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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Oct 12. 2020

항공사 인사팀과의 소개팅

이건 총칼 없는 전쟁이다.

#2. 승무원은 아니지만, 승무원 선생닙니다.    


두 눈 씻고 찾아봐도 승무원 지망생을 가르치는 업계에선 나 같은 선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없다. 


승무원 출신이거나, 아나운서와 같이 공인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조차 아니면 항공업계에 관련된 직종의 일을 하였거나 등등.  나처럼 항공업계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방송인 출신도 아닌 사람이 승무원 면접을 가르치는 일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늘 조급했다.     


6년 넘게 승무원 지망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받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다.      


내가 자격이 될까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했고,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 늘 항공 업계 뉴스를 찾아보고, 정리했고 조금 더 넓은 지식을 전하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꼬박꼬박 책을 읽었다. 설득력 있는 스피치를 구사하고, 좋은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라는 신념 하에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소감을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기도 했다. 승무원 면접 지도 선생님 치고는 어쩌면 선을 넘는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당장의 ‘면접’보다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괜한 오지랖이 있었다. 어떤 교수법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핸드폰 메모장에 아이디어를 적어 내리곤 했다.     

남들과는 다른 승무원 정보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었고, 다른 건 몰라도 누구보다 면접 지도를 위해 가장 많은 공부를 한다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게 아마도 오랫동안, 학생들이 나를 믿어주고 정을 나누며 교육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늘 부족했다.’       


그런 내게 나름의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는데, 바로 00 항공 인사팀과의 소개팅 자리였다

( 여기서부터는 혹시라도, 그분에게 누가 될 수 있어 약간의 픽션이 들어가 있다. 아니면 나의 기억 조작 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겠다.)       


가르쳤던 제자 중 한 명이 A항공사에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같은 항공사에 다니는 동기 중 아는 오빠가 B항공 인사팀인데 소개팅을 해주고 싶다고 제안이 왔다고 한다.  막상 소개해주기 위해 제자의 동기가 그분께 물어보니 ‘승무원은 글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아.... 그때 눈치를 챗어야 한다. ) 레이오버 동안 소개해줄 만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내 이야기를 하니 그쪽에서는 오케이를 했다는 것이 이상한 소개팅의 전말이다.  


어차피 같은 항공사 인사팀도 아니고, 자기도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만나보라는 말을 덧 붙었다. 정말 건너 건너의 소개팅이라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기는.. 개뿔. 

뭐라도 정보 하나 얻어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섰다. 그때 당시 나는 정말 비장했다.       

.....

사실 소개팅 당일의 이야기는 종종 친한 학생들에게 OFF THE RECORD 라며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새삼 글로 쓰려니 다시 한번... 하아...


만남의 장소는 소개팅의 성지, ‘홍대’였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조용하고 예쁜 카페가 있다며 그분이 나를 이끌었고 꽤 소개팅스러운 분위기에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초반 딱, 10분까지만. 


그 날의 소개팅은, 소개팅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하도 말을 많이 해서 내 목이 쉬어버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분은 어렴풋이 나의 직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인사팀의 특성상 면접방식이나 기준 등 내부 사항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에 했던 비겁한 생각은 내려놓고 일단 사람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나는 장난처럼 ‘처음에 00이 (나의 제자 이름) 소개받을 뻔했다고 들었어요. 근데 승무원.. 은 소개 안 받...’  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 전 여자 친구가 승무원이었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왓..........? WHAT? 왓 더...?     


소개팅에서 전 여자 친구 얘기하는 게 원래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던가. 나만 조선시대 사상을 가진 여자인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저러는 걸까. 저게 최선의 대답이었을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를 욱하게 만드는 음성이 한 번 더 들려왔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전 성형한 여자 싫더라고요”      


아마 이 말만 안 했어도, 그날의 소개팅은 그냥 10년 정도 지나면 잊히는 하루의 해프닝 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그닥 어여쁜 얼굴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잔뜩 일그러져있었겠지.   

