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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Oct 20. 2024

고구마 줄기 볶음

삼대가 즐기는 여름의 맛

 초록의 줄기 하나를 툭. 가볍게 잡고 꺾으면 눈에는 보이지 않던 껍질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한 번 두 번 꺾다 보면 질긴 껍질은 다 벗겨져 있고 기다란 줄기는 한 입 크기로 동강나 있다. 꺾인 순은 투명한 속살을 드러내며 싱싱한 풀내음을 뿜어낸다. 한 풀 벗겨낸 색은 꼭 봄날의 새순을 닮았다. 이정도는 금방 까겠다, 호기롭게 들고 왔는데 아무리 벗겨내도 남은 순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난다. 고구마가 무르익는 여름이면 동네 오일장에는 고구마 순을 파는 어르신들이 계시는데 껍질 깐 건 오천 원, 안 깐 건 천 원. 같은 양에 가격 차가 다섯 배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머리를 쥐어 뜯는 아들과 심심해서 투덜대는 딸을 불러 함께 까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김장 준비하는 계절, 쪽파 잘 까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딸은 고사리 손으로 곧잘 제 몫의 줄기를 벗겨내는데, 아들은 사투를 벌이더니 공부하겠다며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작전이 먹힌 건가? 나는 약간의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 얼얼한 손톱 밑을 매만지며 연 초록 순을 바라보다 고구마 줄기를 까던 엄마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여름이면 고구마 줄기와 사투를 벌였다. 신문지를 넓게 펴고 그 위에 산처럼 쌓아 올린 줄기는 좀처럼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껍질은 엄마를 성가시게 했고, 벗겨내는 중간에 뚝 끊어지는 껍질은 엄마를 화나게 했다. 괴로운 노동이 끝나면 엄마의 손톱 밑은 새까만 흙물이 들어 있었다. 빨간 고추를 곁들여 볶은 나물이 저녁 식탁에 올라오면 아빠는 입맛 없는 여름에 최고라며 밥 한그릇을 비웠다. 먹어보라는 엄마 강요에 못 이겨 한 입 받아먹었던 나물에는 밍밍한 풀냄새가 났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엄마는 매년 여름이면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깠다. 까놓은 순은 비싸다고 직접 껍질을 까는 바람에 매년 여름이면 엄마의 손톱 밑은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귀농하신 뒤로는 매년 고구마 농사를 지으시니 그 마저도 살 일 없이 밭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두 가져다 까고 있다. 이제는 이 노동을 하고 나면 이틀은 누워 쉬어야 하는 호호 할머니가 된 엄마. 손 많이 가는 음식 하지 말라고 타박도 했건만, 사위도 잘 먹는 찬이라며 망부석처럼 앉아 껍질을 깐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속이 타 들어가는 건 내 몫일 뿐. 말리지 못한다. 엄마를 위하는 말은 대게 엄마의 바람은 무시하고 내 마음 편하자는 이기적인 속셈이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내 정신 건강 때문에 손수 만든 음식으로 자식 살찌우는 낙을 엄마에게서 뺏을 자격이 없다. 대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엄마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모든 음식을 제쳐두고 품이 많이 드는 고구마 줄기 볶음을 제일 먼저 먹는다. 아삭하게 씹히는 섬유질 사이로 베어 나는 풀내음을 음미하다 보면 맛없다고 울상이던 어린 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샌다.


 내가 직접 해먹겠다고 마음먹은 건 외할머니가 해 둔 고구마 순 볶음을 맛있게 먹는 딸 때문이다. 할머니가 까고 있는 고구마 줄기를 고사리손으로 도우며 재미있다고 까르르 넘어가더니, 올라온 반찬을 저 혼자 한 접시 비웠다. 그 모습에 반해 엄마는 손녀가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그러나 매번 고구마 줄기 볶음을 얻으러 친정에 갈수는 없는 터, 딸을 위해 내가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아이들과 껍질을 까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밭대기로 쌓아 둔 고구마 순 혼자 다 까면서 고작 한줌 되는 걸 까고 있는 내게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성화다. 

“해 먹을 것도 없고, 먹고 싶어서. 강이도 잘 먹고.”

먹고 싶다는 말에 꽂힌 엄마가 해 다 준다는 걸 겨우 말리며 조리법을 물었다. 껍질 다 깐 줄기를 그냥 볶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팔팔 끓는 물에 한 번 삶아 볶으라고 했다. 껍질만 까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삶아서 볶아야 하다니. 제철 재료 치고 그 계절에 해 먹기 버거운 과정이다. 뜨거운 불 앞에 서서 고구마 순을 삶는 동안 뜨거운 엄마 마음이 느껴져 그만 눈물도 함께 끓어 버렸다. 한 여름 더위와 마디마디 통증을 잊고 손수 지은 찬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희락을 나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가 알려준 데로 다진 마늘 한 스푼 넣고 달군 기름에 양파 반 개를 썰어 멸치가루와 함께 삶은 고구마 줄기를 볶았다. 부족한 간은 액젓으로 맞추고 참기름을 덖어 볶아 낸 고구마 순과 반찬 몇 가지를 더해 점심을 먹는 시간. 딸은 할머니가 만든 것과 꼭 같다며 밥 숟갈마다 볶은 나물을 곁들인다. 손도 안대는 아들에게 아까 네가 깐 줄기는 먹어 보라니 한 입 먹은 아들 표정이 울상이다. 수십년 전 엄마가 입에 넣어 준 고구마 순을 씹던 나도 저런 표정이었겠지. 


 “그래, 나도 싫어했는데 이젠 없어서 못 먹는다 이 녀석아.”한줌 고구마 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아이들과 함께 껍질을 까며 나눈 소란이 시간 속에 남았다. 훗날 큰 아이는 껍질 까기가 싫어 공부를 했고 한 줄기 씹고 헛구역질을 했다며 웃게 되겠지. 작은 아이는 이 맛이 그리워 나처럼 고구마 줄기를 까게 될까? 그날 나를 아주 조금은 기억하게 될까? 매해 여름 고구마 줄기를 까던 엄마의 곤욕을 기억하는 나처럼. 아이들과 함께 밥 먹는 식탁 위에서 엄마가 물려준 소박한 여름 맛에 우리 가족의 시간이 무르익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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