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는 수도권 주민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드라이브의 목적지였다.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도심을 벗어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특히 서대문구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나처럼 이곳 주민들에겐 더 친근한 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주는 단지 거리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맛집과 카페라는 흔한 데이트 콘텐츠 외에, 좀 더 ‘문화적인’ 무언가를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절묘한 장소 덕분일지도 모른다. 파주민속박물관(특히 그 유명한 '보이는 수장고')부터 미디어 아트를 볼 수 있는 뮤지엄헤이까지, 파주가 서울 근교에서 일종의 ‘문화지구’로 자리 잡은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황인용뮤직스페이스의 위치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황인용뮤직스페이스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의 가장 깊은 곳, 마치 마을의 끝을 정리하듯 자리하고 있다. 황인용은 원래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근 몇 년간 그의 행보는 음악과 그에 대한 사유를 공간에 담는 큐레이터에 더 가깝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그가 이제는 공간을 통해 음악을 전하고 있다. 그가 선별한 음악들은 클래식과 재즈가 중심이며, 방문객은 자연스레 그의 취향과 철학에 동참하게 된다.
뮤직스페이스는 그리 크지 않은 3층 건물이다. 외관은 과시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설계된 입면과 심플한 파사드가 공간의 특성을 잘 설명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간은 명확한 목적을 드러낸다. 방문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거대한 스피커와 소리가 나오는 곳을 향해 흐른다. 각각의 의자는 마치 극장처럼 모두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중앙에 자리 잡은 오디오 시스템과 스피커는 물리적, 상징적으로 중심 역할을 한다.
내부의 공간 설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소리와 시선의 관리다. 공간 전체는 천장까지 열린 수직적 볼륨으로 소리가 균질하게 퍼지도록 설계되었다. 음료를 판매하지만 진동벨은 소리를 내지 않고, 벽면은 과도한 장식 없이 음악을 위한 최소한의 존재감을 유지한다. 이 공간이 취하는 태도는 단호하면서도 우아하다. 음향 설계와 더불어, 이곳은 의도된 몰입의 환경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것이 방문자에게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파주의 또 다른 음악 감상실로 알려진 콩치노 콘크리트와 이 공간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콩치노 콘크리트가 음악에 절대적이고 엄숙한 권위를 부여하고, 청중에게 사실상 완전한 침묵을 요구한다면, 황인용뮤직스페이스는 보다 친절하다. 음악을 위한 공간임에도 이곳은 조금 더 일상의 온도를 허용한다.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작은 권리가 된다. 그렇게 조율된 생활감 덕분에 사람들은 좀 더 여유롭게, 음악을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로 머물게 된다.
3층은 시각과 청각이 만나는 지점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 전시된 작품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음악의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었다. 조형물들은 기하학적인 반복과 곡선, 균형 잡힌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음악의 리듬과 운율이 시각화된 것 같았다. 정치, 사회, 종교적 사유의 과잉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작품들은, 음악과 결합될 때 더욱 풍부한 상상의 여지를 제공했다. 전시는 주기적으로 바뀌고, 그때마다 이곳을 다시 방문할 명분을 만든다.
음악을 듣는 방식에 대해서는 선택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감상'과 '소극적인 향유'가 있다. 적극적인 감상자는 음악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소리가 어떻게 생성되고 움직이는지 귀를 세운다. 나는 눈을 감고, 곡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갔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클래식 곡이었지만, 집중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열과 음악의 질감이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었다. 음악은 그렇게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경험으로까지 확장됐다.
반면, 소극적인 향유는 그저 공간의 배경음악처럼 음악을 흘려듣는 방식이다. 내 여자친구는 휴대폰 앨범을 정리하며 음악을 들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편하게 음악 들으니까 그냥 소확행인 것 같아." 그렇다. 음악은 꼭 적극적으로만 감상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음악과 공존하며 작은 일상의 틈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음악을 감상하는 훌륭한 방식이다.
이곳이 제안하는 음악 감상의 방식은 그 어떤 방식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이 공간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음악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클래식을 잘 모르던 나조차도, 음악 앞에서만큼은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곡을 다시 찾아 듣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 이것이 공간이 가진 진정한 힘이 아닐까.
헤이리 예술마을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황인용뮤직스페이스는 음악을 통해 기억될 수 있는 여백을 설계했다. 우리는 그 여백 속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법을 새롭게 배우고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