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이야
스물일곱에 사주를 봤다. 독실한 기독교인 친구와 쏘다니던 길 위에서. 주력 상품 손금 가격은 오천 원. 상자를 뜯은 종이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노상에 앉아 계신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 우리는 홀린 듯 그 앞에 앉았다. 영업을 담당하던 할머니는 오천 원을 더 주면 사주를 봐준다며 옆에 앉은 할머니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언제 태어났노?”
우리는 순순히 생년월일시를 읊었다. 뭔가 한참 살피던 할머니는 내게 누나가 많은 남자를 만나야 잘 산다며 곧 만나게 될 거라고 하셨다. 누나가 많은 남자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다행히 주변에 그런 남자가 없었다. 친구와 나는 이만 원을 내고 돌아서며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할머니의 예언대로 누나가 셋, 엄마가 하나인 남자를 만났고 그 후 친구는 인생이 버거운 사람을 데리고 교회 대신 사주 할머니를 찾아갔다.
사주 덕분일까, 운명 탓일까? 생각도 생김새도 닮은 그와 나는 당연한 듯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서로를 보며 같은 꿈을 꾸는 동안 언쟁 한 번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도 분명 다름은 있었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 그는 늘 라떼를 택했다.
“무슨 맛으로 마시는 거야? 커피도 아니고 우유잖아.”
나는 우유에 커피를 헹군 듯한 라떼를 좋아하지 않았다. 텁텁한 뒤끝을 작렬하게 남기는 우유가 싫었다. 반면 그는 사약 같은 아메리카노 보다 부드러운 라떼가 좋다고 했다. 우리는 커피 맛집을 찾아다니며 서로의 최애를 권했지만 다 실패했다. 라떼는 내게 오류였고, 아메리카노는 그에게 지옥이었다. 같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만큼 사랑했지만 결국 길들일 수 없는 맛의 간극을 인정하며 서로 취향을 존중했다.
누나 많은 남자와 결혼 후 임신, 출산, 육아라는 전환점으로 나도 라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원두커피가 커피계에 혁명을 일으키던 그때, 나는 이제 막 육아를 시작한 수유부였다. 엄청난 모유를 들이켜던 첫째 덕분에 돌아서면 배가 고팠지만 서툰 살림에 차릴 반찬이 없었고 숟가락만 들면 울어대는 아기를 혼자 키웠으니 점심은 사치였다. 신혼 때부터 함께 산 시어머님은 형님들 댁에서 돌아오지 않으셨고, 친정 엄마는 아직 부산에 살던 시절. 독박 육아로 배도 잠도 고프던 나는 아들이 낮잠에 들면 찬물에 밥을 말아 마셨다. 그리고 라떼를 만들었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막을 걷어내고 스틱원두커피 한 봉을 섞으면 완성이다. 거품 낼 겨를도, 천천히 마실 여유도 없던 나는 입천장을 데어 가며 허겁지겁 먹었다. 초보 엄마라서 외출조차 힘겹던 내게 막돼먹은 라떼 한 잔은 주린 배를 채워 주는 훌륭한 영양제였다.
전쟁 같은 육아가 제법 수월한 시기에 접어들자 남편과 가끔 점심을 먹는다. 회사가 지척에 있는 덕분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각자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헤어지는 자투리 연애를 하며 우리만의 시간을 쌓는다. 육아 때문에 서로의 연인이 되기를 포기하면 부부 사이엔 의무만 남을 테니까. 각자의 커피를 들고 눈부신 대낮에 헤어지는 건 밤이면 다시 만날 수 있는 부부의 특권이다. 카페를 전전하며 내게 라떼를 권하던 남편은 어느 날부터 사약 같은 아메리카노를 함께 마신다. 양질의 식후에 커피우유는 영양 과잉이라면서. 라떼는 그렇게 우리 생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맛있는 라떼를 찾아 삼만리를 다닌다. ‘커피는 잠 못 자게 하는 원흉’이라고 여기시던 여든여섯 시어머님 때문이다. 딸 집으로 나들이 가신 날,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계로 뽑은 커피에 우유 거품 잔뜩 올린 셋째 형님의 커피는 어머님에게 ‘식후 라떼 한 잔의 낙’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열었다. 그날 이후 어머님은 언젠가 먹은 ‘그날의 라떼’를 주문하신다. 그리고 같은 라떼는 두 번 이상 이어 드시지 않는다. 기민한 미각을 소유한 어머님 덕분에 라떼에 대한 우리 부부의 고민은 날로 깊어만 진다.
어느 일요일 오후, 테니스 약속이 있어 아들이 나가자 어머님은 며느리 눈치를 보신다.
“어머니, 커피 드시고 싶으셔?”
“어, 니가 가서 사 올려? 내 카드 줄게. 너 먹고 싶은 것도 사 오고 애들 것도 사와.”
나는 새로 나온 프렌치 바닐라 라떼가 궁금해서 속으로 잘됐다며 길을 나섰다. 여름의 빛과 가을의 바람이 뒤엉킨 길 위는 참 걷기 좋았다. 음료 네 잔을 손에 들고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환한 얼굴로 커피를 맞이하신다. 얼른 한 모금 마신 어머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 라떼 어디서 샀냐? 내 입 맛에 딱 이여. 이게 얼마여?”
“스타벅스라고 미국 카펜데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커피야. 우리 어머니 완전히 세련된 여자여! 가격이 사천 오백 원인가?”
갑자기 혀를 내두르는 어머님이 한 마디 덧붙이신다.
“무슨 커피가 사천 오백 원이나 혀. 너무 비싼 거 아녀?”
마른침을 삼키며 내 커피 값은 마음속에 넣어둔다.
모든 건 저마다 좋은 때를 가진다. 누나 많은 남자를 만난 나처럼, 여든여섯에 라떼를 만난 어머님처럼. 어쩌면 그날 길 위에서 만난 할머니들도 시의 적절한 때를 타고 온 인연인지 모른다. 그나저나 할머니에게 여쭙고 싶다. 내가 시어머님 모시고 살 팔자라는 이야기는 왜 하지 않으셨냐고. 십오 년 전에도 이미 연세가 많으셨던 두 분. 그래도 어디선가 여전히 나 같은 청춘을 붙잡고 '인생의 좋은 때'를 봐주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