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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치노콘크리트, 귀로 보는 건축

by 데이트베이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인근, 풍경이 점차 느려지는 자리에 놓인 ‘콩치노 콘크리트’. 외관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다. 안도 타다오의 표현주의적 벽체나 DDP의 3차원 곡면처럼 콘크리트의 물성을 과시하지 않으며, 형태보다는 질감으로 존재감을 말하는 듯하다. 콘크리트는 이곳에서 소리 높여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는, 같은 재료의 다양한 마감 방식이 차분하게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구축한다. ‘콩치노’가 라틴어로 ‘합주하다’를 뜻한다는 점은, 이 건축의 태도에 가장 정확한 해석을 부여한다.


스크린샷 2025-04-18 153611.png 주차 후 입구로 들어가는 여자친구

입구는 필로티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오직 엘리베이터만이 지상층의 기능을 말없이 수행한다. 그렇게 2층으로 올라서면, 전혀 다른 감각의 층위가 시작된다. 탁 트인 9미터의 천장고, 우직하게 정면을 차지한 두 대의 초대형 빈티지 스피커. 정적인 콘크리트의 몸체 안에, 청각을 위한 건축의 여정이 시작된다.


스크린샷 2025-04-18 153722.png 2층에 올라가면 마주하는 공간감

무엇보다 이 공간의 주인은 음악이다. 대화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은 없지만,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사회적인 침묵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은 놀랍다. 일부는 책을 펼치고, 또 어떤 이들은 눈을 감은 채 사색에 잠긴다. 연인들은 사진보다 감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고요를 방해하지 않는다. 음악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음악이 머무는 곳이다.


나는 두 스피커와 정확히 정삼각형을 이루는 중심 좌석에 앉았다. 30분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르며 느꼈던 것은, 이곳이 단지 ‘듣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각은 청각이지만, 인식은 시각처럼 작동했다. 소리를 상상하는 시간. 나는 음을 ‘본다’는 감각을 이곳에서 처음 경험했다.

스크린샷 2025-04-18 153808.png 2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우리는 일반적으로 음악을 배경으로 소비한다. 카페의 재즈, 드라이브의 힙합, 식당의 클래식. 하지만 이곳에서의 음악은 전경이다. 프레임의 배경이 아니라, 중심 피사체다. 그것은 마치 8K 모니터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극도로 선명한 해상도의 경험이었다. 기존의 사운드가 저해상도 mp3 파일 같았다면, 이곳은 원음 이상의 감동이 있는 공간이었다.


그 밀도는 설계자의 섬세한 음향 설계에서 비롯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교수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고려해 2층과 3층을 터 층고 9미터를 확보했다. 콘크리트 벽면 일부에는 송판 무늬 콘크리트를 적용했고, 이는 단순한 질감의 장식이 아니라, 실제 흡음과 반사를 고려한 음향 장치다. 주철 창틀, 묵직한 도어, 잔향을 위한 건축적 공명. 공간은 악기의 바디처럼 음의 진동을 받아들인다. 음악은 공기 중에서 퍼지기보다, 벽을 타고 머문다.


정면의 초대형 스피커는 독일 전후 극장에서 사용되던 ‘유로노 주니어’. 현재 독일 내에서도 문화재 지정으로 반출이 어렵다. 이 스피커를 소장한 이는 치과의사이자 음악 애호가인 오정수 원장. 그는 수십 년간 모은 1만여 장의 LP와 함께, 음악 감상의 이상향을 실현할 공간을 직접 지었다. 커피도, 노트북 작업도 없다. 오직 음악만을 위해 허용된 장소다.

스크린샷 2025-04-18 153818.png 마니아틱한 오디오 장비들. 음악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실내는 좌우 대칭은 아니지만, 스피커는 완벽히 마주 보고 대칭을 이룬다. 대부분의 좌석은 그 중심을 향하고 있고, 창가 측 좌석은 임진강을 향해 있다. 하나는 울림을, 또 하나는 흐름을 본다. 공간은 두 개의 감각을 나누고, 각자의 몰입이 흐르도록 돕는다.


‘콩치노 콘크리트’는 단순한 청음 공간이 아니다. 콘크리트를 재료로 한 조용한 음악의 실험실이고, 사운드를 위한 건축적 증명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곡을 듣는다. 위치에 따라 잔향은 다르고, 반사가 다르며, 결국 감각도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찾는다.


음악이 주인인 공간은 드물다. 그리고 그 음악이 건축과 만나 하나의 구조로 존재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콩치노 콘크리트는 귀로 들어가 눈으로 머무는 공간이다. 모든 감각이 말없이 맞물리고, 감정은 흐름 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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