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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Aug 23. 2021

스며들다

[ 그림 받아쓰기 04 ] 보기

| 쌀과 종이

저탄고지를 넘어 무탄고지 다이어트 중인 분들에게는 예외일 수 있지만, 우리는 쌀로 밥을 짓고 반찬을 곁들여 하루를 삼킨다. 손글씨 대신 손가락으로 빠르게 두드리는 것으로 안부를 묻고 있지만, 우리는 종이 위에 메모를 하고, 읽고 쓰고 그리며 하루를 쓸어 담는다. 어떤 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종이의 종류에 따라 같은 색도 다른 맛으로 표현된다.


예쁘게 디자인된 종이에 글을 올리면, 말보다 진한 향이 전해진다. 종이의 무게나 질감에 따라 그들의 취향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모니터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은 세상을 만난다. 잉크 프린트를 통해 종이 위에 스며든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설렌다.


스튜디오에 쌓여있는 자르고 남은 종이들은 조각도를 이용해서 만든 당근이나 감자 도장이 콩콩 찍어낸 나만의 엽서가 되고 글씨로 수를 놓아본다. 생일 카드나 연하장을 포함해서 해마다 맞이하는 날들은 직접 디자인 한 카드를 만들고, 내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선물과 함께 포장해서 보낸다. 선물보다도 카드를 더 고마워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의 작은 취미생활의 만족도는 커진다.



| 종이와 천

색이 입혀져 있거나 프린트가 되어 있는 천으로 옷을 지어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색도 없고 무늬도 없는 하얀색 천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렇게 만난 원단은 종이 같았다. 천의 무게와 종류에 따라서 같은 잉크도 다른 색으로 입혀졌다. 까다롭거나 자신이 사용할 색을 정확히 모르는 손님을 만나게 되면, 테스트 샘플을 4-5번씩을 반복해서 거래처에 요청해야 겨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디자인에 따라서 다른 워싱 테크닉을 사용하고, 프린트를 올리고, 또 씻어내기도 하는 과정들의 통해서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바로 그 결과를 얻을 때, 설레었다.


종이에 입혀졌던 색들이 원단에 스며들면서 만나는 수많은 경우의 색. 천을 만지작거리면 스펙트럼을 통과한 보이지 않던 빛을 내 손 안에서 만나는 것만 같았다. 빛이 스며들었다.



| 스미다 + 들다

Gari Melchers는 그의 아티스틱한 안테나가 찾아내는 대상에 스미어 들어 그것을 붓으로 표현한 화가이다. 정착하는 장소마다 그가 스며들어 그려내는 대상들은 달랐지만 한결같이 아름답게 빛을 내었다.


1860년 디트로이트 생인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화가다. 독일 출신 조각가인 아버지의 눈에 들어온 아들의 '번쩍' 하는 원석의 빛은, 그가 D- VVS1 - Ideal Cut을 가진 다이아몬드로 변신하기 위한 밑거름을 준비해 주었다. 17살이 되던 해, 그는 독일로 미술유학을 떠나게 된다. 내친김에 프랑스에서도 2년을 수학하며 그렸던 'The Letter'라는 그림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보통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이야기들이 그의 붓끝을 통해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졌다.


시간이 흘러 미국 출신 친구 화가와 함께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 시골생활, 사람들에 대한 담백한 에세이와 같은 그림을 그렸고 출품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다. 큰 상을 수상하고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부와 명예도 그의 편이 되었다.


19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1903년, 그는 결혼을 한다. 그때부터 빛과 비비드 한 색, 여성과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6년이 지난 1909년부터 독일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고, 세계 1차 대전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뉴욕 생활과 함께 미술단체의 리더이자 작가로 바쁘게 지낸다. 세상과 이별하기 10여 년 전, 그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벨몬트에 집을 옮기고 전원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그림의 주제와 소재들이 바뀐다. 그의 그림 속에는 잘 꾸며진 인테리어, 중산층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으로 풀어놓았다.


그의 생가는 현재 뮤지엄과 정원으로 꾸며져 Gary Melchers Home and Studio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되는 그의 그림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화면 속 인물의 얼굴 표정에서 나타나는 디테일이 놀랍다. 삶에 지쳐 있거나 일상의 하루를 재미있게 표현해 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미소를 짓게 되고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의 그림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Writing by Gari Melchers

그녀는 햇살이 스며든 방에서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화가와 그의 아내가 늘 그러했듯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초대장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설레는 마음이 벽지와 책상 위의 테이블 보, 꽃과 창문틀,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장식들에도 붉게 스며들었나 보다. Kelly Green색을 입은 의자 쿠션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녹색 식물들과 램프는 그녀에게 '천천히 하세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This is a marvelous room. Summertime.
Two big huge windows with white, sheer curtains hanging.
Flowers in the window on the right side. Two vases.

There’s a woman sitting with her back to us in front of a demi table flush against a very beautiful pink wall.
To her right, is another chair with a wooden, square back with ornamentation that looks like an upside down instrument called the lyre.

By the way, the woman is writing something.
And her dress is really lovely~ a long floral design with half sleeves ending in lace.






The Sisters by Gari Melchers | The National Gallery of Art LINK

Writing by Gari Melchers | LACMA LINK

Gary Melchers Home and Studio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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