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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Aug 31. 2021

삶을 마주하는 방법

[ 그림 받아쓰기 08 ] 보기

| 일일 드라마 

1시간은 넘은 것 같다. 

바닷소리도 갈매기 소리도 들려오는 것을 보니 정신이 돌아오고 있나 보다. 무작정 집을 나와 운전을 하다 보니 얼마 전 승태와 함께 왔던 그 바닷가에 와 있었다. 차를 세웠다. 눈앞에 앉아있는 바다는 보이지만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고 어떤 감정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했었다. 이런 결과를 마주하게 될지 몰랐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 자퇴하고 미술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서준은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렸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너. 이 자식이. 여보, 어디 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온 집안 곳곳으로 퍼진다. 어머니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서준은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이 좋았고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법대를 갔다. 법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림 공부는 하고 있었다. 동기 중에 미대를 다니고 있는 창석이 소개해 준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혼자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물론 아버지는 모르고 계셨다. 


어머니는 서준의 방패이자 통역관이자 벽난로였다. 성격이 불같았던 아버지로부터 언제나 서준의 편이 되어 그가 견딜 수 없을 것들을 미리 막아주셨고, 아버지와 서준의 대화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어머니가 곁에 있으면 두렵고 걱정스러운 일들은 벽난로 앞에서 얼은 몸이 녹듯이 사라졌고 빨갛게 된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미술을 취미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부정해 보려고 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 22세. 한 살이라도 더 먹게 되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승태와 술을 마신 후, 그는 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리기로 결심했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너. 이 자식이. 여보, 어디 있어?" 어머니가 뛰어 오셨다.

"아니,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버지 놀라시게! 너 또 승태랑 술 마셨지? 아이고... 여보, 친구랑 술 마시고 하는 소리예요."


서준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두 분이 뭐라고 하셔도 이번에는 제 계획대로 하려고 합니다." 눈을 딱 감고 준비했던 모든 말을 뱉어내었다.


"당신 알고 있었어? 언제부터야? "

"여보 여보 잠시만요. 그냥 하는 소리예요. 내가 이야길 좀 들어볼게." 

"듣긴 뭘 들어, 오냐오냐하며 키워 놓았더니 저 나이가 되도록 세상이 어떤지를 몰라. 저런 정신상태로 내 사업을 어떻게 맡겨. 너 이리 와 봐."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신히 막아서시고, 서준에게는 나가 있으라고 하셨다.


집으로 와서 주저앉았다. 몇 시간 후, 어머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 아들 괜찮아? 엄마랑 먼저 말을 맞추고 나서 이야길 해도 했어야지. 어쨌든, 엄마가 해결할 테니, 당분간 집에 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밥 잘 챙겨 먹고. 알았지? 걱정 마~, 엄마가 있잖아."


이번에는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니는 아버지의 허락까지 받으셨다. 서준은 승태와 함께 다니기로 한 학교에 서류를 준비해서 함께 넣었다. 결과는 믿을 수 없었다. 승태만 합격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이 이야기는 오늘 만날 작가의 이야기와 닮은 곳이 많다. 사실 너무나 유명한 작가들의 이야기는 읽어도 글자일 뿐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를 먼저 만났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고단했던 시간은 훌륭한 결과를 맞이하는 작은 징검다리처럼 느끼게 된다.


파블로 피카소의 온리 원 마스터,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의 큰 이름 뒤에 가려졌던 실패와 도전을 반복해야만 했던 시간은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쨌든 성공했잖아 하면서. 하지만 이 과정을 내가 지나가야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중도 포기 없이 끝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 Paul Cézanne

1839년 생 프랑스 남자인 그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은행장) 비록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내긴 했지만, 그의 나이 38세까지의 몇 가지 이야기들만을 정리해 놓은 아래 자료를 보더라도, 그는 적응을 잘하지 못했고, 짐을 싸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음고생을 한 것이 보인다.