    

“아... 눼에... 요즘 승무원 지망생들은 다들 자기만의 개성도 있고 예쁜던데..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똑같은 유니폼까지 입으니까 어쩔 수 없이 비슷해 보이나 봐요.. 어홍호호홍흥으흥호홍”  

    

스스로 어금니가 아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색한 웃음소리를 낸 덕에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그리고 아마 나의 기분 나쁨을 그도 눈치챈 것 같았다. 


나름 젠틀한 표정과 눈빛을 장착한 그는 변명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면접관 썰’을 풀어냈다.     


“아.. 이유가 있어요”      

그는 지금까지 두 번 정도 면접관 역할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자기는 그때 당시 면접관 할 짬이 아닌데 어쩌다가 오후 면접에 투입되어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다양한 평가 기준이 있겠지만, 자기는 ‘코에 분필 넣은 게 보이는 것’ 이 정말 보기 싫었으며 그건 승객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란 생각에 과감하게 떨어뜨렸단 이야기를 덧붙였다. 또한 다들 비슷비슷하게 성형을 해서 그런지 나중엔 아까 들어왔던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너무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이 놈, (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의 호칭은 이 사람이 아니라 놈이 되었다.) 분명 전 여자 친구가 코가 높았으리라...  

   

“너무 개인 취향 아니에요? 그것 보단 정확한 기준을 갖고 평가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질문에 맞는 답변을 하는지 내용도 잘 들어 보고요”

“승무원의 기준엔 단정한 외모도 포함이니까요. 제 눈엔 성형한 얼굴은 그다지 단정해 보이지 않았어요.”     


참............ 허무했다.


승무원 지망생들이 그 잠깐의 면접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수 백개의 답변을 고민하는데 고작 ‘성형’이 탈락의 기준이라니. 세상에 그 어떤 직군의 면접 중에서도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곳은 없을 것이다, 란 생각에 화가 났다. 


아니 사실 단정한 외모란 말로 승무원 지망생들의 외적인 요소룰 강조하고 성형을 조장한 건 애당초 항공사가 아니었던가.  


유독 국내 항공사 승무원 면접만이 가진 이상한 기준에 대한 설전이 카페 종료 시간인 새벽 2시까지 이어졌었다. 이곳에 다 담아낼 순 없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승무원 지망생과 현직 승무원들을 향한 약간의 비하를 담은 발언을 했고, 나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을 아래로 보는 사람이 면접관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분개했던 것 같다. 뭐 그는 그 나름대로, 승무원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크게 데어서 승무원이란 직업군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 정도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몇 년이 지나 어느 정도 승무원 교육에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사무장 출신의 면접관님, 또 항공사 임원 출신의 면접관님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들이 종종 생겼다. 사실 나에게 부족함점을 채우기 위해 그런 자리들을 열심히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그 사람이 아주 독특한 사람이라는 것에 안심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그런 무례한 면접관을 마주하게 될 지원자들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여전히 문득문득 불안해지곤 한다. 

 

사람처럼, 그만의 독특한 기준을 가진 면접관이 세상에 명뿐이라곤 없을 테니까.


아주 가끔 교육을 하다 보면, 문득문득 그 날의 긴 설전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에 우울해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는 때때로 ‘네가 다른 방에 들어갔으면 합격했을 수도 있어’라는 이야기였다.   


나름 만족스러운 면접을 보았는데, 생각지 못했던 결과를 얻게 되면  꿈을 포기해 버리는 지원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럴 때 마다 내 꿈이 꺽인 것 마냥 속이 쓰렸다. 정말 정말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훌훌 털어버리기를. 혹은 스스로는 만족했지만 사실은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발전의 계기로 삼아보기를 간곡히 청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 상하고 분이 안 풀린다면 

‘내가 면접관의 전 여자 친구를 닮았나. 혹은 내가 전 남자 친구를 닮았나’라고 시원하게 욕하고 잊자. 


그나저나 그 마인드 고치고 잘 지내고 있을까?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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