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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_2024년 3월.

by 롤빵
초등학교를 잘 다니면,
엄마가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져줄 거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1학년 생활을 잘 마친 딸의 첫 번째 겨울방학 동안

더욱 공모전에 올인하며, 글을 쓰는데 미쳐있었다.

아이는 결국 2학년이 시작되고 나서도 학교를 거의 가지 못했다.

패턴은 이랬다.

전날 저녁 7시 정도가 되면 갑자기 무섭다며 울기 시작한다.

왜 그러냐고 가서 달래고 안아주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음날 학교 가는 게 무섭다고 했다.

그럼 나는 학교에 누가 괴롭히는 아이가 있는지, 혹은 담임선생님이 무서운지, 아니면 공부가 어려운지 이런 상식적인 질문들로 아이의 마음을 알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이 패턴은 주말에도 계속됐다.

아이의 말처럼 학교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새로운 세계,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1학년도 잘 마친 애가 왜... 2학년은 시작도 못해 본 애가 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내일이 두려운 아이라면, 마음의 병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리 걱정하고 염려하는 우리 부부의 성격이 아이에게 더 불안을 가중시킨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는 사시나무 떨듯 눈빛이 흔들렸고, 내게 안겨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왜 우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멈추지 않는 울음을 계속 멈추길 재촉했다.


'우리 아이는 왜 그럴까? 나는 아이에게 왜 정서적 안정을 주지 못한 것일까? 나는 좋은 엄마가 맞나?'


내 불안과 자책이 중첩되며 결국 나도 아이를 안고 같이 울 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는 내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간 아이와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아이가 즐거워할만한 시간은 같이 보내기로 했다.

“그래. 겨울방학 1달 연장된 셈 치지 뭐. ”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아이와 함께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해 봤다.

아이러니하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밥'이었다.


아이는 먹성이 좋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다.

시댁식구 쪽이 워낙 집밥을 잘해 먹는 데다, 전라도 손맛을 자랑하시는 솜씨를 가졌기에.

남편음식은 무엇을 하든 맛있게 먹는 딸이. 내가 해주는 집밥은 영 못 미더워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려 어린아이처럼 뭐가 맛없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맛없으면 먹지 마."


하며 자존심을 부렸다.


보조작가 일을 하면서, 공모전까지 했었던 나는 아이가 반찬투정 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어릴 때 나는 주는 대로 먹었는데, 얘는 왜 아닌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항상 일에 지쳐있거나 피곤에 젖어 있어 아이의 작은 투정도 잘 수용해 주지 못했던 것 같지만, 그땐 그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의 반복은 자연스레 외식문화로 이어졌고 그렇게 아이 입맛은 사 먹는 입맛으로 길들여졌다.

외식한다고 손가락질받는 세상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 한편이 찔린 지..

일단, 집에서 최대한 밥을 해서 먹이려고 했다.


'집밥은 정성이라는데.. 그래, 내 부족한 솜씨도 정성을 담으면 맛있게 먹어주겠지.'


그것은 실로 그랬다.

대충 하거나 급하게 차린 밥상은 어딘지 투정이 나왔고, 마음과 정성이 들어간 식단엔 아이 역시 맛있게 밥을 먹었다. 같이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나는 툭하면 아이를 요리에 참여시켰다.

김밥 싸는 건 기본이요. 간단한 계란말이 만드는 법을 보여주기도 했고, 호떡을 붙이기도 했으며, 부침개용 반죽을 만들게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는 ‘흔한 남매’에 나오는 특별한 레시피를 따라 만들때면 더욱 좋아했다.


딸은 자신의 관심사에 내가 관심을 보이는 걸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집밥을 해 먹는 시간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추억으로 쌓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즐거워져 갔다.


또 아이가 해보고 싶었지만 번거롭게 느꼈던 베이킹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식용색소와, 간단한 베이킹 재료들을 주문하고, 난이도 1의 스콘 만들기를 하며, 먹기도 많이 먹었지만 여기저기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해 보았다. 무엇보다 먹는 걸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는 아이라 나눠먹는 걸 참 싫어했는데.. 자신이 만들었다는 자부심 덕분인지, 아이가 먼저 나눠주고 싶어 했다. (아빠에게 나눠주는 건 인색했지만 말이다 ㅋ) 그렇게 아이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이면 멀쩡하게 등교하는 다른 집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놀이터에서 울리는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가... 행복해야만 하는 아이와의 현실을 순식간에 처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조금 늦은 우리 아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가 나에겐 절실했다.

아이는 집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 성향이었고, 나는 바깥과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외향형 인간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도 즐겁게 보냈고, 아이는 나와 떨어져 있는 1분 1초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자유를 찾아 일하고 싶은 성인이었고, 아이는 너무나도 부모관심이 절실한 9살 어린이었다.


'나와 너무 다른 너. 그래서 너무 힘든 너...'


하지만 언제까지 힘들어만 할 수 없는 나는, 엄마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보다, '어떻게' 이 일을 헤쳐나가야 할지 강구해야 했다.


'그래. 받아들이자. 남도 아니고 내 자식인데 뭔들 못하겠어?'


혹여 조금이라도 관심 없다는 뉘앙스를 주는 순간,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조마조마한 시간이었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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