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40대일지라도...
40대의 재롱잔치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
-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양구에서 열리는 대회날, 오전에 있는 단체부문에 참가하는 아이들 때문에 새벽 5시에 함께 출발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했는데, 어쩐 일인지 잠이 오지 않아 한잠도 못 자고 일어났다. 새벽이라 차가 많지 않아 두 시간 만에 대회장에 도착했다. 개인부문은 오후에 하기 때문에 대여섯 시간 정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처음 혼자 무대에 오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가족들이 보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내가 벨리댄스를 배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대에 오르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왠지 부끄러워서 가족들은 한 번도 공연에 초대하지 않았다.
음악가나 무용가 등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한 일반인이 무대 위에 오르는 일은 많지 않다. 성인이 된 후에는 더욱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유치원 때의 재롱잔치나 학예회가 거의 유일하게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고, 가족의 축하와 꽃다발을 받는 시간이다. 나는 유치원을 안 다녔기 때문에 재롱잔치를 한 적도 없다. 예체능에 재주가 없었기에 학예회 때 무대 위에 선 적도 없었고, 따라서 가족들에게 박수와 꽃다발을 받은 일도 한 번도 없었다. 꼭 한 번은 가족들에게 무대에 선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나의 춤을 보러 양구까지 오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했고,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았다. 다른 핑계를 찾아야만 했다. 마침 양구에는 이십 년쯤 전에 엄마가 사기당해서 구입한 땅이 있다. 맹지(盲地)였기에 이십 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근처에 길이 생겼다는 말이 있어서 보러 가자고 꾀었다. 간 김에 ‘나 대회 나가는 것도 보고, 응원도 하러 오라’면서...
내 차례를 30분쯤 앞두고 양구에 도착해서 둘러보고 있다는 가족들을 대회장으로 불렀다. 대회를 보러 온 가족들의 반응은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러 온 부모의 반응과 비슷했다. 즉 자기 아이 외에 다른 아이들의 발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무용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없어 “보는 눈”이 없는 가족들에게 다른 참가자들의 멋진 춤은 그저 경박스럽게 배를 흔드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나 보다. 발표 시간이 점점 늘어나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내 순서가 되었다. 엄마는 한 두 명 보다가 이내 졸기 시작했고, 동생은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초등학생 조카 역시 내내 게임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 차례에는 잠을 깨고 게임을 멈추며 집중해서 봤다. 심지어 동영상도 찍어주었다. 2분 간의 무대가 끝나고 내려오자 이제 그만 가자며 일어섰다. 어차피 결과는 뻔한 걸, 기다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나섰다.
정신없이 떠나는 와중에 환호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내 또래의 참가자가 멋진 배 웨이브 쉬미*를 추고 있었다. 내 입에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이구, 저게 뭐야? 흉하게 배를 흔들고... 네가 했던 게 훨씬 점잖고 예쁘다.”
엄마의 눈에 보기 흉했던 쉬미 동작은 내가 석 달을 연습해도 안 돼서 결국 빼버렸던 안무다. 나의 춤이 점잖았던 건 벨리 댄스 특유의 동작들을 못 했기 때문인데, 그토록 심심했던 춤이 엄마의 눈에는 제일 보기 좋았단다. 일흔이 넘은 엄마의 눈에도 역시 당신 자식이 최고로 예쁘게 보이셨던 걸까? 이 맛에 재롱잔치를 하나 보다.
그 이후로 두 번 더 공연에 초대했는데, 첫 번째와 같은 칭찬은 못 듣고 있다. 엄마도 어느새 “보는 눈”이 생겨 객관적 판단이 가능해졌나 보다. 다음 공연에는 객관적 판단으로도 칭찬받을 수 있도록 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 쉬미: 떨기. 배, 가슴, 힙 등의 부위를 다양하게 떠는 동작.
그림 출처: https://indiatribune.com/kids-dance-reality-shows-where-does-the-buck-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