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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Oct 02. 2024

아메리카노

개똥 밭에 굴러도 아름다운 인생이여!

나의 커피 취향은 스무 살의 겨울에 생겼다. 이웃집 아줌마가 매일 밤 주고 간 던킨도너츠가 내 포동포동 살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미어진 살로 학과의 관종이 된 나는 ‘살쪘다’는 이야기를 지겹게 들으며 학기를 마쳤다. 살쪘다는 말이 듣기 싫어 독한 마음을 먹었다. 여름의 열기를 이용해 겨울 동안 비축한 지방을 모두 태워버리기. 매일 뜨거운 볕과 함께 십리를 걷고 대짜로 뻗으면 엄마는 내게 인스턴트커피 반 스푼을 녹인 뜨거운 물을 건넸다.

“블랙커피가 지방 태우는데 좋단다.”

엄마의 기민한 정보력과 나의 의지로 도넛 살은 반년만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니까 나의 커피 취향은 혹독한 다이어트와 함께 형성되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쓴 물을 마시며 지방이 흩어지는 위안을 얻었다. 참으면 빠진다. 달달한 캔 커피를 사랑하던 소녀는 블랙커피를 즐기는 척, 세련된 어른인 척하며 살았다. 카페가 많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사회인이 된 나는 즐겨 마시던 커피가 아메리카노라는 걸 알았다. 도톰한 두께를 뽐내는 한 조각 치즈 케이크는 아메리카노와 궁합이 좋았다. 밀도 높은 치즈가 감미와 풍미를 풀어낼 때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일으키는 맛의 카니발이 서툰 사회생활로 지친 나를 달랬다. 텁텁한 입안이 커피로 개운해지면 살을 빼던 뜨거운 여름을 떠올렸다. 혹독한 시간을 견디면 산뜻한 안도가 돌아온다고 눈물을 닦으며.


몇 년 후, 노련한 사회인이 된 나는 부산역 커피빈에서 촌스러운 노르딕 니트를 입은 남자를 만났다. 어색한 첫 만남을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채웠다. 그런데 그가 주문해서 가지고 온 커피는 한 가지가 빠졌다. 어디갔나, 쓴 맛?

“시럽을 한 번 반 짜 넣으면 쓴 맛이 나지 않아서 좋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나도 시종 웃었다. 그래, 당신이구나. 나는 일 년 동안 그가 망친 커피를 감당했고, 부부가 되었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던 그 해는 봄이 유난히 더디 왔다. 꽃은 고사하고 찬바람도 가시지 않은 4월. 그날따라 먹구름까지 잔뜩 껴 을씨년스러웠다. 배경 삼아 사진을 찍기로 했던 목련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만 문제였을까? 남편 학교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미흡한 점이 많았다. 특히 신부 대기실은 조잡한 조화로 꾸며진 아치 밑에 긴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대충 세워진 아치는 사진을 찍으러 누군가 들어올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렸다. 한편 남편은 미안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시어머님과 형님들이 도착하지 않았던 탓이다. 세 시간 지연된 결혼식. 도로 위 사고로 늦게 도착한 혼주가 자리를 채우자마자 식은 끝났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토록 엉망인 결혼식이 세상에 또 있을까?


매년 4월이면 찾는 캠퍼스의 식장은 그날의 을씨년스러움을 다시 재연한 적이 없다. 어김없이 봄바람이 불어 들었고 찬연하게 빛나는 벚꽃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매년 그 앞에서 설 때면 나는 십삼 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 우리의 결혼식도 이토록 아름다운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식이 늦어져서 미안하다, 고개 숙일 틈 없이 사람들은 꽃의 축제를 즐기느라 여념 없었겠지. 그 틈에서 주단처럼 깔린 연분홍을 보며 우리 마음도 봄으로 물들어갔겠지. 달콤한 향기에 취해 더없이 아름다운 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부푼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을 게다.


하지만 삶이 그토록 달콤하기만 하던가. 아니, 삶은 아메리카노를 닮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내 능력은 단지 결혼한 여자라는 이유로 무효가 되었다. 아이를 갖지 말든 사표를 쓰든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직장 상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를 원했다. 회사를 영원히 떠나 온 길 위에 우울이 있었다. 쓰디쓴 인생을 삼키며 생사의 줄타기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결국 삶을 선택한 건 내 인생 시럽이 되어 준 남편 덕분이었다.  


깊은 우울에서 가까스로 헤어나니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재취업을 준비를 하니 자연 임신이 되었다. 대대손손 내려온 입덧은 나를 입원으로 붙들어야 할 만큼 의료진을 겁나게 했고, 하루가 넘어가는 진통은 지켜보는 사람마저 기진하게 했다. 흔한 음식에 기도가 붓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덕분에 엄격한 식이 제한이 필요했다. 치즈 한 장, 두부 한 모도 못 먹는 유아 간식을 챙기며 까다로운 시어머니 세끼를 챙기던 그 시절, 나는 인생을 분노로 태웠다.


십여년 전 내 생각은 틀렸다. 생은 볕 들 날을 담보로 지난한 일을 꺼내지 않는다. 행복에 겨운 순간에도 예측할 수 없는 삶에 치여 종종 고배를 마셔야 한다. 그 요원한 순간, 남편과 나는 인생의 된 맛을 덜어줄 수 있는 서로의 시럽이 되어주려고 애썼다. 가끔 때를 놓쳐 싸우기도 했지만 대게는 알맞은 때에 적당한 마음으로 서로를 달랬다. 처음 만난 날 함께 마셨던 달지도 쓰지도 않았던 그 아메리카노처럼.


“여보, 나는 커피에 시럽 넣는 거 안 좋아해.”

결혼 후 내 고백에 흔들리던 남편의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고미를 걷어주고 싶었던 남편의 따뜻한 마음을. 언짢은 맛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었던 그의 사랑을.


아메리카노는 쓴 맛 매가 일품이다. 개운하지만 언짢은 맛은  인생을 닮았다.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좋은 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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