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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Oct 12. 2020

<프롤로그>꿈꾸는 바보들을 위해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그리고 여기 꿈꾸는 바보들을 위해        

 -라라랜드 OST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중- 




사람들에게 장래희망이 생기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니다, 장래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넌 장래 희망이 뭐야?’라는 질문이 문득 낯설어지는 ‘취준생’이 되는 순간부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보다,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해야 이 혹독한 사회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점부터, 어린 시절의 꿈들은 그저 추억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 나는 나는 될 터이다, 발레리나가 될 터이다. ”      

일곱 살 큰 별 유치원 바나나 반 시절, 내 생일날 불렀던 노래는 분명히 그랬다.      

이제는 뻣뻣한 각목 같은 몸을 부여잡고, 폼롤러에 의지 해 겨우 겨우 스트레칭을 해내는 몸뚱아리지만, 그 시절엔 긴 다리를 하늘 끝까지 뻗어내는 우아한 발레리나를 꿈꿨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 시절, 실제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절. 그 시절의 우리들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떠올려보면 쌉싸름한 미소가 절로 퍼진다. 


과학자, 선생님, 소방관 같은 직업들이 어린이들의 꿈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아이돌 가수나 유튜버, 공무원 같은 직종이 장래 희망 1순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방향성이야 어찌 됐든, 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넌 꿈이 뭐야?"라고 순수하게 묻고 답할 수 있었던 시절을 지나, 취업이란 문 앞에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수많은 청춘들에겐 "장래희망이나 꿈" 이란 건 코웃음 나오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예체능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19살들은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고르는 것이 현실이고, 4년간 학습한 전공이 치가 떨리게 싫어지는 20대 중반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내게 자신은 너무나도 간절한 꿈이 있다며,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 온 수 백 명의 청춘들이 있다. 여전히 꿈을 꾸는 이들, 그래서 현실과 적절히 타협한 사람들과는 그 결이 조금은 다른 이상한 사람들.  


그들의 꿈은 바로 '승무원'이다.     


승무원이란 직업을 지원하는 지원자들의 이유는 그 모양과 색이 모두 다르지만, 정말 많은 지원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어릴 때부터의 꿈이어서, 혹은 동경했던 일이어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와 같은 것들이다.      


‘왜 승무원이 되고 싶나요?’라는 면접 단골 질문이 가장 어렵다고 머리를 쥐어뜯는 이유도 ‘솔직히 말하면 너무 뻔하잖아요. 그럼 떨어지잖아요’라는 조금은 이상한 이유 때문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취준생들은 솔직하면 안 되는 거다. 머리를 쥐어뜯어서라도 남들과는 다른,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독특한 이유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자기소개서 역시 “어린 시절 비행기를 처음 타서 무서웠는데, 승무원 언니가 건네 준 사탕이 큰 위로가 되었다.” 와 같은 이유로 승무원이 되고 싶어 졌다고 쓰면 떨어진다라는 전설(?)이 있다. 설령 이것이 ‘진짜’ 생각이고 계기 일지라도 자소설을 써서 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상 질문에 맞춘 면접 답변을 고민하고 자기소개서 속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는 그들의 눈빛은 늘 진지하다. 내 진심을 전하고야 말겠노라. 

그렇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열정 속에 함께 있다 보면 없던 힘도 생겨난다.


나는 그 뜨거움이 좋았다. 


그래서 조금은 오래, 그리고 누구보다 깊이 예비 승무원들의 꿈속에서 함께 헤엄쳤다.      

다만 스스로를 승무원 준비생들의 멘토라고 부르기엔 돈을 받고, 수업을 행하는 장사꾼이었고, 그저 장사꾼이라고 부르기엔 내겐 그들 하나하나의 꿈이 모두 나의 꿈이 되어버린 나날이었다. 


“어느 노선, 어느 비행기를 타더라도

내가 가르친 제자가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와 함께 제주도를 향하는 비행기를 타던 어느 날, 엄마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비행기에 네 제자 있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 가능해질까. 백 명, 아니 천명쯤? 그래, 까짓 거 불가능할 건 뭐야. 해보자. 그 날 이후 내게 다시 한번 ‘장래희망’이 생겼었다.      


이제는 수업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가정에 충실한 ‘새댁’과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장래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승무원 지망생일 ‘랜선 제자들’,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 취준생들, 그리고 이제는 나만의 장래 희망이 없어져 뜨거움 꿈에 불씨를 지피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과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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