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 Aug 16. 2023

떠나간 춤은 또 다른 춤으로...

삶은 춤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는 큰 무대를 상상해 볼까요. 한창 춤을 추고 있을 때음악이 바뀌면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겠지요. 하지만 삶은 늘 변하기 마련이랍니다.

                                                                                          - 돈 미구엘 루이스(Don Miguel Ruiz)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춤은 재미있었다. 일주일에 2회, 한 시간씩 모두 두 시간밖에 안되다 보니 달라진 게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가득한 일상에 유일한 탈출구였고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한 학기, 3개월이 지나고 다시 한 학기를 등록했다. 중급반으로 올라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시 초급반에 남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3개월 전 내 모습이 저랬겠지.’

어색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시 처음부터 기초 동작을 연습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마치 데자뷔 같이 익숙했다. 익숙한 동작이지만 새로운 음악에 새로운 ‘작품’을 시작했다. 분명 음악이 달라졌고 새로운 작품이라는데 안무는 지난달과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아마도 초급반에서 배우는 동작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랬을 거다. 첫 3개월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여전히 삶의 활력소이긴 했지만 처음만큼 그렇게 기다려지진 않았다.

다시 3개월이 지나고 이제 중급반이 되었다. 새로운 동작을 몇 개 배우긴 했지만 초급반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회사일을 핑계로 빠지는 날이 늘어갔다.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벌서 흥미가 떨어지다니… 이집트에서 사 온 예쁜 벨리 드레스는 아직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안타까웠지만 점점 마음이 멀어지고 있었다. 마침 새 프로젝트를 맡아 일주일에 2회 마저도 못 가게 되었다. 벨리 댄스와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금세 달아오르고 빨리 싫증 내는 버릇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했다. 새로 맡은 프로젝트가 재미있어서 몇 달 동안은 일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허전했다. 마음만 아니라 몸도 무언가 빠진 듯 허전했다. 뭐가 빠졌는지는 금방 알아챘다. 다시 벨리 댄스를 시작하려 했지만 아직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회사 근처, 시내에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문화센터가 아닌 학원을 갔다. 몇 달 쉬면서 잊어버리기도 했고, 다시 잘 배우고 싶은 마음에 초급반에 등록했다. 한꺼번에 여러 달을 하면 싸다고 해서 6개월치를 한꺼번에 등록했다.

다시 한번 두근거리는 첫 수업. 대학가 근처의 시내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젊은 사람도 많고 외국인도 있었다. 선생님도 20대처럼 보이는 젊은 분이었다. 왠지 지난번보다 더 활력이 넘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공연복을 입고 춤을 출 기회가 생길 것만 같아 설레었다.  



20대의 젊은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수업 시작 처음에 한번 동작을 설명하고 나면 그저 선생님이 하는 걸 보며 따라 할 뿐이었다. 젊은 수강생들도 말이 없었다. 말없이 따라 하고 있는 수강생들을 보면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대충 흉내만 내고 있는 것 같은데 질문이 없었다. 외국인 수강생들은 더욱이 말이 없었다. 선생님도 수강생도 모두 젊었지만 활력이 넘치기는커녕 춤을 추는 시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재미가 없어 열심히 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달쯤 지났다. 프로젝트 마무리로 엄청 바빠지고 마침 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와서 같이 노느라 한 달 정도 빠졌다. 미리 말하면 수강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고 해서 아예 두 달 동안 쉬겠다고 말하고 빠졌다. 거기서 한 달이 더 늘어 석 달 만에 학원을 갔다. 프로젝트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제대로 하겠다고 다짐하며 학원 건물을 올라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학원 자리에는 이상한 간판이 붙어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다른 업체가 영업하고 있었다.

‘그새 이사라도 했나?’ 

너무 황당해서 전화를 해보니 없는 번호라고 했다. 그 학원은 유명한 벨리 댄서가 운영하는 댄스학원의 분점이었기에 본사에 연락해 봤다. 어이없게도 학원을 빠진 석 달 사이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남은 수강기간은 다른 분점에서 이용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황당함이 가시지 않았다. 넉 달이나 남은 수강기간은 사실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분위기가 별로라서 가고 싶은 맘도 별로 없었고, 워낙 싼 값에 등록한지라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의 라커에는 이집트에서 사 온 힙스카프가 들어있었다. 고급 동전이 달려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는, 후르가다 상점에서 가장 비싼 그 힙스카프.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맑고 경쾌한’ 소리에 절로 신이 나는 그런 힙스카프 였는데... 혹시 라커에 있던 물건들을 전해 받았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폐기됐을 거라는 답만 들었다. 황당함이 분노로 바뀌어서 애꿎은 본사 직원에게 화를 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했지만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담당자들이 모두 사라졌기에 어쩔 수 없다고만 했다.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것 같아 그냥 전화를 끊었다.

말로만 듣던 장기 등록 사기 피해를 당한 셈이라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잊기로 했다. 벨리와의 인연은 진정 여기까지가 끝인 것 같았다. 벨리의 ‘벨’ 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몸은 움직여야겠기에 댄스계에 새롭게 떠오르던 신예 스타, 줌바 댄스를 시작했다. 최신 유행 가요에 맞춰 힘찬 동작, 강사의 구령이 어우러진 매우 신나는 춤이었다. 한 시간에 1,000 칼로리를 소모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매우 격렬한 춤이었다.

처음 새로운 걸 시도할 때는 늘 설레고 재미있다. 몇 달간은 그렇게 또 새로운 재미, 새로운 활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끝이라고만 생각했던 벨리와의 인연은 엉뚱한 곳에서 다시 이어졌다.



그림 출처: https://stepngroovedance.wordpress.com/2014/07/23/the-health-benefits-of-summer-dance-classes/

이전 06화 머리 쓰기보다 몸 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