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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Aug 11. 2023

뻔뻔함이라는 무기

얼굴 두꺼운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국내에서 6개월간 학원을 다니며 준비를 했다. 레벨 테스트에서 1단계를 받아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덕분에 열심히 할 동기도 얻었다. 처음에 결심했던 대로 매달 단계를 올려 6개월 후에는 꽤 높은 단계가 되었다.

호주의 학교에 도착했을 때도 레벨 테스트부터 했다. 중간 정도의 단계가 나왔다. 몇 달 전의 첫 레벨 테스트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위로는 여섯 단계 정도가 더 있었다. 이번에도 매달 한 단계씩 올려서 가장 높은 단계로 학교를 떠나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그리고 6개월 후 야망은 현실이 되었다. 야망을 실현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아야꼬’라는 일본 친구였다. 아야꼬는 등교 첫날, 테스트를 하던 교실에서 옆에 앉아있던 일본 여자였다.


  몇 달 동안 열심히 등급을 올려가며 회화를 준비해서 왔지만, 실제로 외국에 나와 외국인과 대화해 보니 다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던 학원 선생님들과는 달리 홈스테이 가족들은 내 말을 잘 못 알아 들었다. 책으로 연습했던 회화와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당황스러웠다. 역시 학원과 현실은 달랐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점점 말을 안 하게 되었다. 

겨우 하루 지났을 뿐인데… 이러려고 큰돈 들여 온 게 아닌데… 

앞으로 몇 달을 어찌 지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홈스테이 가족은 그렇다 쳐도 선생님은 좀 알아듣겠지 했는데,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옆에 앉은 일본 학생은 선생님에게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말을 잘하는 것 같았다. 부럽기도 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같이 지낼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에 먼저 말을 건넸다. 아야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학원에서 제일 처음에 배웠던 자기소개와 질문이었던 것 같다.

테스트가 끝난 후에 아야꼬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학원에서 연습해서 외운 회화가 바닥이 나고 진짜 이야기를 하게 되자 심하게 더듬거렸다. 알고 보니 아야꼬도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쉽지 않았지만 둘은 의사소통을 했고 대화는 이어졌다. 오후에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예상과 달리 아야꼬는 나보다 두 등급이나 아래 단계의 반에 배정되었다. 몇 달 전 한국에서 1단계를 받았을 때만큼의 충격이었다. 나보다 잘 나올 거라 생각했던 아야꼬가 두 간계나 아래라니?? 


  아야꼬는 사실 문법이나 단어는 많이 부족했다. 발음도 전형적인 일본인의 발음이었다. 문법에 어긋나는 말, 잘못된 단어 사용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당당하게 하는 자신감, 뻔뻔함이 있었다. 가장 배우고 싶은 태도였다. 물론 한 번에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홈스테이 가족이나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소심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야꼬와 대화할 때는 달랐다. 문법도 발음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아야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도 대화가 편해졌다. 선생님, 홈스테이 가족들과도 점점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잘못된 표현이나 발음을 다시 말해줬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는 매우 유용했다.

어학연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영어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면 제일 좋겠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같은 목적으로 공부를 하러 온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거다. 나의 경우는 주로 일본인과 대만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들과 대화할 때는 영어 실력이 비슷해서 인지 부끄러움이 없었다. 또한 문화적 배경이나 환경이 비슷한 덕에 대화거리가 많아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영어 수준이 비슷한 친구들과만 대화를 하면 많이 늘지 않을 수 있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감이 생긴 후에는 유럽 출신 학생, 나아가 호주 사람들과 대화를 늘렸다.



  회화를 연습할 상대로 점찍었던 아야꼬와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두 달 후 홈스테이를 나와 같이 집을 얻어 살았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아야꼬를 언니라는 의미의 ‘아야네짱’이라 부르며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냈다. 

아야네짱으로부터 배운 건 자신감과 뻔뻔함만은 아니었다. 자립심, 도전 정신, 친구 만들기 & 사교활동, 요리도 배웠다. 무엇보다도 우정을 배웠다. 어학연수는 영어뿐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기회도 될 수 있다.



그림 출처: https://www.businessinsider.com/common-similarities-between-friends-2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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