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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Jan 29. 2024

시어머니에게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이유


토요일 오후 퇴근 후 두 딸은 아이스링크장에 넣어주고 우리 부부는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다. 남편이 아이들을 아이스링크장에 데려다주는 동안 내가 먼저 카페에 머물렀다.



뒤늦게 도착한 남편과 이야기도 하고 각자 할 일도 했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방해 없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중

남편의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어머니였다.

남편의 통화내용상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우리 지금 애들 아이스링크장 넣어주고 근처 카페에서 00랑 커피 마신다.
엄마 평일에는 연락 없이 와도 되는데 주말에는 미리 전화해래이~



이건 무슨 소린가. 주말에 미리 연락하면 외출도 안 하고 집에 있겠다는 말인가. 아닌 거 알면서도 괜히 움찔했다. 


며칠 전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부탁한 건 두부조림만이 아니었다. 당장 만들 수 있는 건 두부조림이었지만 번외로 부탁한 반찬들은 따로 만들어서 가져다주신다고 했다. 그래서 주말에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그냥 들리신 거다.






저녁은 집 근처 둘째 언니집에서 먹고 늦은 밤이 돼서야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부엌싱크대위에 반찬통 세 개가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있다. 반찬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가지런히 놓인 일용할 반찬들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하다. 맨 위에 있는 반찬통은 너무 가벼워 빈통인 줄 알았다. 혹시나 뚜껑을 열어보니 갓 구운 김이었다. 어머니는 김을 한 장 한 장 손수 구워 준다. 이게 맛있다. 바삭바삭 고소하다. 그래서 시판용 김을 잘 안 사 먹게 된다. 어머니가 입맛을 돋우게 만들었다. 이건 엄연히 어머니 잘못이다(?) 연달아는 아니지만 자주 만들어달라는 이유다. 김은 남편이, 빨간 쥐포는 첫째가 주문했다. 나물은 나 혼자 반갑다. 콩나물과 시금치를 보고 남편과 딸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큰 그릇에 달걀을 넣고 비벼서라도 한 번은 맛을 보게 한다. 4종은 우리 집 단골 메뉴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싱크대가 깨끗하다. 설거지가 없다. 퇴근 후 카페를 가기 위해 블루투스키보드를 챙기러 집에 잠깐 들렀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점을 먹고 던져놓은 설거지가 있었다. 모른척했다. 외출 후 돌아오면 남편이 하거나 내가 하거나 해야지 하고 얼른 챙기고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설거지까지 해놓았다. 이러려고 비밀번호를 공유한 건 절대 아니지만 편한 것도 사실이다.



밤 열 시 반이 다 되었지만 아직 주무시지 않을 것 같아 전화를 다. 역시나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어머니, 반찬 잘 먹을게요"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 아파트 일층에 친구가 이사를 와서부터 시작으로 참기름과 초고추장이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 친구 중에 이름이 입에 착 감기는 분이 다. 그 친구가 아닌 줄 알면서 나는 늘 ㅁㄴ이? 하면서 친구 이름을 소환한다. 같은 동에 사시는 친구분 이름도 물어봐야겠다. 한참을 돌고 돌아 통화를 종료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에게 본인 집에 올 때는 미리 연락하고 오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가정이 있는 아들집에 갈 때 연락을 하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내심 섭섭하셨나 보다. 남편과 나는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편하게 오시면 나도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편함이 무례가 되지 않도록 한다. 아직까지는(?) 평안하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한 달에 두 번은 아이들이 어머니집에서 잤다. 그새 자란 것도 있고 어머니도 주말에 안 계시어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어머니집에 거의 가지 않는다. 전화도 하지 않지만 가족 단톡으로 가끔 근황은 알 수 있다. 언제든지 다녀갈 수 있는 우리 집으로 소통한다. 시어머니에게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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