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승무원은 아니지만, 승무원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을 못 믿어서 죄송해요,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못 믿어서 죄송해요.
저도 포기한 우리 애를 끝까지 믿어줘서 감사해요”
고작 ‘학원 선생’이 받을 수 있는 찬사 중에 이것보다 더 한 것이 있을까.
승무원 면접 교육을 진행하면서, 학생들 만큼이나 많은 어머니들을 만났다.
자녀의 꿈을 적극 응원하고, 선뜻 지갑을 열어 학원비를 결제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상
담 때부터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이 선생이 우리 애한테 괜히 헛바람만 불어넣는 거 아닌가’를 찬찬히 살피는 분들도 많았다.
또 한 편으론, 한 번도 얼굴은 뵌 적이 없지만 가끔 전화로 학생이 수업을 잘 따라오는지를 묻는 분도 계셨고, “우리 애가 종아리 알 주사를 맞겠다는데, 이것 좀 말려주세요, 그러다가 못 걷는 사람들도 있대요. 선생님 말은 잘 듣잖아요.” 라며 웃픈 부탁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다만, ‘성인’이 된 자녀의 결정과 학원 생활을 일일이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학부모님들인지라 학원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얼굴을 뵙지 못하는 일이 대다수였다.
A의 어머니도, 그렇게 학생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기다려주시는 평범한 분으로만 알고 있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오기 전까진.
A는 3년 차 장수생이었다.
단 한 번도 1차 면접인 실무면접 조차 통과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A가 언젠가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그건 내가 본 A의 독특한 행동 때문이었다.
학원에서 항공사 공채를 대비한 모의면접을 보는 날은, 수 십 명의 학생들이 학원을 오고 가며 보통 그들의 대 부분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어피를 다듬는다.
(어피 : 머리를 묶고 외모를 단정히 하는 것)
그 날, A가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있는 걸 본 것이다.
유독 옆을 바라보니 거울도 반짝였다.
“에이 오늘 수업 끝나고 선생님들이 청소하면 되는데!! 그냥 두지!”
“아 살짝만 치웠어요! 다들 거울 보면서 머리 만질 텐데, 잘 안 보일 것 같아서요, 머리 묶고 나니까 제 머리카락도 너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요 ”
늘 그렇듯 조금은 느린 말투. 순둥 순둥 한 미소.
그 날의 표정과 몸짓은 면접이라는 ‘찰나의 ‘순간’이 아닌 이러한 ‘일상’의 태도를 꿰뚫어봐 줄 수 있는 면접관이 있다면. 이란 들뜬 상상을 하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꽝이었다.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느린 말투, 유독 순둥 한 성격 탓에 주변 지원자들의 기싸움에 져버리고 마는
‘속이 다 드러나는 표정’.
A의 장점이란 건 ‘승무원이 되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선함’뿐이었다.
A에겐 악도, 깡도 없었다. 늘 그게 문제였다.
그런 A가 3년 차 면접 준비에 돌입했을 때 내 방에 찾아와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부모님께서 더 이상 지원을 해주지 않으시겠다고 했다며, 아르바이트비로 학원비를 간신히 내고 있는데 이젠 나이도 있으니 부모님께서 집에 ‘생활비’를 내라는 경고를 하셨단 것이다.
부모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8번이 넘게 면접을 보며,
한 번도 실무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는 딸을 무기한 지켜보실 순 없으셨겠지.
말이 생활비를 내라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면 얼른 다른 취업 노선을 찾아보란 뜻이었을 것이다.
현실과 꿈 이란 갈림길 앞에선 우는 아이를 두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었을까.
아니야, 너는 무조건 할 수 있어. 집중하자 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
아니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새로운 취업 시장을 병행하자고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눈물을 터뜨리는 것뿐이었다.
일반 기업에 지원을 하고 합격하면 회사를 다니되, 항공사 공채가 뜨면 꼭 함께 지원할 것.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고작 그 정도였다.
