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1층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왼쪽에 낯익은 이동식 장바구니가있다. '어머니오셨나 보네' 계단을 올라 4층 현관문을 열었다. '오셨네' 평소와 다른 신발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큰방 문을 여니 시어머니가 저녁연속극을 보고 있었다.옆에는 남편이 실내자전거를 타고 있다.
어머니 오셨어요~
어, 왔나~내 드라마 보고 있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가끔 헷갈린다. 여기가 내 집인지 어머니 집인지. 개의치 않는다. 하루이틀도 아니다. 오히려 요즘 뜸하셨다. 미리 저녁을 준비한 남편덕에 바로 먹을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드셨단다. 우리끼리 먹으라고 하였다.그렇게 아이들과 저녁을 다 먹고 정리를 할 때였다. 마침 연속극도 끝이 났다.
집에 반찬 있나?
어머니, 집에 반찬이 없어요.
그래~ 머 해주꼬? 내 다음 드라마 볼 때까지 30분 남았다.
사실 어머니가 먼저 집에 반찬이 있냐고 물어보았는지 내가 먼저 만들어 달라고 했는지조차 가물하다. 누가 먼저는 중요하지 않다. 반찬을 만들어 준다는 게 중요하다. 이때다. 냉큼 말해야 한다. 먹고 싶은 종류는 많다.당장 만들 수 있으면서 내가 하기엔 손이 많이 가지만어머니는 뚝딱 만들 수 있는 메뉴 두부조림이 생각났다.
어머니, 두부조림 해주세요.
그래 그래. 내 금방 시장 갔다 올게.
죄송했다. 그럼에도 시장 갈 생각은 하지않았다.조금 있으면글쓰기줌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는 동안 어머니는 시장에서 두부와 요즘 금값인 딸기도 사 왔다.큼지막한 딸기를 씻어 세 개를접시에 담아 둘째 방에 있는 나에게까지 가져다주었다. 줌수업이 끝나고 딸기를 한 입 베어무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 달아서. 어머니의 마음이 딸기의 달달한 맛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안 그래도 비싼 가격에 사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중이어서 더 감사했다. 거실로 나오니어머니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부엌에 덩그러니 놓인 냄비 안에는 금방 한 두부조림이 있었다.메인은 두부요, 갖가지 곁들인 양념재료부터 화려하다. 눈으로만 봐도 벌써 입맛이 돈다. 따끈한 흰밥에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두부하나 올려 양념국물 끼얹어먹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참았다.아껴먹어야 된다.방학 중이라 한 끼 먹을 반찬하나가 소중한 때이다.
지금까지 며느리가 요똥이라고 뭐라 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어머니는 고단수다.이건 내 생각이다. 만약 어머니가 내 집 드나들듯 아들네 집에 오면서 요리도 못한다고 나무랐다면 1층 현관문에서 장바구니를 보자마자 다른 뜻으로 심쿵했을 것이다.어머니는 아들만 둘이다.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지만 난 장남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내딸 대하듯 하는 시어머니가 어떨 땐 친정엄마보다 더 편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찬도 만들어주는데 시장까지 기꺼이 보내드리니(?)
두부조림은 내가 좋아해서 만들어달라고 한 거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뜻은 없고 그냥 골고루 먹이고픈 마음이 컸다. 어머니는 뭘 만들어도 맛있으니까. 다음날 하나도 아닌 두부 반을 잘라서 달라는 첫째.(배가 불렀다. 없어서 못 먹는 것을) 남기면 안 된다.먹어보니 맛있다는 첫째. 나 역시 양념 국물까지 척척 비벼 먹었다.
어머니는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전화하라고 한다. 그게 잘 안된다. 그냥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만들어 달라는 게 더 편하다. 언제나 그랬듯 불시에 찾아오는 시어머니가 있다. 내가 할 일은 만들어 주신 정성에 남기지 않고 오시기 전에빨리 먹는 일이다.그래야당당하게또 만들어 달라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