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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02. 2024

컴퍼니 인터스텔라

<3주차 임상 기록>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확인한 가장 신기 방기한 과학은 시간의 상대적 속도다. 중력이 크게 작용하는 행성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끌어당기는 힘이 시간의 발목까지 아득바득 잡는 모양이다. 반대로 중력이 가벼운 곳에서는 시간도 경쾌하게 달린다. 영화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우주에서 중력이 가장 센 천체인 블랙홀에 갔다 온 주인공이 지구에서 그를 기다리던 파파할머니가 된 딸과 해후한다.


  시간의 상대성은 우주 공간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라는 말도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일까. 마음이 무거워도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생각해 보면 흔한 이치다. 즐겁고 유쾌한 시간은 말 그대로 정신없이 지나간다.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 흐른다. 불안하고 고통받는 이의 시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옴짝달싹 안 할 테니 말이다.


  ‘면팀’과 인사이동 첫날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오늘 하루 퇴근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피난 가듯 옮겨온 새 사무실 책상에 붙어있기는 또 왜 그리 바늘방석 같은가. 불안감이 둔부로도 파고드는 것인지 도무지 앉아있지 못했다. 채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공연히 들락날락. 암만 손목시계를 들여다봐도 시간은 공회전했다. 하루가 일주일 같고 일주가 한 달 같았다. 겪어본 이들만 알 수 있다. 3주차를 지나는 오늘 역시 첫날과 같진 않지만 여전히 긴 하루를 보낸다.


  마음의 중력을 덜어낸다. 쏘아놓은 살 같은 시간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불안에 허우적대는 가엾은 영혼에게 내려지는 시간의 형벌은 너무 가혹하다. ‘정신과 시간의 방’은 무술 수련에 힘써야 하는 손오공에게나 쓸모 있을 공간이다. 마음을 가볍게 하자. 지구보다 중력이 약한 달에 착륙한 우주인은 걷지 못하고 통통 튀어서 이동한다. 마음을 통통, 콩콩 튀게 만들자. 그래야 퇴근도 가깝고 황금 같은 주말도 멀지 않다.


  좋은 생각만 한다. 정신 승리라도 상관없다. 사유의 물줄기가 어두운 틈새로 파고들려고 하면 억지로라도 가시광선 밑으로 돌린다. 이른바 긍정의 힘이다. 사전을 찾으면 ‘긍정(肯定)’은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이롭거나 좋다고 여길 만한 것’이라는 뜻은 나중에 등장한다. 그보다 앞서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그러하거나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먼저 나온다. 나도 내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유행가 가사처럼 억지 노력으로 거스르지 않는다. 회사 조직 안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언젠가 겪게 되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뿐이다.


  이롭거나 좋다고 여긴다. 매는 끝까지 안 맞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먼저 맞는 게 낫다. 살면서 이보다 더 위중한 고비가 언제 닥쳐올지 모른다. 인생의 선행 학습, 예방 주사쯤으로 여긴다. 높은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다 내려오려면 다리가 더 후들거린다. 이쯤에서 하산하는 게 차라리 충격이 덜할지 모른다. 옮겨온 산등성이에 더 좋은 풍광이 펼쳐질 지도 알 수 없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덕분에 주말, 휴일이 더 달콤해졌다. 가족의 사랑, 친구의 소중함도 진한 풍미로 다가온다. 직업이 자아실현의 귀중한 수단이라고 국민학교 교실서 배웠다. 하지만 나는 여가와 취미 역시 강퍅한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직장인의 강력한 무기임을 알고 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나를 아껴주고 내가 아끼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셈이다. 학업의 소중함도 절감한다. 기어이 나는 개강을 간절히 기다리는 학생(대학원)이 되었다.


  밑도 끝도 없는 비과학도 끌어다 쓴다. 비범한 기운이 어딘지 팍팍 풍기는 인생 선배가 한 사람 있다. 그가 얼마 전 대단히 상서로운 시간인 새벽 세 시, 뜬금없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Hoon이, 대길할 거야. 걱정 마셔!” 불면의 밤, 바닥으로 꺼지는 몸을 겨우 일으켜 휴대전화를 집었다. 암흑을 쫓아내는 휴대전화 화면 불빛 속 짧은 문장을 눈에 담는다. 그래, 다 잘 될 거야.


  마음의 무게가 점점 더 솜털 같아져서 하루가 한 시간처럼, 일주일이 하루처럼, 한 달이 일주일처럼, 계절이 달포처럼 흐르길 희망한다. 계절이 계절로 흘러서 소박하고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아, 생의 귀중한 순간을 굽이쳐 힘차게 흘러라,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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