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페와 카푸치노처럼 달랐던 우리 이야기
프라푸치노에는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해 줄 그 달콤함 속에는 나의 인연에 대한 아픈 이야기가 함께 갈려 있다. 예고 없는 파국은 많은 미련을 남긴다. 여전히 콕콕 쑤시는 상처 때문에 대나무 숲에도 꺼내 놓지 못한 인연. 카푸치노와 프라페의 만남처럼 잘 섞여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는 어쩌다 남이 되었을까?
고등학교 삼 년 내내 같은 반이던 아이가 있었다. 처음 이년 동안은 안녕 이상을 나눈 적 없던 우리는 삼 학년이 되어서야 친구가 되었다. 가까워졌기보다 같은 무리에 섞여 지냈다는 편이 더 맞겠다. 열댓 명이 함께 어울리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갔다. 고 삼. 수험생이라는 그 팍팍한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생일날이면 용돈을 모아 철판 볶음밥을 먹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며 생일잔치를 열었다.
수능점수로 인생이 판가름 난 이후 무리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벚꽃세례가 한창이던 계절, 여고생들은 신입생의 타이틀을 목에 걸고 더없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트여 설레는 봄을 보내고 있었다.
금남의 집 수녀원이 있던 우리 학교는 축제가 없었다. 때문에 이성교제 경험이 타 학교에 비해 적었다. (남고 축제를 간 친구는 이성친구를 사귀기도 했는데 학교에서 유일했다.) 처음 시작한 연애는 친구들의 도파민과 옥시토신을 무척 자극했던 모양이다. 아슬아슬한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 때문에 모임에 다녀온 친구는 수치심을 느꼈다.
부모님의 야박한 통금 시간 때문에 신데렐라보다 더 일찍 귀가해야 했던 나는 동창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간간이 모임에 참석하던 친구가 유일한 소식통이었다.
“애들이 변했어. 나랑 너무 안 맞아.”
친구들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친구는 핑계로 모임을 미루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사회에 나갈 무렵 친구는 스타벅스에 입사했다. 바쁜 초년생이었지만 틈틈이 스케줄을 맞췄다. 십 대 때처럼 생일이면 만나 파티를 했고,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그날을 기념했다. 한 달에 여덟 번 있는 휴일 중 하루는 꼭 맞췄고, 만나면 그간 지낸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의 안위를 챙겼다.
친구는 나를 가끔 자기 매장으로 데려가 그중에 제일 비싼 프라푸치노를 쥐어 주었다. 그 달콤한 커피 위에는 정량을 초과한 생크림이 올라가 뚜껑이 덮이지 않았다.
“이게 우리 매장에서 제일 인기 많은 음료다. 먹어봐.”
생크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위해 사심으로 만들어 온 음료는 그야말로 한정판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트로피처럼 쌓아 올린 생크림을 커피 우유에 섞어 먹으며 우리는 웃었다. 들키지 않았다는 친구의 안도와 나의 감동은 영원히 진동할 것만 같았다.
꿈이 많았던 친구는 이슬을 머금은 싱그러운 여름날의 아침을 닮았다.
“인도로 여행 갈 거야. 함께 갈 친구들 구하려고 인도 여행 카페에도 가입했어.”
친구의 깜짝 발표는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먼 타국 땅을 동경하며 살았으니까. 그때부터 인도 여행 계획과 타국 생활이라는 꿈을 술잔에 따라 마시며 알 수 없는 미래에 우정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뒤 친구는 모르는 사람 두 명과 함께 그 낯선 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친구가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내는 동안 나는 여전히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로운 새가 되어 삶을 향해 날아 간 친구가 부러웠다. 나를 제발 놔 달라고 화를 내고 애원해 봐도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이 강경했다.
“돌아와 봐라. 다시 취직하기가 쉬운 줄 아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견딜 맷집이 없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엄마는 그런 식으로 나를 옭아매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친구는 귀국 후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일 년 정도 캐나다에 다녀올 거야.”
이후 출국을 위해 사력을 다해 돈을 모으며 집중하던 친구는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홀연히 떠났다. 친구의 다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 몰랐다.
풋풋했던 학생 시절, 술 한 잔에 털어놨던 포부를 보기 좋게 무시하고 사는 내게 실망했던 걸까? 일 년 뒤 캐나다에서 귀국한 친구는 돌아온 소식을 알려왔지만 나와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매번 어그러지는 약속 앞에서 나는 지난날 우리가 쌓아 온 시간을 헤아리며 다시 만날 순간을 기다렸다.
위생 관념이 없는 인도는 쉰내 나는 행주로 빨대를 닦아주고 똥물인 갠지스 강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고 했는데. 캐나다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친구의 모든 순간이 궁금했다. 그리고 어느 날 구석에서 마시던 프라푸치노를 떠올렸다. 카푸치노와 프라페처럼 우린 많이 다르지만 서로의 인생에 잘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만남을 미지근한 상태로 둔 사이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사주 할머니의 예언대로 누나 많은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분명 제일 많이 기뻐하고 축하해 줄 친구를 상상했다. 나는 달뜬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 결혼 날짜 잡혔는데, 와 줄꺼제?”
“아… 정말? 잠시만, 있다가 내가 다시 전화할 게.”
그렇게 끊어진 전화는 영영 다시 울리지 않았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나를 친구는 견디고 있었던 것일까? 변화를 기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엄마 탓만 하던 내 모습에 실망했던 걸까? 맛을 바꿔도 정체성을 유지하는 프라페를 닮은 친구는 시나몬 가루에 의지해야 정체성이 드러나는 카푸치노 같던 내 인생에서 영원히 발을 빼 버렸다.
우정이 파투 난 걸 깨달은 날 쏟았던 눈물은 마음에 바다를 이뤘다. 나는 그 바다에 원망의 그물을 던져 우리의 추억을 가뒀다. 그러나 이제 거두기로 마음먹는다. 친구의 무언을 멋대로 해석하며 지난날을 해치지 않기로 했다. 청춘의 파도에 휩쓸리며 불안했던 날, 든든한 배후가 되어준 친구와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제 모습으로 남기기 위해서. 욕심 없는 작별을 고한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문학동네
사랑하는 건 모두 다 있는 곳에 가게 될 때, 나의 그곳에는 분명 친구가 있을 테니까. 언젠가 만나게 될 순간을 위해 펼쳐둔 그물을 거두고 바다를 말린다. 친구와 함께했던 나의 시간이 흘러가는 시간의 물결 속에서 반짝일 수 있도록.
나는 더 이상 프라푸치노를 마실 수 없다. 그러나 안다. 그 순간 진심이었던 친구의 마음이 나를 숨 쉬게 했다는 것을. 친구의 선택에 나의 미련을 덜어 낸다. 부족했던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다고 나직이 읊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