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다”의 의미

밭에서 찾은 삶의 해답

by 별글이

입추가 지난 여름의 끝자락, 비가 잦은 요즘입니다. 별글이의 부모님은 은퇴 후 귀농하셔서 전원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계세요. 집 바로 앞에 꽤 넓은 땅을 일궈 계절에 따라 들깨, 참깨, 고추, 배추, 무와 야채들을 키우며 살고 계시지요.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올해처럼 가뭄과 폭우 같은 기후 재난이 닥칠 때면 걱정이 되는 저는 농부의 딸입니다.


실제로 2년 전 폭우로 다 키운 참깨를 모두 흙으로 돌려보내고 그 해 참기름 수급이 어려워 식탁에서 기후 재난을 실감하기도 했지요. (둘째가 들기름 알러지가 있거든요.) 올봄에는 가뭄에 겨워 힘들어하셨고 얼마 전엔 코로나에 걸리셨는데도 나가 밭의 생명들을 건사하셨지요. 그런 정성이 비에 다 녹아 버릴까 봐 오늘도 저는 전전긍긍입니다. 아무쪼록 아버지의 밭에 물이 잘 빠져서 올해도 참기름 얻어먹을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본심이 드러났네요.)


그래서 오늘은 전소영 작가님의 그림책 [아빠의 밭]을 펼쳐 봅니다. 작가님의 '아빠' 또한 도시에서 회사만 다니시다 은퇴 후 흙을 만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이 그림책이 꼭 저의 아버지 이야기처럼 다가왔습니다.

전소영 글, 그림 달그림 출판사

작가님은 초록의 싱그러움을 색과 그림으로 정말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세요. [적당한 거리], [연남천 풀다발]을 함께 보시면 제가 드리는 이야기가 어떤 느낌인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아빠의 밭] 도슨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빠의 밭 중에서
밭일이라도 해 볼까?
...... 그런데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아빠의 밭-

아빠는 할아버지의 창고에서 주인을 잃은 농기구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밭일을 해 보기로 하지요. 평생 도시에서 직장 생활만 하신 바람에 농사의 "농" 도 모르는 아빠는 첫 해에는 한 밭 가득 고구마만 심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가짓수를 늘려가며 밭일에 능숙해 집니다. 햐지만 이 모든 결실은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닙니다. 이웃 주민들의 관심, 벌과 나비, 바람이 아빠의 농사를 돕는 최고의 동료이지요.

아빠의 밭 중에서


농부 마음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잘 되는 날만 오지는 않는다고
땅이 가르쳐 준다.
비구름 아래서 겸손해진다.
-아빠의 밭-

하지만 농사일이라는 것이 노력과 정성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때에 맞는 비와 바람, 볕을 주지 않으면 영글어 가던 열매들은 하루아침 흙으로 돌아가 버리니까요. 허탈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저 자연이 허락하는 단 하나의 열매를 위해 다시 밭으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농부의 소명이지요.

아빠의 밭 중에서
밭에 다녀가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하나라도 더 싸 주던 할머니처럼
우리들 가슴팍에 무언가를 안겨 준다.
-아빠의 밭-

밭에 찾아온 자식들의 차 트렁크는 오늘도 빈틈이 없습니다. 웬만한 마트와 비교도 안될 만큼 다양한 가짓수와 신선함으로 가득 채워져요. 집으로 가져온 아빠의 선물에서 따뜻한 사랑과 신선한 흙냄새가 풍겨 옵니다.


저도 친정에 다녀오면 트렁크가 비좁을 정도로 한가득 채워 돌아오게 됩니다. 특히 여름에는 감자, 양파, 가지, 오이, 호박, 상추, 고구마 등등 여름 열매들을 손수 자랑하시며 저희에게 제일 크고 좋은 것만 골라 주시지요. 가을이면 고춧가루, 참깨와 참기름, 들깨들을 모두 빻아 먹기 좋게 채워 주신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정성과 보람을 먹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폭삭 망한 참깨 농사로 제게 줄 것이 없다며 씁쓸해 하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때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농사 일이란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해 가을 장마를 처음 경험한 우리 가족은 그 뒤로 이상 기후 조짐이 보일 때마다 그 해의 참깨처럼 될까봐 걱정이됩니다. 그럼에도 다시 밭을 일굴 수 있는 이유는 흙이 건네는 다정한 이야기와 최소한의 보상 덕분입니다. 작가님의 아빠처럼 노력했다고 모두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땅이 주는 만큼 받고 만족할 수 있는 겸손함은 덤으로 얻는 지혜이겠지요.


문득 아버지의 카톡 인사말이 생각납니다. "농사는 인간의 본능". 아버지는 이웃 주민들이 나눠 주신 지혜에 자신만의 농법을 개발하셔서 그 동네에서는 유일하게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혀를 내두르게 힘든 농법이지요. 덕분에 나비, 벌, 두더지, 고라니가 다 아버지의 밭으로 옵니다. 약으로 얼룩진 땅이 아니라는 반증이지요. 농사가 본능이란 말이 참 와닿았습니다.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못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지만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생각하고 미래를 꿈꾸지요. 때로는 최선의 노력을 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때가 있어요. 허탈하고 화나고 좌절하지만 결국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어진 삶을 다시 열심히 살아냅니다.


내일은 하늘이 화창하게 개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밭에는 고추와 참깨, 들깨들이 따가운 늦여름의 볕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미궁들이 힘들고 지치시는 분들은 [아빠의 밭]에서 농사를 지어 보세요. 주어진 대로 겸손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와 혜안의 열매를 얻게 되실 겁니다.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

: 노력한 만큼 결과가 오지 않아 불만이신가요? 오늘부터 농부가 되어 보세요. 아빠의 밭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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