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엉 Oct 26. 2020

승무원들이 만나는 기내 빌런들

진상을 진상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직업, 감정노동자  


어떤 직무이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렇게 간절하게 준비해서 합격했는데,

인턴기간만 겨우 마치고 승무원직을 내려놓는 학생들도 많이 봤고

“저 진짜 못하겠어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요.” 라며

울며 전화하는 학생들도 너무 많이 겪었다.      


“힘들 거란 거 알고 지원한 거잖아.. 조금만 버텨보자. 그래도 정 힘들면 내려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라 늘 속이 상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이면 종종 

“얼마 전 비행에서, 이런 손님이 있었대. 이래도 승무원 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란 뜻이다. 


학생들은 오오 놀라며 함께 욕을 하다가도 이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잖아요.”      

어이구, 기특해라.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가 번진다. 

그래, 그 마음이면 됐다.        




승무원이 되어서 얻을 수 있는 혜택뿐만 아니라 힘들고 고단한 점 역시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오래, 더 행복한 비행을 이뤄갈 수 있을 테니.          


승무원을 향한 성희롱, 야 너와 같은 반말, 기내를 무한리필 술집으로 아는 사람들 등

흔히 들어봤을 법한 소소한(?) 진상들을 제치고 

다소 신박한 빌런들 베스트 3 를 꼽아보았다.  

아래부턴, 분노 주의.........................          


     

1위. 왜 변기가 아닌, 세면대에 아이 대변을....     


“세면대 물이 잘 안 내려가는데, 정리 좀 해주세요”


아이의 엄마가 승무원을 불렀다.


"네 손님 죄송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이 화장실을 문을 벌컥 연 그녀는

세면대에 동동동 떠 있는 이상한 물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누가 봐도. 대변이다.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된 그녀는 일단 사무장님께 위 사항을 보고 했고 

사실 확인 차 “혹시... 세면대에 음식물 같은 것을 버리셨나요?”라는

우회적인 질문으로 내가 본 것이 아이를 위한 

새로 나온(?) 이유식 덩어리 같은 것이었길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애가 엉덩이가 너무 작아서 변기에 앉으면 몸이 빠지잖아욧. 아 어린이용 변기 시트라도 구비해 놓던지...” 라며 오히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승무원을 나무랐다고 한다. 

결국 휴지와 청소도구를 이용해서 세면대의 이물질들을 모두 걷어내고 반짝반짝 광이 나게 닦은 그녀는, 그 날 이후로 아이와 엄마 승객이 화장실에서 함께 나오면 겁부터 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2위. 내 가방 올리기 싫어 복도에 둘 거야     

명품 로고가 박힌 커다란 가방을 들고 탑승한 커플.

커플은 복도에 담요를 깔고 내려놓은 채 꿈쩍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손님, 바닥에 있는 짐 선반 위로 올려주시겠습니까?”

“......왜요? 싫어요.”     


짐이 무거워서 올리기 싫다는 건가. 

종종 자신의 짐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는 승객들이 있기 때문에 

같은 유형의 손님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승무원들에게 ‘승객의 짐을 선반에 올려놓는 것’이 듀티엔 포함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충분히 도움을 드릴 순 있지만 먼저 나서서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짐이 무거우셔서 어려우시면, 함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아 싫다니까요! 내 가방 건들지 마요!” 

버럭하고 소리를 지르는 남성의 목소리가 기내를 휩쓸었고, 순간적인 정적이 흘렀다.      

“손님, 바닥에 짐을 두시면 안 됩니다. 다른 승객분들 이동에도 방해가 되고 

위급상황 시 가방에 걸려 넘어지실 수도 있기 때문에  

가방은 의자 아래 혹은 선반 위로 올려야 합니다. 

짐을 위로 올리기 어려운 이유를 말해주시면, 제가 해결 방법을 찾아드리겠습니다. ”      


모욕감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참으며 건넨 말에 돌아온 그들의 대답은

“이거 되게 비싼 건데, 다른 가방들이랑 같이 올렸뒀다가 상처 나면 책임지실 거예요? 

내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요.”       


아.............비싼..가방님이셨구나...그르쎴꾸으느아.

그럼 가방님용 좌석도 하나 끊으시질 그러셨어요.      

(해당 승무원의 말이 아닙니다..제 마음의 소리에요..........................) 


결국, 기내에 있던 여분의 담요들과 비닐로 가방을 꽁꽁 싸매고 선반에 올리고 나서야 

이륙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정 국가 비행에서는 워낙 보따리 상인이 많아 

오버헤드빈에 짐을 다 올리지 못해 복도가 포화상태가 되고, 

복도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어 난감한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

.

