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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Oct 13. 2020

나이도 스펙이 되는 이상한 직업

- 내 나이가 어때서  

JTBC 비정상회담의 출연자였던  독일 대표 ‘닉’의 어머니가 무려 40살에 신입 승무원에 합격했다고 한다.



나는 부러움에 탄성을 질렀다.                   


물론 선배들의 연령이 낮은데, 나이가 더 많은 막내를 채용하는 것이 항공사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것이다. 막내 승무원이 들어왔는데, 선배보다 5살이나 많다면 선배 입장에서도 퍽 난감스러운 일인 것이다. 또 겨우 교육시켜서 이제 일 할 만하게 만들어놨더니 육아휴직에 돌입하기라도 하면 항공사에는 손해가 막심하다. 그 속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솔직히 아니 진짜 툭 까놓고!  

우리나라에서 암묵적 나이 제한이 있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지 않나?

위에 것들로 포장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유독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승무원 스펙....




야아 야 아아~♪ ‘네’ 나이가 어때서어!

가끔 답답함에 사자후처럼 외치곤 했던 노랫말.      


승무원 지망생들과 대화를 하다가 ‘허허.. 참’스러운 순간들이 종종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맞다, 모든 기업의 신입들에게는 ‘암묵적인 나이 제한’이 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하는 사례는 보통 ‘엄친아, 엄친딸’의 사례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유독, 정말 유독 나이에 대해 예민한 직군이 ‘승무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2년제 항공과 졸업생들은 대개 졸업학기인 21살부터 지원을 시작해서 21살~22살에 합격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학교는 과 자체에서 교수님들이 ‘휴학 금지’를 지시한다고 한다. 한 살이라도 어려야 유리하고, 한 살이라도 빨리 합격하는 것이 효도이자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이러다보니 통계상 합격 평균 나이 역시 낮아진다.     

덕분에 4년제를 졸업하고 지원하는 일명 ‘비전공자’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그 진로를 따라 차근차근 준비해온 항공과를 ‘나이 많은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나이의 ‘나’ 역시 하루하루가 얼마나 불안하였으며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이 될까 얼마나 똥줄이 탔던가.     


‘우리 탁구장에 다니는 00 회원님 아들이 C* 다니는데, 올**영이나 C*몰 이런 거 엄청 할인되더라...........................................’ 이런 대화 속 말 줄임표엔 늘 똑같은 문장이 들어간다.      

‘우리 부엉이도 그런데 들어가면 얼마나 좋아.’


꼭 말로 뱉지 않아도, 이런 문장이 자동음성 지원되는 순간들마다 ‘불효녀는 웁니다.’라는 문장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승무원 지망을 응원해주시는 부모님들도 꽤 많지만, 꿈만 먹고살지 말고 현실을 보고 살라며 탐탁지 않아하는 부모님들도 꽤 계신다. 처음엔 응원해주시다가도, 1년쯤 지나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 길이 네 길이 아닌가 보다’ 라며 은근 눈치를 주시기도 한다.


그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지원자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끝장을 볼 것인가, 끝을 낼 것인가.      


자,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국내 항공사 기준으로  

2년제 ‘비항공과’를 졸업하면 2년간의 공백 이내에 합격하는 것이 유리하고

4년제 기준 졸업 후 4년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평균치를 말하는 것이다.

승무원 합격의 기준은 정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CASE BY CASE다.       


그래서 뒤늦게 자신의 진로를 정한 2년제 비항공과 졸업생들은 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으로 부족한 학력 스펙을 채우려고 노력을 한다. 19살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우왕좌왕 시간을 보내기보다, 그렇게라도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고심한 결과를 내놓는 지원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부바를 하고 어화둥둥 응원해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까지 모두 통틀어 굳이 수치화해보자면

여자 기준 27살, 남자 기준 29살을 '막차'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 이상은? 무조건 떨어지는가.

대답은 당연히 NO다.      


승무원 채용에 있어 ‘나이 제한’은 위법이거니와 그렇게 정확한 선이 정해져 있었다면

애당초 '제가 나이가 많아서요..' 라며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희망 고문을 하지도 않았다.      


이제 현실은 잠깐 접어두고 '꿈을 먹고 사는 세계'로 가보자.


나는 승무원 지망생에게 있어 높은 자존감이 합격을 좌우하는 기준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사실, 지금까지 ‘그 어려운 일들을 모두 해낸’ 학생들의 공통점이

바로 높은 자존감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12월,

학원 문을 두드린 A가 있었다. 당시 나이 29살.      


일반기업에 다니는 중인데, 도저히 승무원이란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상담이라도 받으러 왔다고 했다.

‘남들보다 합격이 훨씬 더 힘들 거다. 혹시 토익 성적은 있냐’ 란 질문에 A는 만료되어 없다.라고 했다. 토익 성적이 없으면, 채용이 떠도 지원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일단 토익부터 공부해서 최소 750점 이상의 점수를 만들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회사 생활과 토익, 승무원 면접 대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우선 토익이 완성되고 그 후에 교육 커리큘럼에 대해서 상담을 받아보러 다시 와도 된다고 설명했다.

    

나의 이야기에 한참을 망설이던 A는 "00 학원에서는 제가 승무원 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잘 준비하면 붙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선생님 눈에는 제가 승무원상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 당돌한 질문에,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다다다 쏟아냈던 말이 여전히 선명한다.      


