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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Aug 27. 2023

이스탄불의 댄스 맛집

때때로 삶은 당신을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데려갑니다. 하지만 그곳은 가장 좋은 길일지도 모릅니다.

                                                                                                                    - 작자 미상


  터키의 카파도키아는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버섯을 닮은 기괴한 모양의 바위들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기한 곳이었다. 자연이 만든 돌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건축물도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든 동굴호텔도 놀라웠지만 바위와 절벽을 뚫어 집과 요새를 만든 고대 지하도시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기암괴석으로 가득 찬 자연박물관을 걷는 것도, 더 많이, 멀리 보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즐기는 것도 모두 좋았지만 카파도키아 여행은 그리 즐겁지 만은 않았다. 한 달 전쯤 산토리니에서부터 시작됐던 두드러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밤에 올라왔다가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는 사라졌고, 그것도 매일 올라오는 건 아니라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스탄불을 거쳐 카파도키아에 이르자 올라오는 빈도수도 늘어나고 가려움의 정도도 심해졌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두드러기가 사라지지 않고 얼굴에까지 올라온 걸 보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필 그날은 일요일. 큰 병원의 일반 진료실은 모두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응급실을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갔다.

근방에서 가장 큰 도시에 있는 인터내셔널 병원이었는데도 영어를 하는 의사도 직원도 없었다. 같이 갔던 터키인 여행사 직원의 도움으로 어렵게 진료를 받았다. 그냥 알레르기 반응이란다. 흔한 복숭아 알레르기, 꽃가루 알레르기조차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심한 알레르기라니... 이해가 안 되었고 묻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여행사 직원의 영어 실력이 나의 질문과 의사의 답을 통역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주사 맞고 처방전만 받아 나왔다. 다행히도 주사를 맞으니 두드러기는 모두 가라앉았다. 하지만 아침에 얼굴에 올라온 두드러기를 봤을 때의 충격과 남의 나라에서 응급실을 갔다 왔다는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파리를 떠난 지 겨우 두 달 밖에 안 지났는데 몸도 마음도 모두 약해져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무리하지 않고 놀면서 쉬면서 한 여행인데도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는 의사가 있는 곳에서 정확한 알레르기 검사를 받고 싶었다. 문득 지브랄타(Gibraltar)가 떠올랐다. 10여 년 전에 살았었고, 아직까지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두 달 후에나 가려고 생각했던 곳인데 지금 가도 되는지 친구에게 연락해 봤다. 다행히도 당장 오라는 답을 들었다. 카파도키아 이후 파묵칼레, 에페소스 등을 거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모로코로 가려했던 계획은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하지만 영국의 직할식민지인 지브랄타로 가려면 이스탄불에서 런던을 거쳐 가야 한다. ‘꼭 다시 돌아오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하며 떠났던 이스탄불을 열흘 만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열흘 만에 다시 돌아온 이스탄불. 이번에는 숙소를 아예 벨리 댄스 전용 극장 옆에 있는 호텔로 잡았다. 지난번에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차가 끊길까 봐 서둘러 집에 가야 해서 아쉬움이 컸다. 이번에는 공연이 끝난 후에 차 끊길 걱정 없이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낮에는 호텔에서 쉬다가 저녁에만 나와서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시간보다 미리 가서 프로그램 북도 찬찬히 읽어보고 공연장 밖, 벽에 걸린 사진과 안내문도 구경했다. 표를 받는 직원은 열흘 만에 돌아온 나를 알아봤다. 반가워하며 여러 종류의 공연이 담긴 CD도 무료로 주었다. 다시 돌아오길 잘했다. 

이미 여러 번 봐서 익숙해진 공연이었지만 다시 봐도 재미있었다. 처음에 볼 때는 그저 감탄만 했다면 이번에는 동작도 분석하고 각 댄서들의 역량을 평가할 여유도 있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어떻게 저런 동작을 저렇게 쉽게 할까!’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건 여전했지만...


  그렇게 공연을 즐기던 어느 날, 인터미션 때 차를 마시며 다시 천천히 안내문을 둘러봤다. 극장의 역사와 공연 내용, 댄서 등에 대한 정보를 읽고 있는데, 친근한 말이 들려왔다.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는 우리말로 누군가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인 것 같아 반갑다며 말을 건 사람은 터키인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유학을 했고, 몇 년간 일을 해서 나름 유창한 한국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전날에도 공연장에서 나를 봤단다. 관광객용 쇼가 아닌 공연을 보러 오는 한국인은 드문데도 두 번씩이나 온 걸 보며, 내가 이스탄불에 거주하거나 혹은 벨리 댄스 관계자가 아닌가 물었다. 아주 틀린 것도 그렇다고 맞는 것도 아니어서 얼버무리는데 인터미션이 끝났다.

대화를 마치고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후반부 역시 분석과 평가와 감탄을 반복하며 재미있게 봤다. 공연이 끝난 후 댄서들과 사진도 찍고 여운을 즐기려고 하는데 아까 그 터키인이 다시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벨리 댄스 전용 극장의 관계자라고 했다. 댄서들과도 친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내가 벨리 댄스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차나 한잔 하자고 권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고 숙소도 바로 옆이라 아래층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벨리 댄스를 배웠고 지난번에 워크숍에 참여하려 했지만 비수기라서 못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내가 원한다면 댄서를 소개해줄 수도 있고, 싼 금액에 개인교습도 주선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웬 떡인가. 사실 다음날 런던으로 가야 했지만 항공편을 취소하고 이스탄불에 더 머무를까 했다. 그게 다였다면 그랬을 거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벨리 댄서로서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얼마나 멋진 벨리 댄서가 될지를 “유창한” 우리말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 몸치라고요. 내가 춤추는 걸 본 적도 없으면서….”

라고 더 유창하게 얘기했지만 못 알아 들었던 걸까? 다시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 순간 느껴졌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조금 다른 버전이지만 한국말을 잘하는, 한국인만을 노리는 사기꾼들. 보통은 관광지나 식당 같은 곳에서 걸려든다고 했기에 그런 곳에서는 늘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어서 괜찮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걸려들다니... 내일 일찍 이스탄불을 떠난다며 단호하게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를 떴다. 

‘정말 관계자일 수도 있잖아. 좋은 기회를 발로 찬 거 아닐까?’ 

‘정신 차려. 그냥 사기꾼이야.’ 

두 가지 생각이 다퉜지만 이성의 힘이 더 컸다. 다음날 이스탄불을 떠났고, 예정대로 런던을 거쳐 지브랄타에 도착해 친구네 집에 갔다. 말이 통하는 의사가 있는 병원에 갔지만 알레르기의 원인을 발견할 수는 없을 거라며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그냥 꾸준히 약을 먹으며 예방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약만 처방받아 왔다. 다행히도 약을 먹어가며 여행은 계속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스탄불을 다시 간 적은 없다. 다시 갈 때는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관계자의 도움으로 그곳의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주 오랜 뒤에나 가야겠다. 

 



그림 출처: https://www.hodjapasha.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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