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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Nov 01. 2020

첨삭과 대필 그 중간쯤


“야 이건 대필이잖아” 


내가 ‘첨삭’한 자기소개서를 읽던 친구의 첫마디였다.      

단 두 줄을 보내면 700자에 육박하는 이야기로 만들어 주는 것. 

혹은 나름 열심히 써온 문장들을 이리 뒤집고 저리 헤집어 결국엔 

원문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일상 적으로 하던 일이다.     

처음엔 아무리 고심해봐도 자신의 이야기가 매력적인지 확신이 안 서고, 

소재는 분명히 있으나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 고민하는 지원자들의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 ‘첨삭’ 이 아니라 내가 대신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을 마주하였을 때, 나는 깨달았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멈췄어야 했는데,

글을 제대로 쓰는 법을 가르치고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쓸 수 있도록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감히 ‘쉬운 길’을 택했다.  

그것이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생각해보니, 스스로 ‘선생’ 자격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여전히 후회한다.

‘선생님이 써 주신 자기소개서 덕분에 합격했어요’라는 말이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채용 시즌이면 

내 수면시간과 글 쓰는 시간을 맞바꿔가며

대필 활동을 했다.      

48시간 동안 단 1분도 눈을 부치지 못해 

컴퓨터 앞에서 눈물 펑펑 쏟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워 

사무실 한편에 요가매트를 깔고 자기도 했고

컴퓨터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며 보통 일주일을 버텼다.       

매 채용 시즌마다 그러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손목 보호대를 칭칭 감고, 손목이 끊어질 듯 아픈데도 주사를 맞으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나를 믿고 글을 맡겨준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에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는 욕심.

하지만 잠을 자지 못해 몽롱한 상태로 이어지는 첨삭은

늘 내 마음에 쏙 들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떠오르던 날카로운 한 마디.

“교육은..............” 

     


  

내가 소속된 곳에선

학원 수강생들에게

무료로 첨삭을 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승무원 학원이나 과외들이

이러한 무료 첨삭 제도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소속되어 있던 곳처럼

한 문장 하나하나 고쳐주거나 아예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곳은 드물다는 것이다.

사실 없다고 보는 것이 무방한 것이, 수많은 과외와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이 

오직 ‘첨삭’의 갈급함과 부족함을 느끼고 내가 소속되어 있던 학원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직 좋은 ‘첨삭’ 때문에 등록하는 학생들이 생기자 

학원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채용시즌에 첨삭만” 하는 수업을 오픈한 것이다.

그것이 큰돈이 될 것이므로.     

나는 처음에 두 손 두 발 들고 반대를 했다.

돈을 받고 첨삭을 해주면, 그만큼의 좋은 퀄리티로 보답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현재 수강생들의 첨삭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육은 재능기부가 아니에요. 

우리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지 않나요?”


심장이 쿵 하고 요동 박질 쳤다. 

한 대 얹어 맞았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맞다, 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 소속되어 있으며,

나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학생들과의 각별한 친분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한 변명 끝에 우리는 고액 첨삭을 시작했다. 

1:1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받아 적어

자기소개 서화 시켜주는 작업. 

소위, 이 첨삭 시스템은 ‘대박’이 났다.     

서류 접수 시즌이 되면 

자기소개서 첨삭을 받기 위한 문의가 줄을 이었다.

타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고 있지만 

‘첨삭’만은 내게 받기 위해 수업료를 내고 

학원을 방문하는 지원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기존 수강생은 점차 내게 의존했고, 

내게 첨삭을 받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행동했다.      

다른 학원의 학생들이 

‘돈’을 내고 ‘우리 학원 선생님’을 뺏아가는 것을 보며

뒤에서 얼마나 욕을 했을까.      

나는 알고 있었다.      

무료로 첨삭을 진행해주는 기존 수강생보다는, 

‘돈’을 내는 다른 학생들을 우선해주는 시스템.      

그 부조리함에 실망한 학생들을 얼마나 많을까,

나는 또 그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학원에서 소속된 일개 ‘선생’이었기에 

‘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였다.      

첨삭 시즌만 되면 그렇게 두 가지가 늘 나를 괴롭혔다.

‘대필’을 하며 오히려 학생들의 진짜 발전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

내가 조금 더 돌봐주고 집중해야 할 나의 기존 학생들보다 새로운 ‘돈’ 벌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마 내가 학원이란 곳에서 벗어나기를 결심하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이 ‘첨삭’ 때문이었을 것이다.     

면접은 면접자가 직접 부딪히기에, 

그것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선생이 활용되지만

첨삭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대신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쓰는 자기소개서가 무조건 붙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큰돈을 받는 것 역시 내겐 너무 스트레스였다.      

교육자로서의 양심과 경제활동을 하며 

세상을 살아야가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중심을 잡지 못해 허우적거렸다.       

어떤 것이 과연 가장 올바른 행동이었을까.


그저 첨삭만 담당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니면 그저 면접교육만 담당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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