“음... A 씨. 승무원상이란 건 정해져 있는 게 없어요. 지금 A 씨의 외모는 당연히 충분해요. 다른 선생님들이 왜 그런 말씀들을 하셨는지 알겠어요, 그런데, 외적인 요소 외에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은 게 승무원 면접이잖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또 토익학원을 다니면서, 면접 준비까지 할 수 있겠어요? 물론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채용 계획 발표된 거 보면 S항공은 3개월 안에 채용이 시작할 거고, H항공은 늦어도 5개월 안엔 채용을 할 거예요. 다행인 건 K항공이 얼마 전에 채용이 끝나서 당분간은 채용이 진행되지 않을 거란 거죠. 그나마 나이에 관대한 곳이 K항공인데, K항공 지원 전에 S항공과 H항공은 서류에서부터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나이예요.


서류도 안 붙는데, 면접 준비 뭣 하려 했나 자괴감 안 들겠어요? 그렇게 포기하는 지원자들 너무 많이 봤어요. 만약 A 씨가 지금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변하지 않고 도전해보겠다고 하면! 나는 당연히 응원하고 도와줄 거예요. 그래야 A씨도 인생에 후회가 없고, 나도 한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부심이 생길 테니까.”    


와우. 지금 생각해보니 오글이 토글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게 A에겐 터닝 포인트가 됐던 모양이다.

A는 일 순간 활짝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지금 여기가 여섯 번째 상담받는 곳이에요. 다른 학원이랑 과외에서 저 보고 00항공상이라고 말해줬고, 덕분에 자신감 많이 얻었어요. 저도 제가 승무원이란 직업에 도전하기에 부족한 외모나 스펙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상담받아보니까 확실히 알겠어요. 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영부영 준비해서는 제 나이엔 어림없단 말씀이시죠? 저는 승무원이 너무너무 하고 싶고, 지금 다니는 회사가 그 준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저...    

퇴.사.할.게.요.'


으흠...오..어...어어~?어어! 어어어~~~??!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영화 같은 일이지. 신개념 몰카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뒤늦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란 생각에 후다닥 A를 달랬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을 뿐이니.      


“아니이~ 퇴사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요즘 취업이 얼마나 힘든데!! 직장을 왜애 그만둬요오오오!! 사람이 지갑이 든든해야 또 마음이 편한 법인 데에!! 아음 차근차근 쥰비하라는 말이죠오오.”     


정말 방정맞지만 실제로 난 그때 당시 정말, 딱 저 말투였다.  


교육을 한지 꽤 됐지만 30대 합격생은 딱 1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던 시점이었고, 직전 K항공 채용에서 최고령자는 28살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마저도 27살 합격생이  “선생님 저 다행히 왕언니는 아니에요. 28이 있어요ㅋㅋㅋ" 라는 톡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27과 28이 동시에 있다는 건, 합격생 평균 연령이 높아졌다는 뜻이기에 긍정적이지만 회사까지 그만두면서까지 준비를 하라고 부추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어쨌든 직전 채용에도 30은 없었잖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오히려 그런 나를 부끄럽게 했다.       


“네, 선생님 말씀대로 제대로 집중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하려면 퇴사가 필요할 것 같아요.”     


12월이었다. 29살의 1월도 아니고 29살의 12월.

한 달만 지나면 서른. 내 가슴이 다 벌렁벌렁 거리는데도, A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승무원이 될 수 있다’라는.  

    

솔직히 감탄했다. 자신의 선택에 저토록 확신을 갖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절로 느껴졌다.  


실제로 A는 2월 퇴사를 했다.

첫 토익 성적은 600 초반 대였지만, 이후 면접 준비와 토익을 병행해가며 800 초반의 스펙을 완성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S항공은 서류부터 떨어졌고, H항공은 서류에 붙었지만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럼에도 A는 주눅 들지 않았다. 회사까지 그만뒀는데도 늘 여유 있고 당당했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고, 어린 지원자들과 자신을 비교하지도 않았다. 나이 어린 지원자들만의 풋풋함을 이길 순 없으니 노련미로 승부 보겠다는 자신만의 확실한 노선도 있었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장점에 집중하며 단점을 개선해가는 그 모습은 내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A는 다음 채용에서 합격생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일들이 아주 흔한 사례는 아니다.

다만, 이 글을 읽으면서도 ‘멋지다. 대단하다’ 보다

‘아주 특별한 케이스네,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불가능할 거야. 운이 좋았네’ 등등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저런 기적 같은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은 잘 안다.      


자존감은 결국 자신감으로 발현된다.

공손한 자신감은, 면접장에서 사람을 끌리게 만드는 힘이다.   


추후에 한 번 더 이야기로 전하고 싶은 것이 A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던’ 수많은 사례들이다. 몇 개의 소소한 사례가 아니라 ‘수많은’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키160의 합격생과, 2년제 비항공과 합격생, 학점 1점대의 합격생, 32살의 합격생, 4년이 걸린 합격생 등 내 눈 앞에서 ‘기적’을 행했던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나이는 핑계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일 뿐이다.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시간을 쏟을 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스스로는 속이지는 말아야 한다.

정말 간절했는데 항공사에서 나이 많은 지원자를 뽑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이 직업에 대해 도전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없는 것인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  


어디든. 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30대 합격생이 웬 말이냐.

하지만 누군가는 그 길을 열었다.

지금까지 신입 승무원 기준 33살의 합격생이 없었다면, 내가 그 33살이 되면 된다.

그럴 각오로 도전하고, 최선을 다해 쏟아붓고, 그래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최소한 훗날 스스로에게 부끄럽진 않겠지.

그리고 그 새로운 기준이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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