제발... 기내에서는 승무원의 지시를 따라주세요............ 



3위.  눈물을 머금고 ‘사유서’를 제출해야 했던 이유.     


서비스하는 사람이 값비싼 명품 시계 해도 되는 건가요? 상대적 박탈감 느껴서 기분 나빠요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이유로 불만 레터를 받은 것이다. 

시계는 승무원들에겐 필수 품목이다. 요즘은 갤럭시 워치나 애플 워치와 같은 핸드폰과 연동되는 것들을 쓰는 승무원들도 있는데, 대부분 메탈이나 가죽 시계를 많이 하는 편이다. 실제로 승무원 취업 축하 선물로 시계를 선물 받는 경우를 종종 봤다. 

어차피 구두나, 캐리어 등과 같이 필요한 물품들은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보급품을 쓰기 때문에 그다음으로 활용도 높은 시계를 선물하는 것이다. 


승객이 기분이 나빴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사유서를 제출했지만, 억울함에 허탈함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 시계......... 심지어 그거 명품도 아니었다는데...................               


그냥 한번 써보는.
진상고객이라고 부를 순 없지만... 배려가 필요한 순간..!        


생선 스테이크와 비빔밥이 기내식으로 준비된 날.

승무원들에겐 비상이 걸린다.


이 날을 국가급 재난이 벌어진 날이라고 표현하는 학생도 있었다.     

기내식은 항공여행을 만끽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비빔밥은

남녀노소 여기에 외국인들 승객들까지 맛보고 싶어 하는 대표 메뉴이다.    

모든 승객들이 비빔밥을 외치다 보니, 늘 수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소고기 덮밥과도 같은 메뉴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비인기 메뉴인 ‘생선’ 이라니.

말 그대로 대 환장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다.      


사무장님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런 날이 오면 

“매뉴얼을 필사적으로 지키지 말고, 다른 멘트로 식사를 소개해도 된다”라는 팁을 주시기도 한다고 한다.      


소위 “비빔밥과 생선 스테이크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 아니라

“화이트소스로 맛을 낸 부드러운 생선 스테이크와 비빔밥 준비되어 있습니다.” 란 식으로 다른 메뉴의 장점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량이 부족한 사태가 발생되면 

일단 승무원들은 죄인이 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여행사 가이드가 앞 쪽에서 자신의 뒤로 서빙받을 50여 명에 가까운 승객들의 메뉴를 ‘비빔밥’으로 통일하기로 했다고 말해는 버리는 바람에 비상사태가 걸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승객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권유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버리는 것이다. 

베테랑 승무원이라면, 각각 고객님께서 원하는 메뉴를 여쭙고 드리겠습니다. 와 같이 처신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갓 비행 경력이 얼마 안 된 삐약이 승무원들에겐 일단 사고 회로가 정지된다.

      

이와 같이 비빔밥이 모자란 순간 대부분의 승객들이 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가 주시거나, 

승무원들이 제시한 대안책 (이를테면 고추장만 추가로 제공하거나 크루 밀 중 원하시는 것으로 대체 제공)에 

응해주시는 감사한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단 버럭 소리부터 지르고 보거나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승무원들을 죄인 모드로 만드는 승객들도 숱하다고 한다.

      

“비빔밥 아니면 안 먹을 거니까, 기내식 비용을 환불해줘”라는 승객도 있었으며, 

왜 뒤쪽부터 기내식 서비스를 해서 앞 쪽 사람은 원하는 걸 먹지 못하냐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차별하고 무시했다."고 승무원에게 삿대질을 한 승객도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순 있다. 기대했던 한 끼를 원하는 메뉴로 먹지 못했으니.

하지만 승무원들에게 이렇게까지 화 낼 일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 단순히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거였겠지. 

비빔밥을 먹었어도, 기대했던 맛이 아니라며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에 고단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을까.

어떤 직업이건, 그 직업만의 고충과 직업병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승무원을 지망생이라면 그 무시무시한 고충 앞에서도 무던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길,      

지망생이 아니라면 ‘감정노동자’라고 불리는 그들을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럽게 받아주실 수 있길 바라본다.       



승무원이 되고 싶은 랜선 제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승무원 제자들을 가르치며 있었던 에피소드 들을 함께 이야기 합니다. 
저의 글이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라이킷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3화 내가 만난 빌런 :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