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견하다. 미안하다. 부끄럽다.

감정일기 5일차

by 가시나무둥지

1. 대견하다.

선행을 전혀 하지 않아 아직 구구단도 헷갈려하는 쿠니가 나눗셈을 이해하긴 너무 어렵다.

그런데 깨봉의 뒷부분에 나눗셈이 나오기 시작하니, 쿠니가 워크북 문제를 계속 틀렸다. 난 채점만 해주고 틀린 게 있다면 다음번에 영상과 문제를 다시 보게끔 한다. 이번이 세 번째 다시 푼 거였는데도 여전히 전부 오답이었다.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수준이구나싶어 왜 틀렸는지 엄마랑 같이 봐보자 했다.

쿠니 왈, "아 이것들... 문제가 말이 안되는 것들이에요. 이렇게 말도 안되는 문제를 내가 어떻게 풀어요?!"

흠.... 본인이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기 싫은가보다.

"그래... 문제가 어떻게 이상한지 한번 같이 보자."

그러고는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주며, 지문 중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은 살짝 손으로 가려가며 힌트를 주었더니 4문제를 모두 스스로 해결했다. 그러면서 힘들었는지 점점 짜증이 쌓이는게 보였다.

쿠니는 스스로 모른다거나 스스로 틀렸다는걸 인정하는걸 너무 싫어한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 넌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이니 당연히 모를 수 있고, 모르는 건 배우면 되는 거라고 말해도 아이는 자존심 상해한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문제가 이상하다고 문제를 트집 잡았는데, 엄마랑 같이 풀다 보니 4문제를 연달아 맞추다 보니 문제가 이상하지 않은 게 짜증났나?

다음 장을 넘겼더니 또 틀린, 마지막 1문제가 남았다.

그걸 보더니 눈빛이 짜증으로 차오르는게 보였지만 모른척했다.

엉뚱하고 이해 안되는 풀이와 답을 내놓기에, 아직은 추상적 생각이 힘들 수 있겠구나 싶어 노트에 그림으로 그려보게 했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짜증으로 폭발해버렸다.

그 돌변하는 눈빛,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려는듯한 몸가짐 등을 볼 때마다 나 역시 꼭지가 돌아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지만, 오늘 나는 아이에게 휘말리지 않았다.

차분하게 대처했다. 아이에게 수위를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어려운걸 스스로 풀어내는 네가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히 말해 엄마가 초2때 이런거 하라고 했다면 난 솔직히 못했을 거라고 고백했다. 할머니가 엄마의 공부에 대해서 완전히 방임했기에 내가 뒤늦게 할머니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아이에게 해주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는 거 충분히 공감하고 엄마도 어릴 때 그런 적이 많았기에 컨디션 좋은 날은 엄청 공부하고 컨디션 안 좋은 날은 하나도 안 하다 보니 습관도 안 잡히고 기복이 심하더라,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최소한의 정해진 공부는 해야 하는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생각과 고백을 담담히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점차 눈에 독기를 풀고는 해보겠다고 했다.

아이의 짜증에 휘말리지 않고 잠시 나 스스로의 힘을 뺀 것에 대해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



2. 미안하다.

있었던 일을 일기로써 반추하다 보니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하고 또 훈계를 늘어놓았구나 싶어 미안해진다.


그동안 틀린 문제가 있을 때, 아이가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어 짜증을 낼 때,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고 이해를 못하는 게 짜증난다며 자기 머리를 탕탕 칠 때... 난 그 모습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평소에 기본적으로 완벽하라거나 틀리면 안된다고 다그치지도 않을뿐더러 틀려도 괜찮다, 괜찮다, 이번에 틀린 덕분에 네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되었잖니, 모르는 문제를 틀리는 건 전혀 상관없다, 이제 배우면 된다고 늘 말해준다.

그럼에도 아이는 나의 말에 수긍하는 기색없이 짜증어린 태도를 고치지 않았었다. 글을 쓰다 문득 떠오른 건....

아이가 듣고 싶던 말은 그게 아니지 않았을까?

아이는 "괜찮다"라는 어줍잖은 위로나 훈계의 말이 아닌 공감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다 맞고 싶었는데 많이 틀려서 속상하구나.. "

"한번에 이해되면 좋겠는데 자꾸 이해가 안되니 답답하구나. 이해가 안되는게 네 머리가 나빠서 그런건가 싶어 화가 나는구나."

라는 공감의 말 말이다.


3. 부끄럽다.

난 아이에게 늘 이렇게 훈계했었다.

"말이라는 건 아무렇게나 내뱉으라고 생긴 게 아니야. 말은 상대방이 들으라고 생긴 거야. 그러니 말을 할 땐 상대방 입장에서 말하도록 노력해야 해."라고...

이렇게 훈계하는 나도 똑바로 못하면서.....

실은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얘기해주지 못했다.

부끄럽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말은 상대방이 들으라고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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