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Aug 19. 2023

우리 집엔 언제 나타날지 모를 그분이 오신다


평일 휴무일 날 큰아이의 개학소식에 입꼬리가 나댄다. 직 초딩이가 있어 둘이 바통터치 하듯 한 명 나가니 한 명이 들어온다. 혼자 있고 싶던 찰나 웬일로 전천당이 보고 싶다며 책을 빌려달라는 중딩이.(본인도 혼자 있고 싶었나?) 얼마만의 독서 의사를 밝힌 건지 오히려 감사해야 할 판이. 알겠다며 굳이 반납일도 아닌데 기어이 엉덩이를 들석였다. 


도서관 나오는 길 남편의 퇴근이 늦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갑자기 저녁이라는 큰 숙제가 이닥쳤다. 오늘은 떡비라며 너를 마음속에 품고 시장 들렀다. 한발 늦었다. 가게 앞을 마주하니 몇 개 남을 것 같던 떡갈비마저 앞사람이 싹 쓸어 담아버렸다.  일찍 나올걸. 미련 가득했지만 이내 등을 돌렸다. 갈비 대신에 산 훈제 닭다리가 은혜 갚은 닭다리(?)가 될지도 모른 체.




집에 도착하니 시어머님이 와 계신 게 아닌가?! 두둥!! 우리 집엔 온다 간다 말씀 없으신 언제 출몰할지 모를 시어머니가 신다. 다른 집과 달리 일반적이지 않은 이 점이 나는 별 대수롭지가 않다. 오히려 더 반가울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이 와중에 하게 저녁 준비랄 것도 없다. 내가 준비한 건 닭다리 3 만원 주고 사 온 게 다 다. 생각했던 저녁메뉴는 더 있었다. 달걀 묻혀 애호박 굽기, 햄에 계란 묻혀 굽기(그냥 다 계란에 굽기다) 오늘 이렇게 먹을 거였어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구워줄게라고 하시며 누구보다 더 빠른 손놀림으로 일사천리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어머니, 노각오이가 있는데 진짜 오늘내일하고 있어요. 얼른 무쳐주세요."  하하^^; 


"아이고 그럴 거면 집에 두 개 더 있는데 들고올걸" 며 아쉬워하신다.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이외에도 어머니에게 반찬은 날것 아닌 완제품으로 해주세요라는 당당한 말을 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시엄니께서 내가 한 말에 혹여나 섭섭해하실까 남편이 얘기하길  00은 친정이나 시댁이나 똑같이 대한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친구들 초대하기 며칠 전부터 청소는 해도 언제 오실지 모를 어머니를 대비하는 청소는 하지 못한다. 할 말하는 내가 있으니 그러지 않고선 같이 살지 않는 이상 우리네 집을 놀이공원프리패스권처럼 들락날락하시는 시엄뉘를 편하게 대하진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셔서 엉덩이 한번 붙일 겨를 없이 분주했다.  그 외에 오늘 갓담은 겉절이 같은 김치며 마른반찬의 최고봉인 오징어진미채랑 어제 따온 싱싱한 고추까지 바리바리 준비해 오셨다. 그 덕분에 순식간에 저녁밥상이 푸짐해졌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우리 먹을 저녁거리 다 만들어주시고는 집에 가서 드신다는 어머니. 이렇게 많이 준비해 주시고 왜 집에 서 드시냐며  붙잡아둔다.  치과치료를 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딱딱한 음식 먹기가 불편하단다.  닭다리 살을 발라내고 있던 첫째가 할머니 입에 한 조각 넣어드렸더니 이건 부드럽네 하시며 잘 드셨다.  이내 받기만 했던 마음에 뭐라도 드릴 수 있어 탁월한 메뉴선택을 했다는 거에 괜히 뿌듯하다. 사람이 떡갈비를 다 사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이들도 맛있다며 눈을 더 크게 떴다(내가 만든 것에 이렇게 큰 호응이 있었던가)




 잘해드려야 한다. 반찬을 떠나 아니 한 몫하는 건 기정사실. 어머니의 그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는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아들도 없고 며느리도 없어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사위보다 더 어려운 게 며느리이거늘 (우리 엄만 3명의 사위가 더 어렵겠지?)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애써 부담가지며 잘해드리지는 못한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그저 말 한마디 더 예쁘게 해 드리 우리네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다. 그러니 더 편하게 드나드시는 거겠지?









사진 출처 : 햇님이반짝 갤러리

이전 01화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다녀간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