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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Aug 23. 2023

벨리 댄스에 가장 적합한 몸은...?

나는 평생을 춤을 췄습니다. 그리고 벨리 댄스는 내 몸을 지금 그대로 가장 편안하게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 제시카 아르세노


  줌바 댄스를 추며 새로운 활력을 찾던 그때,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잘 다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게 너무 싫었다. 마음이 떠난 걸 몸도 느꼈던 걸까? 줌바 댄스로 얻는 활력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졌고, 억지로 일어나서 올라탄 지하철은 지옥행 열차처럼 느껴졌다. 상사와의 갈등도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때마침 회사에서 조기퇴직을 발표했다. 퇴직금과 위로금, 수당 등을 계산해 보니 2년은 놀고먹어도 될 것 같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신청했다. 웬일인지 그동안 못살게 굴던 상사가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말렸다. 드디어 내게도 직장인의 로망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붙잡는 상사의 손을 뿌리치며 사표를 던. 지. 고 나왔다!!!

나중에 몇 년간 뼈저리게 후회하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갑과 을이 뒤바뀌기라도 한 듯 우세한 나의 위치를 맘껏 즐겼다.


다시 취업하기 전 몇 달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할 때였다. 얼마 전 대학원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파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친구에게 놀러 가도 될지 연락을 해봤다. 7년 만의 연락에도 친구는 반갑게 답하며 놀러 오라고 했다.

‘아싸, 나도 파리에서 한 달간 살아보는 거야.’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미국인 친구, 나타샤에게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국요리를 해주기로 약속하고 한 달간 파리 살기를 시작했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를 거쳐 스페인과 모로코까지 처음으로 몇 달이 걸리는 긴 여행을 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터키와 모로코였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 유럽과는 다른 ‘중동’을 느끼고 싶었다.

터키의 첫 도착지는 이스탄불이었다. 그때 대부분의 숙소를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이스탄불에서는 중심지인 탁심 광장에 가까우면서도 새로 지은 깨끗한 집에 머물렀다. 상당히 친절했던 주인은 내가 그 집의 첫 번째 손님이라며 싼 값에 머물게 해 줬다. 게다가 탁심 광장과 주변 시장 등을 직접 안내해 줬다. 내가 벨리 댄스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집 근처에 있는 벨리 전용 극장도 소개해줬다. 이곳은 관광객용으로 밥과 춤을 즐기는 디너쇼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관광안내책자에는 나오지 않는 전문 댄서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하는 곳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극장은 원래는 하맘이라 불리는 공중목욕탕, 즉 터키탕을 개조한 곳이었다. 작은 원형극장 같은 형태의 앞쪽 반은 무대이고 뒤쪽 반은 관객석인 독특한 구조였다. 맨 앞자리에 앉자 댄서의 땀이 튀고 거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무대와 관객석이 가까웠다. 첫날 본 공연은 ‘이게 정말 벨리 댄스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동안 봤던, 그리고 배웠던 벨리 댄스와는 완전히 다른 춤이었다. 마치 발레 공연처럼 막으로 구성이 돼있고 전체적인 스토리가 있는 공연이었다. 다만 무대가 오스만 제국의 궁궐이고 벨리 댄스 의상을 입는다는 것이 달랐다. 댄서들도 좀 달랐다. 이집트에서 봤던 댄서들이 덩치가 크고 뱃살이 두둑했다면 터키의 댄서들은 발레리나처럼 마른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뚜렷한 복근을 가진 댄서도 있었다. 뱃살이 좀 있고 근육은 없어야 벨리 댄스에 유리한 줄 알았는데... 핑계 김에 다이어트도 미뤘는데... 아니었나 보다. 

무엇보다 색다른 점은 남자 댄서도 있다는 거였다. 그날은 벨리 댄스라기보다는 발레와 벨리의 퓨전 정도라 남자 댄서들이 벨리를 추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통 벨리 댄스 공연이 있던 다음날, 남자 댄서의 공연도 있다고 했다. 여성의 춤으로만 알았던 벨리 댄스를 남자가 춘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고, 배와 골반을 사용하는 동작들을 어떻게 할지 우려스럽기도 했다.


