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쉬어갈 수는 있지만...
"한번 춰 보세요, 얼마나 좋은지. 음악 틀어 놓고 눈 감고 혼자 춰봐요. 음악에 맞춰 공간 속에서 움직임이 나오면 그게 춤이에요. 사람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불행해져요. 행복이 먼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음악 속에 푹 잠겨 있으면 그게 행복인 거죠."
- 김완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두 번째 시험은 합격했고 강사자격증을 얻었다. 두 번째 시험도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시험 이틀 전에 갑자기 혈뇨 등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갔더니 급성 방광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으니 증상은 곧 사라졌지만 몸이 무겁고 컨디션이 안 좋아 이번에는 내가 시험 날짜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수험자, 심사위원 등과 날짜를 맞추기 어려워 무리하게 진행했다. 항생제 외에도 진통제를 먹고, 아픈 몸으로 힘겹게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합격을 하더라도 상할 대로 상해버린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벌써 강사라도 된 듯 날아갈 듯 기뻤다.
메인 강사는 아니라도 보조 강사라도 하면서 차근차근하면서 무용단을 만들려는 꿈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방광염인 줄로만 알았고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병은 사실은 훨씬 심각한 병이었다. 약을 먹으니 증상이야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1주일간 입원 치료가 필요했던 병이었다. 그런 줄 모르고 강사 시험, 원고 마무리, 마라톤 대회 참가 등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가 쌓였고 결국은 쓰러지고 말았다.
2주 정도 약을 먹으며 모든 일을 멈추고 쉬었더니 역시나 이번에도 증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심하게 떨어진 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의사는 당분간 절대로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말고 무조건 잘 먹고 잘 쉬라는 처방을 내렸다. 당연히 벨리 댄스도 쉬어야 했다. 한 달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던 휴식은 훨씬 길어져 5개월이나 쉬었다.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어서야 다시 연습을 같이 했고, 연말 공연에 겨우 참가할 수 있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 메인 공연은 같이 할 수 없었다. 가장 화려하고 주목을 받는 공연이라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에 오프닝 공연과 초급반 작품을 같이 했다. 초급반 작품은 마치 운동 경기의 플레잉 코치처럼 연습을 이끌면서 참여했다. 연령대가 높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강사가 될 자질을 평가받는 시간이었는데 그런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쉽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던 공연이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무용단원으로서 또 강사로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다짐했다. 이제 슬슬 초급반 수업도 맡아보기로 했다. 5월에 하노이에서 열리는 대회 및 워크숍에도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해외 무대에도 서게 되고 뛰어난 외국 댄서들의 춤을 직접 관람하게 된 것이다.
'알로하 실버벨리의 월드 투어의 꿈이 드디어 시작되는구나'
설 휴가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고, 나는 대만에서 1주일간의 휴가를 보냈다.
1주일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바로 춤을 추러 가지는 못했다. 귀국한 날은 2020년 2월 4일.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의 위험성이 이제 막 알려지고 있던 때였다. 당시 대만은 직접적인 코로나 위험 지역이 아니었고 증상이 없어 격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몸살기가 있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2주 후 격리를 끝내고 연습을 가려했는데, 이번에는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학원은 당분간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1~2주면 되려니 했는데... 당분간은 한 달, 또 한 달 계속 연기되었다. 중간중간에 문을 열기도 하고, 연습에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마침 첫 번째 책 <인문학으로 맛보다. 와인, 치즈, 빵>의 출간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서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무리하게 일하다 쓰러지는 실수를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연습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전해 설 휴가로부터 꼭 1년이 지나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춤을 추려니 몸이 삐걱대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뱃살은 어찌나 후덕해졌던지 연습복이 맞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30분쯤 지나자 너무 힘들어서 발에 쥐가 났다는 핑계로 한참을 쉬었다.
‘계속할 수 있을까? 1년을 쉬어서가 아니라 나이 탓은 아닐까?’
첫 시간은 엉망이었다.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두 번째 시간이 되자 조금씩 달라졌다. 머리로는 잊은 동작들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역시 몸으로 익힌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몸에 배어 있나 보다. 물론 여전히 삐걱대는 동작들도 있었지만... 춤을 추는 시간이 다시 즐거워졌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은 1년의 휴식으로도 잊을 수 없는 행복이었다.
2021년, 사실 그때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또 언제 연습을 못하게 될지 모르지만 공연을 위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이 취소되면 어떡하겠냐고? 실망이야 좀 하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음 해에 하면 되지. 그다음 해에도 못하게 되면 어쩔 건가? 공연을 목표로 연습하지만, 내가 춤추는 목적은 아니다. 춤을 추면서 건강해져서 좋고 몸을 움직이고 음악에 푹 잠겨있으면 그 자체로 행복이다. 무엇보다도 연습한 건 어디로 가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인 실력을 <알로하 실버벨리> 월드 투어 때 보여주면 되니까.
그림 출처: https://www.iz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