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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Aug 30. 2023

삶이 그대를 속일 때

벨리 댄스는 재미있습니다. 이건 공연을 위한, 즉 보여주기 위한 춤이라기보다는 함께 춤추며 즐기기 위한 춤이기 때문입니다. 

     - Julie Elliot, the Shira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4개월 정도 놀다 오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 더 머물고 싶은 곳이 늘어나고 두드러기 때문에 일정이 꼬이면서 여행기간이 길어졌다. 결국 약을 먹어가며 여행을 계속한 끝에 6개월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여행을 하며 휴식 기간을 가진 뒤에 다시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취업 컨설턴트에게 연락을 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이력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영문 이력서를 본 컨설턴트는 지금껏 자기가 봤던 영문 이력서 중에 가장 잘 썼다며 손볼 곳이 없겠다고 했다. 일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 말했더니 학력과 경력이 모두 잘 맞을 것 같다며 별 어려움 없이 다시 취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연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기에 6개월 전에 당당히 사직서를 던지며 나왔다. 몇 개의 제안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곳을 골라 지원했다. 그곳에서 원하는 경력, 능력, 요구사항 등이 모두 나의 이력서를 보고 베끼기라도 한 듯 잘 맞았다. 벌써 채용이라도 된 듯 컨설턴트와 그 회사의 분위기와 일, 상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왔다.

일주일이 넘게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해봤는데 조금 늦어지는 것 같다며 걱정 말라는 답을 들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난 후에 연락을 해봤다. 컨설턴트는 어렵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포지션과 딱 맞고 다 좋은데 나이가 좀 많아서 안 되겠다고 하네요. 상사될 분이 나이가 더 어려서 부담스럽다고…”

‘뭐 그럴 수도 있지, 거기만 회사도 아니고...’ 딱 맘에 드는 곳이어서 아쉬웠지만, 일자리는 많이 있으니까. 다른 몇 곳에 더 지원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면접도 아니고 서류 통과조차 안 되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컨설턴트 말 대로 요구사항과 이력이 딱 맞는 곳만 지원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컨설턴트를 찾아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었다.


별 어려움 없을 거라던 컨설턴트. 그의 말 대로 나의 능력이나 경력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나이”라고... 다들 내가 나이가 많아서 꺼렸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린 사람을 선택했다고 했다. '엥? 이제 겨우 마흔인데...' 상상도 못 했던 문제였다. 이건 그동안 극복했던 문제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답을 알아도 풀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해결책이 없는 문제에 부딪히자 좌절했다. 좌절감에 빠지니 곧 무기력해졌다. 더 이상 구인 공고를 찾는 것도, 거기에 맞춰 이력서를 고쳐 쓰는 것도 싫었다. 어차피 안 될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너무 우울해져서 안 될 것 같다 싶던 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던 어느 날,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을 다시 봤다. 여행지의 멋진 풍광을 보며 기운이 나기도 했지만, 그때와 너무 다른 상황에 더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터키의 호자파샤 문화센터에서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봤다.

‘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벨리 댄스라도 배우러 다니자.’


  이번에는 구인공고가 아니라 근처에 벨리 댄스 학원을 검색했다. 세 군데 정도가 있는데 가장 가까운 곳부터 먼저 방문했다. 집에서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첫 번째 학원은 걸어서 가기에 적당한 거리였다. 가는 길에 큰 공원도 있어서 들러서 운동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학원은 시장 입구의 오래된 건물 2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에서 본 것 같은 다소 촌스럽고 허름한 작은 스튜디오였다. 그 전의 나였다면 그냥 문 닫고 바로 나왔겠지만, 밝게 인사하는 젊은 강사가 왠지 끌렸다. 서른을 갓 넘긴 강사는 자신의 ‘춤 철학’ 대로 가르치고, 학원을 운영하고 싶어서 독립했다고 했다. 유행을 좇아 가요, 트롯 등에 맞춘 국적 없는 춤이 아니라 이집트의 감성을 담은 진짜 벨리 댄스를 가르치고 싶다는 소신도 밝혔다. 그동안 문화센터에서 가요에 맞춘 춤을 배우고, 초급에서 넘어가지 못하는 게 아쉬웠던 내게는 반가운 소리였다. 한 시간 정도 서로의 춤 철학과 경험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 후 바로 등록했다. 겉모습은 허술하지만 내면은 진정성으로 가득 찬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리고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새로운 학원에 등록한 뒤 이제 일주일에 세 번은 갈 곳이 생겼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몇 달을 집에서 이력서를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리며 보냈다. 누군가 전화해 주기를, 선택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결국 선택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날의 반복. 선택받지 못한 이유가 내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좌절감. 지금 생각해도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듯하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놓아 버렸지만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것 같은 느낌도 스트레스이긴 마찬가지였다. 갈 곳이 없다는 곳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때는 모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는데, 이제 드디어 갈 곳이 생겼다. 그냥 집에 있다가 편하게 갔다 와도 되는 곳을, 굳이 화장을, 그것도 풀메이크업을 하고 갔다. 그래도 복장만큼은 편한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걸어갔다가 걸어왔다. 학원이 집에서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걷기에 적당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여행 후에 찐 살을 빼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풀메이크업에 운동복을 입고 간 첫 수업. 동네 학원인지라 역시나 아줌마들이 많았다. 엄마와 함께 온 고등학생을 빼면 내가 가장 어린것 같았다. 그만 둔지 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초급만 몇 년을 했는데... 다시 초급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다 알고 있는 기본 동작들이었는데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배우니 달랐다. 그동안 얼마나 대충 배웠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전에 강사가 하는 걸 보고 따라 할 때는 똑같이 못 따라 하는 내 몸을 원망했었다. 그런데 어떤 근육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 해 보니 어설프긴 해도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역시 텍스트로 이해해야 몸이 알아듣는 ‘머리형 인간’이었다.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처음 벨리 댄스를 접했던 게 공연을 통해서였기 때문에 벨리 댄스를 공연용 춤이라고 알고 있었다. 반짝이는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안무를 보여줘서 사람들의 감탄을 받는 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벨리 댄스는 함께 즐기며 추는 춤이었다.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어울려 같은 동작, 때로는 자신만의 동작으로 흥에 겨운 춤. 춤추는 사람뿐만 아니라 연주자와 함께 교감을 하며 춤추는 즐거운 춤이었다. 아직은 정확한 동작을 익히는 시기이고 안무 따라가기 바빴지만... 그런데 벌써 몇몇 사람들은 정확한 동작이나 안무 따위는 쿨하게 잊어버리고 즐겁게 춤을 췄다. 신나서 본인의 춤을 추는 “아줌마들”을 보니 나 또한 웃음이 나며 즐거워졌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따라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춤을 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그렇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브라질리언 댄스를 배울 때 브라질 강사가 했던 ‘Just shake your booty!’이다. 브라질의 춤과 아랍의 춤이 다르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아직도 안무를 따라 하느라 급급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머리형 인간이라 그런가 보다. 언제쯤 다른 사람들처럼 안무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래도 일주일에 3일은 갈 곳도 생겼고 웃을 일도 생겼으니까, 곧 그들과 어울려 함께 춤을 출 날도 올 거라 믿고 있었다.



그림 출처: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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