  이스탄불에서의 하루는 단순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에서 전날 사 온 빵이나 파스타로 아점을 먹는다. 천천히 준비하고 나온 뒤에는 아야 소피아 같은 관광지를 다녀오거나 바자르(시장)를 둘러본다. 오후 늦게 배가 고파지면 이른 저녁으로 발륵 에크멕(고등어 샌드위치) 같은 길거리 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남들은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에 나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관광지나 시내를 다닐 때는 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예쁜 옷에 굽이 높은 구두로 갈아입었다. 누가 보면 데이트라도 하러 나가나 싶었겠지만 그렇게 차려입고 벨리 댄스 공연장을 갔다. 내가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니었고 드레스 코드가 있는 공연장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 정도는 꾸며주는 게 댄서들에 대한 예의 같았다. 

신선했지만 조금은 의아했던 첫 터키식 벨리 댄스 관람 후 두 번째 날. 그날은 여러 종류의 벨리 댄스를 모은 공연이었다. 이집트에서 봤던 춤만 벨리 댄스인 줄 알았는데, 벨리 댄스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그에 따라 의상도 다양했다. 이집트에서 추는 춤은 이집션(Egyptian)이라고 불리는 벨리 댄스의 한 종류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벨리 댄스는 이집트에서 유래됐고, 이집션 댄스가 오리지널(전통)이라고 분류된다).

그날의 공연 중 가장 기대되는 춤은 남성 벨리 댄서의 춤이었다. 사실 남자가 벨리 댄스를 추는 걸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전에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코미디언이 추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거대한 배를 깜짝 놀랄 정도로 유연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그가 배를 드러내고 춤을 추는 상황 자체가 웃음이 터지는 한 편의 코미디였다. 이번에도 왠지 남자가 여자의 춤을 춘다는 코믹한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우려가 됐다.

그런데 나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였다. 그의 춤은 전혀 웃기지 않았다. 멋진 복근이 있는 배로 추는 웨이브와 쉬미(배꼽 떨림) 등의 동작은 여자 댄서들의 움직임과는 다른 의미에서 우아함과 힘이 넘쳤다. 근육이 너무나도 정직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던 동작도 이해가 되었다.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 알려진 벨리 댄스 마스터 중에는 남자들도 꽤 있었다. 현재 나의 선생님의 선생님도 이집트 남자 벨리 댄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자 벨리 댄서에 대한 편견이나 조롱도 있다. 나 또한 처음에는 우려를 가장한 편견으로 가득 찼더랬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춤을 보면 편견이든 조롱이든 아니면 우려조차도 쓸데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집트에서 처음 벨리 댄스를 봤을 때처럼 감동을 받았고, 역시나 이스탄불에 있는 동안 매일 공연장을 찾았다. 내친김에 1주일 일정의 워크숍도 참여하려고 했다. 벨리 워크숍은 5일 동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여섯째 날은 바자르를 방문해서 옷과 장식품, 도구를 산 뒤에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촬영한다. 그리고 마지막날은 그동안 배운 춤으로 공연을 한다. 물론 정식 공연은 아니고 관광객 용 식당에서 전문 댄서가 공연하는 중간에 꼽사리로 끼어드는 것이지만... 그게 어딘가. 첫 공연을 터키에서 하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수기라 인원이 안 모여 내가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은 워크숍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개인 지도는 가능하다는데 당시에는 그 정도의 열정과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아쉽지만 포기했다.  

열흘 간의 이스탄불 여행을 마치고 카파도키아(Cappadocia)로 떠나던 날. 워크숍도 못하고, 옷도 못 산 게 어찌나 안타깝던지... ‘꼭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정말 빨리 이뤄졌다. 



그림 출처: http://pressroom.alvinailey.org/the-ailey-extension/faculty/janelle-is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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