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2024년 2월.
이제 곧 2학년 개학이 다가오는데 아이의 마음을 도통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엄마 아빠가 자기를 놓고 가버릴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캠프 담임선생님과 지속적인 통화로, 이렇게 해볼까요? 저렇게 해볼까요? 여러 방법을 의논했고..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딸의 불안을 더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그래도 왜 갑자기? 이렇게 불현듯..?
생각해 보면 여러 찜찜한 구석들이 존재했다.
두 돌이 되기 전까지 엄마인 나와 오랜 시간 단 둘이 보냈던 일상이 아이를 더 외부에서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걸까?
딸이 3살 무렵, 첫 어린이집을 등원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약 11개월가량을 울면서 다녔다.
보통 아이들이 3개월 안에 울음을 그친다던데... 그때 원장님이 보통 우는 아이들과 뭔가 다르다고 입소를 미루는 게 어떻냐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3개월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때 기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까?
같은 나이, 내가 담석이 많아 쓸개를 제거하러 보름정도 입원해 떨어져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큰 무리 없이 외가댁, 친가댁에서 잘 적응했다.. 아예 엄마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받아들였던 걸까?
나중에 환자복을 입은 나를 못 알아봤었다.
7살에는 어린이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딱 하루 선생님과 아이들끼리 어린이집에서 잤었는데..
그때 겨우 2시간 잠들었었다고 선생님이 조금 힘들어하셨다. 나를 만날 때도 힘차게 달려와 안긴 아이의 표정은 즐거움이 아닌 불안이었다. 이때 뭔가를 알아챘어야 했나?
그럼에도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훌륭하게 해냈고, 1학년 내내 담임선생님이나, 돌봄 선생님이나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까지 적응 잘한 모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답을 내리긴 어려운 상황에서 겨울방학을 맞아 캠프가 있어 아이 의사를 물었고, 흔쾌히 간다는 말에 이제 초등학생도 됐고 많이 컸으니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찔리는 것이 있다면...
외동딸을 기르며 나는 수많은 도전을 해왔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8살이 되도록...
웹툰 공모전부터 드라마, 영화 공모전까지, 안 해 본 공모전을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일을 좋아했고, 육아와 주부생활에 적응을 힘들어했다.
덕분에 아이는 3살부터 7살까지 기관에 오랜 시간 맡겨져 있었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애써 모른 척해가며 크면 괜찮아 질거라,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크나보다... 안심하던 겨울방학, 나는 새로운 자기계발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들으러 학원엘 갔고, 아이는 핸드폰이 생겨서 괜찮다며, 유튜브를 보거나 평소 가까이 지내던 아파트 상가 김밥집에서 나를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같이 점심을 먹고 난 뒤, 나는 내 방에서 글 작업을 했고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유튜브를 봤다. 우리는 각자 그렇게 자유를 찾는 듯 보였다.
마치 성인이나 청소년을 대하듯 하는 내 방식에 아무 자책도 없이 그렇게 겨울방학의 1달여 시간이 흘러 2월 초 캠프에 갔다가 일이 터진 것이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여전히 도돌이표 같은 질문에 아이가 무겁게 입을 뗀 건...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마지막 말에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 _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