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적당히 섞어 살기
삼대가 모인 우리 가족이 만장일치로 정하는 메뉴는 바로 샤부샤부. 틀니로 잇몸이 아픈 시어머님부터 야채 싫어하는 아이들까지. 자주 가는 그 집에는 각자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셀프 바가 있다. 소박한 메뉴가 갖춰진 셀프 바에는 매콤 달콤한 떡볶이, 크리미 한 고구마 샐러드, 그리고 찬란한 후르츠 칵테일이 있다. 아이들과 어머님이 좋아하는 메뉴가 딱 구비되어 있으니 우리는 자주 샤부샤부 집으로 향한다.
셀프 바엔 육수에 넣고 같이 끓여 먹는 각종 야채들도 함께 구비되어 있다. 양껏 퍼먹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숙주를 비롯한 각종 야채와 버섯을 규모 있게 담아 온다. 라이스페이퍼와 뜨거운 물, 인원수대로 쌓아 올린 고기가 나오면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오늘도 육수는 반반. 맑은 육수 반은 어머님과 딸을 위한 배려고 얼큰 육수 반은 우리 부부와 큰 아이의 취향이다. 육수가 보글거리며 고기와 야채를 익히는 동안 우리의 허기도 무르익는다. 아이들은 떡볶이를, 어머님은 후르츠칵테일을 아껴 들며 냄비를 바라본다.
식사의 마지막 코스는 단연 탄수화물. 물에 불려 놓은 쌀국수, 죽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밥과 계란물, 밀가루가 묻어 있는 생면 칼국수, 그리고 라면이 주인공이다. 아이들의 선택은 언제나 라면. 쌀국수나 죽을 끓여 먹으면 좋을 텐데 이럴 땐 셀프 바를 운영하는 식당이 살짝 원망스럽다.
“대신 조건이 있어. 몸이 라면을 먹어도 괜찮을 만큼 건강하게 배를 채우기. 고기만 먹지 않고 주는 야채도 다 먹으면 허락해 줄게.”
까다로운 엄마를 만나 버거울까? 아이들은 낙담한 표정으로 탄식을 뱉고 남편은 그러거나 말거나, 익은 야채들을 골고루 건져 아이들 접시 위로 올려준다.
“엄마, 나 이 초록색은 안 먹으면 안 돼? 너무 써서 못 먹겠어.”
둘째가 청경채를 앞에 두고 울상이다. 나는 단호하게 라면은 없는 거라고 말한다. 울며 겨자 먹는 표정으로 한 가닥씩 집어먹는 둘째. 그런데 아이는 치즈 떡과 고기가 담긴 그릇을 따로 두고 야채만 먹고 있었다. 왜 같이 먹지 않느냐고 물으니 좋아하는 건 나중에 먹고 싶다고.
“딸, 나쁜 일 때문에 좋은 일을 뒤로 미뤄 놓지 마. 나쁜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 생기면 기꺼이 받아들여. 삶이라는 게 나쁜 일 온 뒤에 좋은 일 오고, 좋은 일 온 뒤에 나쁜 일 오는 게 아니거든. 그냥 마음대로 와. 그런데 왜 눈앞에 좋은 일을 두고 나쁜 일만 보는 거야. 좋은 일은 힘이 세서 나쁜 일을 작게 만들어 주고 맛있는 음식은 힘이 세서 맛없는 음식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는 음식이 이겨. 넌 결국 맛있는 걸 먹게 되는 거야. 너의 기쁨을 아껴두지 마.”
아이는 알아들었을까? 나중으로 미뤄둔 치즈 떡과 케일 한 조각을 같이 먹는다.
“응, 엄마 말이 맞네. 치즈 맛 밖에 안나.”
그 소리를 들은 아들이 맞은편에서 라이스페이퍼 한 장을 물에 적셨다. 곱게 펼친 라이스페이퍼 위에 깻잎을 소복이 올리고 고기 한 점을 올렸다. 미소 소스 한 숟갈을 둘러 돌돌 말아 입에 쏙 넣더니 연신 씹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나 깨니 아 조아 하느데 이러게 머그니 저마 마시네.”
미감이 민감해 향신채를 못 먹는 아들한테도 나의 인생론이 통해 버린 걸까?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편견을 하나씩 깨 줄 수 있다면 나는 엄마로서 꽤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이차 성징이 시작된 아들이 고기의 절반을 혼자 먹었고, 양치질하다 입을 다친 딸은 아프다고 징징대면서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온 우리 단골 식당에서 어머님은 조용히 후르츠 칵테일 세 접시 비우셨고, 남편은 배불러도 라면은 들어간다며 야무진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놀렸다. 나? 나는 샤부샤부를 먹으면 항상 과식이다. 돌아오는 길에 한 시간을 넘게 산책했는데 아직도 배가 부르다. 소화제를 먹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