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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Oct 13. 2024

해물찜

칼칼하게 남은 선배친구님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나니 기름 냄새가 폐 깊숙한 곳까지 베였다. 배는 고프지만 내가 한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다. 코로 이미 다 먹어 버린 음식들. 명절을 지낼 때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밥상 앞에서 밥알을 세는 지 알았다.

 

 칼칼하고 얼큰하고 아삭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무엇보다 남이 차린 음식을 먹고 싶었다. 이런 날엔 칼칼하고 얼큰한 해물찜이 제격이다. 

“여보, 나 해물찜 먹고 싶어. 맵기는 2단계 정도?”

나이가 먹으니 3단계는 무리라서. 남편은 신나서 배달 앱을 켰다.

  

 푸짐한 해물찜이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 진다.

“누가 다 먹어?”

수북한 콩나물에 혀를 내두르는 이야기를 들은 둥 만 둥. 남편은 우리집에서 제일 큰 접시를 꺼내 와 해물찜을 옮겨 담는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꽃에는 매콤한 양념과 달큼한 해물 향이 맛있게 베여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해물찜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자!’ 를 외치던 회사 친구가 있었다. 소문난 똑순이와 함께하는 칼칼한 음식은 어리숙해서 늘 슬프던 나를 달래주는 영혼의 위안이었다. 쫄면 사리 하나를 추가해 제일 맵고 작은 해물찜을 시키면 그날 우리를 괴롭히던 허기와 스트레스가 환희로 바뀐다. 


 “니랑 먹으면 내 혼자 꽃게 다 먹을 수 있어서 진짜 좋다.”

내가 해물찜을 먹는 목적은 해산물이 아니라 콩나물에 있었다. 게 껍질이 이 사이에 끼면 엄청난 고통이 생기는 치아구조도 한 몫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늘 걱정하던 나는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물 콧물 쏙 빼는 매운 콩나물을 먹는 모습은 그나마 낫지 않을까? 입주변을 닦아가며 먹다보면 머리 위로 터번처럼 똬리를 튼 근심이 한 방에 지워졌다. 내가 그 많은 콩나물을 다 먹는 동안 친구는 딱딱한 게껍질을 야무지게 씹으며 살을 발라먹는다. 


 “우리 엄마가 음식 게걸스럽게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꽃게 앞에선 불가능하다는 친구에게 나는 내게는 하지 못하는 말을 하곤 했다. 보기 좋다고, 예쁜 사람은 먹는 모습도 예쁘다고. 


 친구는 회사에서 외모와 능력을 모두 인정받는 하늘 같은 선배였고 나는 하찮은 신입이었다. 

“회사 밖에서는 동갑내긴데. 우리 퇴근하면 서로 이름 부르며 편하게 지내자.”

친구의 제안에도 말 놓기 힘들었던 나는 한동안 호칭도 존비어도 호환하지 못해 입술을 버둥거렸고 그러는 동안 친구는 휴일에도 나를 불러냈다. 함께 빅마마 콘서트를 보러 갔고, 소맥을 말아 마셨고, 앞날을 고민했다.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 한 대기업에 대해 회의감이 있었다. 회사의 소모품처럼 살아가며 무엇이 되고 있다는 생각보다 닳아 없어진다는 느낌. 그 감정은 우리가 좋아하는 해물찜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짙은 고민이었다. 


 “누구 하나 닮고 싶은 선배가 없어. 미래가 안 보이는 회사야.”

술잔을 기울일 때면 친구는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내게는 닮고 싶은 선배가 있었다.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게 다정했던 친구가. 그러나 내 눈에도 친구 외 멘토가 될만한 선배가 없었다. 우리보다 한참 연차가 찬 선배들은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자기 개발이란 아첨하는 기술과 술 자리예절 뿐이었다.  


 수동태 인간인 나와 달리 친구는 이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삼 교대라는 근무 조건에 많은 이들이 달갑지 않아 하는 상황 속에서 야간 대학원을 다녔고, 험악한 부산 도로를 뚫고 면허를 땄다. 헐은 베르나를 끌고 첫 출근한 날 운전 연수를 핑계로 자기집과 반대 방향인 우리집에 데려다 주던 선배. 


 아마 근로자의 날이었나 보다. 확인 없이 스텝 출근스케줄을 짜버린 나 때문에 극장은 온종일 일손 부족으로 허덕였다. 점장님까지 구멍 난 인력을 메우고 사무실에서 한숨 돌리며 다들 내게 한 소리하려고 벼르고 있던 찰나였다. 

“매니저님! 스텝 스케줄을 이따위로 짜면 어쩌자는 거예요! 오늘 근로자의 날인 거 확인하고 짜셨어야죠! 스텝 스케줄 한 두 번 짜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실수하면 어떻게 해요!”


 사람들이 다 있는 사무실에서 보란 듯이 소리 지른 친구 태도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입으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수치스러운 감정에 화가 났다. 서먹한 마음을 안고 함께 퇴근하는 길, 친구는 건물을 완전히 빠져나온 뒤에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혼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일부러 선수 쳤어.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다음엔 확인 잘하고.”

오월의 첫날. 평일처럼 표시된 그 날이면 유감스러운 마음을 잔뜩 담은 눈으로 나직이 말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계절을 두 번 보내는 동안 함께한 친구는 사표를 던지고 국제 면허증을 가지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년 뒤 귀국과 함께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간 식장엔 여전히 아름다운 친구가 있었다. 새신랑은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자리잡은 오랜 남자친구. 먼 거리와 긴 세월 끝에 백년가약을 맺고 대한 해협을 건넜다. 


 콩나물 더미 사이사이 숨어있는 꽃게를 보면 생각나는, 이제는 서로의 생사도 모르는 사람. 하늘같은 선배님은 회사 밖에서 친구가 되어 주었고, 나의 어려운 사회 생활을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어느 날 주고받은 메시지에 자기는 일본 사람 다 됐다는 소식을 남겼고 그 뒤로 우린 더이상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으로 녹아 들었을 우리. 이제 고향 땅을 영영 떠나온 나는 더 이상 친구와 접점이 없다. 기름진 음식을 앞에 두고 허기의 이유를 찾다 생각난 사람. 나의 시간 속에 칼칼한 맛으로 남은 친구는 내가 가끔 생각날까? 나는 그 사람의 시간 속에 무엇으로 남았을까? 


 꽃게를 한입 베어 물어본다. 바스락 부서지는 껍질과 함께 부드러운 속살이 쏙 밀려나온다. 나는 게를 먹기 불편한 치아를 대신해 입술로 물고 쪽, 살만 빨아 당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바다를 품은 부드러운 게살이 파도가 되어 입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친구를 만나도 꽃게는 양보하지 못할 것 같다. 친구를 그리워하다 꽃게 맛을 알아버렸으니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지 않아도 그럴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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