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받아쓰기 04 ] 듣기
부탁이 있다는 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부탁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친구입니다. 남겨진 문장 하나를 마주하니 부탁을 해 주어서 반갑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
"책 한 권 사서 보내어 줄 수 있어?"
"응, 무슨 책인데?"
"절판되었는데 중고로 나와서. 네가 사서 미국으로 보내줄 수 있어? 아니면 내년에 한국에 갈 때 직접 줘도 되고."
사려고 했던 물건이 '품절'이 되어서 속상했었던 적은 있었지만, '절판'이 된 책을 읽고자 중고로 나오는지 수시로 찾아보고 기다렸던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내어 준 사이트로 들어가서 꼼꼼히 읽어보니 책 상태가 좋지가 않았습니다. 표지가 없고, 종이들이 너무 오래되었고, 낙서가 있고, 찢어진 부분들이 많고, 모서리 부분 역시 각 잡힌 사각형이 아닌 제각각의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번역이 된 책이라 차라리 원서로 읽으면 어떨까 하고 물어봤지만 돌아올 답은 알고 있었습니다.
"귀한 책이니, 네가 먼저 읽어봐."
'귀한 책'
그녀가 보낸 메시지는 '부탁' 뿐만 아니라 '숙제'도 함께 있었습니다.
'내게 있어서 귀한 책은 뭘까. 바다를 건너 다녀도 늘 가지고 다니는 책들?'
그렇게 시작한 저의 '책 찾기'가 점점 커지고 깊어지더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계속해서 찾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떤 대상.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전화번호도 있던데, 오늘은 일요일이니 내일까지 기다려 연락을 해 봐야겠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겠지만, 이번엔 그녀가 아닌 나를 위해서 문은 두드려봐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 속의 그녀도 소중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밤, 월요일을 맞기 위해 바쁜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짧은 글을 적어 보내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