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고 모자라도 나는 엄마
아침에 일어나자 배가 아프다고 한 아들에게 소화제를 건넸다. 어제 너무 급하게 많이 먹은 탓이라고 나무라면서. 아이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침을 한술도 뜨지 못하고 두 팔로 배를 감싸며 학교로 향했다.
집에 온 아이는 여전히 아팠다. 점심도 못 먹었다는 아이는 흰죽이 먹고 싶다고 했다. 쌀을 곱게 갈아 미음을 끓여 주며 나무랐다.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은 어제 저녁, 무엇이 급해서 그리 단단히 체한 거냐고. 아이는 화내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미음도 입에 대지 못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저 배가 좀 아픈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나는 아들을 배웅했다.
아이가 등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번호가 붙은 전화번호가 수신됐다.
“어머니, 겸이 복통이 예사가 아닌 것 같아요. 겸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위경련인 것 같은데 빨리 병원에 데려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픈 배를 움켜쥐고 학교 가던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별일 아닐 거라고 되뇌며 차를 몰아가는 길이 아득하다. 허둥지둥 도착한 보건실 앞에는 아이가 선생님 부축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얼굴에 고통이 묻어났다.
급히 향한 병원은 대기석이 부족할 정도로 초만원이다. 펜데믹이 끝나고 마스크를 벗은 뒤로 여름 초입에 유행하던 전염병이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제일 빨리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 접수했다.
“어디가 아파요?
“어, 배가 쥐어 짜듯이 아파요. 그런데 아플 때 엄청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그래요.”
아이는 힘겹게 말했다. 그러나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 깨끗하다며 의사는 꾀병이라고 했다.
“꾀병 아니예요. 진짜 많이 아파요.”
의사는 미심적은 눈초리로 아이를 보며 근처 영상의학 전문 병원을 다녀오라고 했다.
“아이고, 어쩌다 이게 왔냐? 진짜 많이 아플 텐데! 이건 응급이야. 시간 지체하면 안 돼. 한 시가 급하다. 엄마! 빨리 응급실로 가세요.”
나이 지긋한 영상의학 전문의는 아이 소장이 대장 속으로 많이 말려 올라갔다고 했다. 정황 상 장 괴사로 진행될 수 있다고, 고통이 극심할 거라고 했다. 아이의 배 위에 뿌려진 겔을 닦아 내며 눅눅한 두 눈을 끔뻑였다.
꾀병이 아니냐 묻던 소아병원 의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원의뢰서를 썼다. 그러나 아이를 의심한 의사에게 화를 낼 자격이 없었다. 나는 아이의 통증을 이틀동안 꾀병보다 가볍게 여겼다.
지역 내 소아 진료를 잘 보기로 소문난 상급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아들을 지옥에서 구해 줄 의사가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
“소아과 진료는 다섯 시 마감인데, 지금 응급실 자리가 하나도 없어요.”
시계는 네 시 이십 팔분을 가리켰다.
아이는 이제 앓는 소리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육중한 통증과 씨름하는 아이를 뉘일 곳이 없다. 산산이 부서진 희망이 실감나지 않아 접수대를 기웃거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접수 불가. 세상이 우리 둘을 버렸구나. 그러나 넋 놓을 시간이 없다. 아이 뱃속이 어떤 상태인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119죠? 우리 애가 장중첩 진단을 받았는데 여기는 받아 줄 수가 없데요. 제발 도와주세요.”
차가 많이 밀리는 곳이라 오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오 분. 세상이 오 분의 무게에 짓눌려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구급차에 몸을 뉘인 아들은 여전히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구급대원들은 지역 내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아이를 받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난색이다.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는 저출산과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적자 때문에 작년 3월 폐과를 선언했다. 상급 병원 중에 소아청소년과가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소아과가 있는 곳에도 소아 외과 의사는 없었다.
