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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21. 2024

너에게 묻는다, 러브버그

<23주차 임상 기록>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여러 사람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의 짧은 시구가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말 그대로 발부리에 속수무책 차일 만큼 하찮은 그것이 한 때 세상 무엇보다 뜨거운 불덩이로 타올랐음을 일깨워 내심 뜨끔했던 기억.


  러브버그가 창궐한다. 이제는 벌레도 영어 이름 하나쯤 가지는 시대다. 여름엔 모기나 파리 아니었어? 세태와 유행의 변화는 곤충계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그리 오래된 만남 같지는 않다. 한두 해 전쯤부터였을까. 올여름은 부쩍 개체수가 늘어난 듯하다. 출퇴근 길거리를 걷다 보면 부유하듯 날며 얼굴 앞으로 손을 휘젓게 만든다.


  그 이름도 러브버그. 다소간 ‘므흣한’ 네이밍이다. 절묘하게 찰떡인 작명이기도 하다. 어지간하면 암수 두 마리가 합체(?) 상태로 날아다닌다. 아까 낮엔 그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기도 했다. 점심 먹고 일행과 커피점에 들렀다. 유리창 바깥쪽에 붙어 러브버그 한 커플이 막 쉬어가려는 참이다.


  사랑은 등가 교환이 아니다. 주는 만큼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고마움도 모르고 받기만 하는 쪽도 있다. 러브버그가 그렇다. 착지의 순간까지 자세하게 관찰하니 두 마리가 모두 날갯짓하지 않는다. 한 마리의 힘으로만 나는 것이고 다른 개체는 생식 기관을 연결한 체 가만히 매달려 있을 뿐이다. 호기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고생은 그의 몫이냐 아니면 그녀의 것이냐. 결과는? 두둥! 위에서 열심히 날갯짓하는 건 다름 아닌 암컷이다.


  암수 차이는 어떻게 알았느냐. 수컷은 꼬리 끝이 길게 빠졌다. 쌍잠자리를 보신 적이 있는가. 잠자리의 한 종류가 아니라 비행 중에 짝짓기 하는 그것을 더러 그렇게 불렀다. 아, 쌍잠자리는 암수가 모두 공평하게 힘써서 난다. 커피점 러브버그를 살펴보니 숫자 8의 모양처럼 두 마리가 위아래로 붙어 나는데 위에 암컷만 열심히 날갯짓을 하더라, 하는 관찰의 결과다. 아래 매달린 개체의 꼬리 끝이 뾰족하더라 이 말이다.


  이상적인 사랑은 아닐지 몰라도 현실에 흔한 그것일 수 있겠다. 나만 해도 그렇다. 멋쩍은 자기 고백을 풀어놓는다. 팔불출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만 철없고 대책 없었던 내가 이만치 사는 것도 다 함께 살아주는 어떤 여인 덕분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서브컬처 따위에 심취하여 주름살만 늘어가는 괴짜 중년 싱글 아저씨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날개에 의탁해 대롱대롱 매달려 겨우 험한 세상 건너가고 있다고 부끄럽지만 자각한다.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한두 해 사이 러브버그가 많아진 건 일견 당연한 결과다. 별명 그대로 사랑이 충만하니 자연히 개체수가 늘어날 수밖에. 이 무더운 여름날 바깥에 부쩍 많아진 쌍쌍이 벌레들은 모두가 사랑 넘치는 부모의 결실들이다. 내년 이맘때 더 까맣게 많아질 것이 걱정되는 건 그것들도 아비어미처럼 지금 뜨겁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나는 안도현 시인의 작을 감히 손대어 훼손한다. 이른바 개작(改作)이다.


"너에게 묻는다, 러브버그


러브버그 함부로 잡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절실한 사랑이었느냐"


  이쯤 되니 까맣고 가슴팍만 빨간 그 용모에 아주 조금은 호감이 생겨서 정보를 더 모아봤다. 어느 정도 이름값을 하는 종들인 것도 같다. 뜻밖에 해충이 아니란다. 외려 익충에 가까운데 질병을 매개하지 않으며 생태계를 교란하지도 않는단다. 애벌레는 낙엽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어른벌레는 꽃의 수분을 돕는단다. 이렇게 들으니 지구에 기여하는 바가 나보다도 훨씬 큰 것 같다. 다만 슬픈 것은 그 뜨거운 사랑이 오래 타오르지는 못해서 러브버그는 수컷은 대개 사흘, 암컷은 일주일 이내에 사망한단다. 겨우 사흘 사는 쪽이 더 안타까 건 나도 수컷이기 때문일까.


  러브버그의 개체수 증가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온 상승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뭔 겨우 유월 중하순인데 뜨겁고 무덥기가 소위 역대급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이러다 우리나라 수도권 가로수에 야자열매가 열리고 길고양이 대신에 원숭이가 무리 지어 다니며 개천에는 피라니아가 헤엄치는 허튼 상상을 해본다. 공상이 쓸데없이 정교해지기 전에 러브버그로 돌아오자면, 이 여름 나는 조금은 측은하고 약간은 동질감 어린 눈으로 그들의 비행을 관조할 수 있을 것 같다.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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