽐내는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아이는 내게 선생님처럼 슬라임에 대해 설명하며 바풍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는 딸이 하라는 대로 슬라임을 조물거렸다. 쭈뼛거리던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큰 목소리로 신이 나 꽤나 그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아이는 진심, 취미부자였다.
아이는 자신의 취미를 나와 공유하고, 그것을 가르치거나 알려주면서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쿠폰결제까지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우리는 슬라임 카페 옆, 분식집에서 옛날 감성의 컵떡볶이를 먹기도 하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아나갔다.
이 외에도 털알레르기가 있는 아빠 덕에 못 갔던, 고양이 카페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유기묘 카페였는데, 들어가자마자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찬양이 유기묘들을 향한 마음인지 나를 향한 마음이었는지 나는 꽤나 위로를 받았다.
역시나 보통의 초등학생들이 오지 않을 시간대에 그곳에 간 우리는 전세 낸 것 마냥 그곳을 누빌 수 있었지만, 아이는 그곳에서도 쭈뼛거렸다. 그런 아이에게 친절하게 말을 거신 직원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셨는데, 알고 보니 근처 교회 다니시는 권사님이셨다. 조금씩 아이의 관심사에 맞게 고양이 간식부터, 낚싯대, 쳇바퀴 등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아이 역시 이것저것을 만지며 간식도 주고 놀아주기도 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약 40분 거리의 그곳까지 걸어 다니며 저녁까지 먹고 돌아오면 늦은 저녁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보통 저녁 7시 정도만 되면 내일 학교 갈 생각에 뜬금없이 울음을 터트리는 시간이었는데.. 희한하게 그 시간이 점점 9시, 11시로 늦춰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시각이 늦게 온다고 다음날 학교에 가는 꿈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불안한 생각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잠들기 전까진 역시나 다음날 걱정에 쉽게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달래고 어르고 지쳐 잠드는 일상은 반복됐는데, 그 감정이 남아있어선지 다음날 아침이면 바로 눈물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리셋되자 허탈함과 짜증, 분노와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엄마, 나 사라지고 싶어...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또래 같지 않은 표현으로 내 가슴을 후벼 파거나, 자기 몸을 자학하는 모습에...
"그래도 학교는 가야 돼. 힘들면 갔다가 조퇴하면 돼."
단단한 말로 위로하며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