장중첩은 공기정복술이란 시술을 시행한다. 장에 공기를 주입해 말려 올라간 소장을 빼내는 시술인데 그 과정에서 장 파열이 발생할 경우 긴급 수술에 들어간다. 때문에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했다.
“저희 병원은 소아 외과 전문의가 없어요. 그래도 일단 급하시면 오세요.”
아니, 갈 수 없다. 내 새끼 생명을 담보로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구급차를 타고 한 시간을 떠도는 동안 계속 통화 중이던 응급실 한 곳이 겨우 연결됐다. 그 곳엔 소아과도 소아 외과 전문의도 있다. 그러나 내일부터 간호사와 의료 행정팀 파업이 진행될 예정이라 입원이 어려울 수 있고 했다.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의 경제논리에 등 터지는 건 결국 환자다.
“네, 알겠습니다. 그 병원으로 갈게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도착한 병원에도 침대가 없다. 구급차에서 한참 대기했다. 높은 병원 문턱을 넘었지만 위안은 없었다. 아들은 여전히 통증 속에서 쓴 물을 토해내며 침묵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나는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자책하고 있었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시술이 진행됐다. 만일을 대비한 산소통이 침대 발치에 걸렸다.
‘저 산소통이 쓰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주문을 외우 듯 산소통을 노려보며 뒤를 따랐다. 전문의는 내게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시술에 들어갔다.
벌컥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의사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신실한 교인도, 충실한 불자도 아니지만 오늘 한 번만 저 사람을 위해 은총과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의 최선과 밝은 판단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나는 생떼나 다름없는 그 기복적인 기도를 뻔뻔하게 올렸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가끔은 그 생떼가 통한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아이의 장은 무사히 제 자리를 찾았다. 시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엄마 밥도 못 먹고 계속 울기만 해서 어떡해. 미안해.”
부모를 향한 아이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 순수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돌려줄 수 없다.
좁은 병상에 아이와 볼을 맞대고 누웠다. 위급한 상황을 한꺼번에 몰고온 하루가 눈 앞에 스치고 지나간다. 소아과 폐과, 응급실 뺑뺑이, 의료 파업. 고작 스무 시간 지났을 뿐인데 몇 십년이 흐른 것 같다. 그 불편한 잠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수없이 고맙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단잠에 빠졌다.
다음 날 오후에 접어 들자 수간호사는 겨우 물 한 모금 마신 아이의 링거를 뺐다. 예정된 파업은 지체 없이 진행됐다. 만 사흘을 굶은 아들은 배가 고파 야단인데. 하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병원 이층으로 내려갔다.
“아들, 초콜릿은 카페인이 있으니까, 고구마 라떼 어때?”
집에 가면 코코아 백 잔 사달라는 아들에게 애매한 미소로 화답하며 고구마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오, 엄마.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시장이 반찬인데 사흘 굶은 아이에게 달디단 우유가 맛없는 게 이상하다. 내가 커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아들은 한 잔을 싹 비웠다.
건강을 되찾은 아이는 장중첩이 왜 걸리느냐고 물었다. 만병의 근원이 그렇듯 장중첩도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궁금해서 벌써 찾아본 나는 기사를 읽으며 펑펑 울었다. 탕수육과 짜장면 앞에서 허겁지겁한 아들을 혼내지 말아야 했는데. 그럼 아이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회는 현재를 훔치는 비열한 도둑이다. 자책 대신 진심을 담은 자백을 한다.
“아들, 엄마가 밥 먹는데 잔소리해서 아팠던 것 같아. 많이 미안해. 앞으로 식사 자리에서 혼내는 일 없도록 엄마가 조심할 게.”
아이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투명한 두 눈에 내가 보인다. 엄마가 아무리 모자라도 아이는 늘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바로 이 어여쁜 생명을 이 땅에 소환한 엄마구나. 고구마 라떼처럼 부드럽고 달큼한 아이의 볼을 비비며 마음을 전한다. 그래, 이 달콤한 맛에 엄마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