나도 이제 막 서른에 접어든...
아직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을 잘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2개월쯤 지나, 새로운 항공사 공채가 시작되었다.
A는 부모님 몰래 항공사에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번 채용에서 떨어지면 자신도 더 이상 승무원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나는 널 믿어. 그 동안 숱한 탈락을 경험하면서 너는 널 못 믿게 됐겠지만 그러니까 내가 널 대신 믿어줄게”
1차 면접을 앞둔 A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예전에 다니던 성우 학원에서, 공채를 앞두고 실장님이 보내주신 메일에 적힌 한 줄이었다.
‘내가 널 대신 믿어줄게.’
그 메일을 받고 내가 날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내가 나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걸
들킨 것만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그리고 고마워서 얼마나 울었었는지 모른다.
그 날 받은 ‘어른’의 위로를, A에게 전하고 싶었다.
결과는 해피엔딩.
그토록 착한 아이에게 해피 엔딩이란 말이 어울린다.
다음 날, A의 어머니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부엉쌤이세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는 우리 애가... 오래 준비했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면 학원을 바꿔봐라 아무리 애기해도 안 듣는 거예요.. 나는 괜히.. 괜히.. 안 되는 애 붙잡고 돈 장사하시는 줄 알고... 애 아빠랑 얼마나 혼을 냈는지... 죄송해요... 죄송해요. 선생님을 못 믿어서 죄송해요,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못 믿어서 죄송해요. 저도 포기한 우리 애를 끝까지 믿어줘서 감사해요"
점점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어가는 장수생들을 보면
그 날의 대화가 귓가에 울린다.
꿈만 먹지 말고 살라고. 현실을 바라보라고,
조금 더 냉철하게 이끌어주셔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답답하고 마음 졸이더라도
자녀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정답을 잘 모르겠다.
다만 A의 어머니께서는 ‘선생님인 나’를 탓할 줄 아는 분이셨던 거란 생각이 자꾸 든다.
‘네 얼굴에 무슨 승무원이냐’ 라던가
‘그렇게 오래 준비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너는 가능성이 없는 거다’처럼 자녀의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발언으로 상처를 주는 분이 아니셨던 거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취준생들은 힘들다.
안개와 같은 미래로 인해, 하루하루 불안함 때문에, 또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버겁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분명 나의 진가를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가득한 사람이길.
그리고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려주고, 이끌어주실 수 있는 좋은
‘어른들’이 가득한 사회가 되길.
그리고 또, 소소하고 감사한.
B가 스튜어드로 합격했을 때,
어머니께서 백화점 상품권을 보내주셨었다...
이미 꽤 괜찮은 기업에 합격했던 B는 항공사 면접시즌과 기업 입사일이 겹쳐 엄청난 마음 고생을 했어야 한다.
어머니께서는....이미 기업에 합격한 B를 항공사 면접을 보라고 꽤 단호(?) 하게 말했던 나를..안 좋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잘 못 된 길로 인도 한 것은 아닐까 마음이 좋지 않아..
B가 1차, 합격, 2차 합합격, 3차 합격 소식 전할 때 마다 그러~~~~렇게~ 울었더랬다..
(학생들이 놀렸었다..이 이야기도 언젠가 꼭 하고 싶다.)
한 항공사만 우물처럼 파던 C가 합격했을 때 과일상자를 보내주셨었던 것..
과일상자를 열자마자 학생들하고 나눠 먹은터라 내용물 사진 찍어놓은게 없다..좀 찍어놓을 걸.
C는 학점이 2점이 넘지 않았다. (자세히 쓰기 어렵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보니 희망을 걸 수 있는 항공사가 단 하나뿐이었고, 그 항공사만 파고 파고 또 판 결과
결국 합격을 이뤄냈다.
이 외에도 어머님들이 보내주신 감사한 선물이 너무 많은데,
당장 찾을 수 있는 사진이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다.
참 감사하고 그리운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