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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Feb 14. 2023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다녀간 날


'오늘은 뭐 먹지'


항상 나보다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요 며칠 회사에서 늦어진다고 한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저녁을 준비하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아니 원래 요리는 남편 담당이라고 할 만큼 명확히 해두고 싶다.


'그럼 우리 저녁은 어떡하라고'

평소 저녁 차릴 기회를 잘 내어주지 않는터라(내가 늦어서) 오랜만의  찬스에  대략 난감하다.

저녁 부담에 일도 못 그만두겠다 뭔 소리야


 괜한 복에 겨운 투정이 절로 일어난다.

퇴근 전부터 저녁메뉴에 온 신경이 쓰인다.

요리똥손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다.


남편이 며칠 전 김밥하고 남은 햄이 있으니 달걀에 묻혀 구워 먹으라는 미션을 내렸다.  햄하나면 만사오케이겠지만 요주제에  건강생각한답시고 햄 구워주기는 또 꺼린다.  그렇다고 시장에 들러  장 봐올 생각도 안 하는 나란 엄마는  어디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가. 그냥 있는 반찬 대충 꺼내 먹어야겠단 생각뿐이.




집에 도착하니 식탁 위에 놓인 반찬과 과일이 떡하니 반겨준다. 이 날따라 딸기 빛깔이 더 영롱스럽게 느껴진다.

'오마나 세상에 언빌리버블 신이시여'

(이렇게까지 맞다)


이거 뭐야

우렁각시가 다녀갔다.

안 봐도 척  안 물어봐도 딱

일용할 양식선사하는 그 우렁각시는  바로 울 시어머니



비록 누가 봐도 엄청난 요리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반찬 갖다 주러 온 그 정성에 대한 감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저녁 반찬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어머니께서 직접 손수 구우신 바삭바삭 짭조름한 김 두 봉지 참기름 향이 솔솔 코 끝과 미각을 사로잡는다.  브로콜리는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두부는 오리엔탈드레싱 샤워를 시켜준다. 내가 원하 건강식이 아니던가


쥐포는 그전에 이미 매콤 달싹한 빨간 양념에  버무린 반찬이 아직 있다. 그래서 이번엔 빨간 옷을 홀딱 벗은 누드쥐포를 만들어 주셨다.  냉장고를 뒤져 있는 거 없는 거 반찬 다 꺼내서 저녁을 차린다. 무나물(이것도 시엄뉘표)도 꺼내고 달걀도 세 개 구웠다.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저녁밥상이 되었다.


태권도 다녀온 두 자매님은 전 날부터 주먹밥에 꽂혀 오자마자 김가루를 찾는다. (여태 괜한 저녁 고민한겨)  그 와중에 야채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브로콜리와 두부를 권하는 .


저녁상을 차리고 한껏 업된 톤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

"어머니, 저희 집에 우렁각시가 왔다 가셨네요,  잘 먹을게요  감사해요"  저녁 드셨냐고 물어봤더니  그저께 우리 집에 갖다 준 팥죽 그대로 있길래 가져가 드셨단다. 

",  먹을 시간이 없었어"(아무도 안 먹어요)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에 끊을 기미를 보이지 않으신데  오늘은 다르다.  빠르게 끊으려는 뉘앙스. 드라마 한 편이 끝나고 다음 드라마를 연이어 봐야 하기에  급하게 마무리한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만들어줄게"

(절대 사양 안 한다. 빠르고 간결하게 즉각 대답한다.)

",  어머니  쥐포 너무 맛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요똥 유지 중이에요)


소소하지만 빠질수없는 저녁 한 끼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걸 느낀다.  언제든지 다녀가주세요. 우렁각시.






사진출처:내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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