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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Oct 11. 2023

아들이 설거지하는 걸 보지 못했다

유난일 수도 있는 설거지


'띡 띡 띡 띡'


응? 무슨 소리지?


주방에서 깻잎을 씻고 있던 나와 샤브샤브 육수를 준비하던 남편이 동시에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아~ 어머니 오셨는가 보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집 현관 비번을 누를 사람은 유일한 단 한 사람 시어머니뿐이다.


전화를 해도 아무도 안받노


모두 진동으로 해놓고 분주하게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자 운동하러 나가 빈집인 줄 아신 어머님은 먹을거리만 놔두고 가려고 하셨단다.



어머니, 저녁 안 드셨죠?


엄마는 먹을 복이 있네. 같이 저녁 먹음 되겠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에 마침 타이밍이 절묘했다. 

추석날 뵌 후로 열흘 만의 만남다. 오늘 시댁 단톡에 어머님이 방문한 봉사활동의 사진을 보며 아 오늘 어디 다녀오셨네라는 예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거실에 선물보따리 푸는 산타할머니처럼 바나나와 사탕 잡곡에 음료수 등 먹을거리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직도 아이들은 할머니의 가방이 궁금하다.



마침 오늘 저녁 메뉴는 삼겹살과 샤부샤부다. 탁월한 메뉴선택이었다. 어머니가 드시기에도 나쁘지 않은 메뉴다. 평소 있는 반찬으로 부실하게 먹는 날 오시지 않아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저녁을 먹는 사이 열흘 동안(?) 풀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서네 다녀온 이야기, 이모님 가게에 간 이야기. 봉사 다녀오신 이야기.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어머님이시다. 오히려 바쁘신 모습이 참 좋다.

 

평소 먼저 전화하여 안부를 묻는 살가운 며느리가 아니라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문(?)으로 소식을 전하는 게 차라리 나는 편하다.


어머님은 서둘러 저녁을 드시고 할 이야기도 다 하셨는지 주섬주섬 집에 갈 채비를 하였다. 이제는 최대한 예의 차리며 배웅하지 않는다. 들어올 때도 알아서 오시나갈 때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쿨한 퇴장을 하시는 어머니다.



"어머니 멀리 못 나가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리곤 마저 저녁을 해결하고는 뒷정리를 하였다. 어머님이 모르는 한 가지. 아들이 설거지하는 걸 보지 못했다. 예상은 하셨을까? 요리하는 걸 본 적은 있어도 설거지하는 건 한 번도 못 보았을 텐 데. 은근 쫄깃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냥 이 상황이 혼자 웃음이 나고 만족할 뿐이다. 괜한 장난기가 발동한다.



어머니가 오빠 설거지하는 거 보면 눈물 흘리는 거 아니야?


내가 안 했으면 우리 엄마가 했을 걸


아차 그럴지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전에도 어머님이 설거지도 서슴없이 하셨다. 그냥 놔두라고 했지만 기어이 하신다는 적극적인 행동에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밥 먹고 나면 설거지하는 거야 누구든 하면 되지. 그게 머 별 대수라고. 유난도 아니다. 하지만 나에겐 유난일 수도 있는 설거지. 특히나 저녁 설거지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더 크게 와닿는다. 그래서 가끔 저녁설거지를 도맡아 해주는 남편이 더욱 고맙고 감사하다. 분명 같이 해야 할 일인데 왜 고마운 거지? 그냥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청소는 며칠 지나칠 수 있어도 설거지는 매일 해야 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지나칠 수도 있는 고생 했어라는 말 한마디. 그래서 칭찬은 더욱이나 필수적이다. 미룰 때도 있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설거지. 나는 칭찬이 꽤나 고팠나 보다.



"우리 서방 오늘 고생했어. 내일 마누라는 일을  테니  연차인 남편님은 푹 쉬세요" 







사진출처: (제목)픽사베이, 햇님이반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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