시대가 원하는 아카데믹한 방식으로 그린 그림들만이 인정받을 수 있던 그때, 그들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혹평을 들으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롱을 받을수록 철저히 자신에게 집중했다. 보이는 것을 넘어, 사물의 본질과 내부의 구성을 표현하고자 사색하고 연구하며 화면을 재구성하면서 자신만의 그림으로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명암법이나 원근법도 그만의 것으로 바꾸었다.


음영을 예를 들어보면, 전통적인 방식(1 화면 1 빛)과는 다르게, 화면에 여러 가지 방향의 빛이 들어와 대상이 놓여 있는 위치에 따라서 서로 다른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기 위해서 짧은 시간여행을 떠나 어릴 적 미술시간에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던 것을 기억해 보도록 하자. 보통 좌측 또는 우측 상단에서 하단으로 빛이 온다고 가정하여, 빛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를 위에서 아래로 그려주시면서 하얀색의 원뿔이나 구 같은 샘플을 가지고 설명을 해 주셨을 것이다. 화면에 있는 모든 소품들은 같은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를 생각하면서 그리게 된다. 세잔은 그런 원뿔이나 구, 기둥들이 한 화면 안에서도 서로 다른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각 다른 각도의 빛을 받고 음영을 표현한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 (예를 든다면, 원뿔은 1시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고, 삼각뿔 모양의 소품은 9시 방향에서 다가오는 빛의 영향을 받는다.) 


Still Life With Cherries And Peaches by Paul Cézanne 


| 정물화, 흔들리는 그들

정물을 그리다 그날 끝을 내지 못하면, 앉아 있던 의자를 표시해 두고, 물건들의 위치를 바꾸거나 움직이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최대한 공손하게 종이에 적어 붙여 놓았다. 다음 날이면 내가 사용했던 의자를 표시된 장소에 그대로 위치시키고 그림을 완성했다. 세잔의 경우, 조금 과장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오늘은 위에서 보고 그리고 내일은 옆에서 본 그림을 그린다. (설명을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해 본 것뿐이다. 물론 작가는 전체적인 구성을 고민하고 고민한 후 그림을 그릴 것이다.)


정물화를 볼 때면 바람소리 한점 들리지 않는 고요함과 안정감을 느꼈는데, 세잔의 이 그림은 뭔가 갸우뚱 해 진다. '그림자가 별로 없네?' 하고 바라보는 순간 체리가 담긴 그릇이 미끄러져 내릴까 두 손이 화면 앞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평면에 공기를 불어넣어 공간을 만들고,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원근법 101을 따르지 않은 그림이다.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끼신 분은 체리는 위에서 보고, 복숭아는 옆에서 보고 그린 그림을 보면서 시각이 어리둥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잔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소로 우리를 초대한다. 화가가 앉아 있는 바로 그 시점 외에도 대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옆에서, 위에서 아래로, 우리는 화가의 공간 안에서 사물을 조금 더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보이는 것을 넘어 대상의 내면, 본질적인 구조를 볼 수 있기 바랐다.


'보는 법', '그리는 법'의 정석을 따르지 않은 그 만의 시도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의 MZ 세대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잔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형태와 색을 분리하고 독립하는 방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만났고, 색과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재구성한 마티스의 그림이 프린트된 포스터를 선물 받고 내려앉은 마음을 제 자리로 걸어놓을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 저쪽 방향으로!

모두가 가는 길을 나도 걷고 있을 때, "네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진짜로 보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 하는 프랑스 악센트를 가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일단 멈춰봐야겠다. 어디로 가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싶지 않은지를 솔직히 물어봐야겠다. 세잔처럼 세상의 소리에 맞서 나의 길을 쉼 없이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내게도 있기를 바란다.


                         

Oh, yum. It’s summer and everytime I think of summer I think of fruits. And when I see fruits, it reminds me of summer.

Now imagine, you’re standing over a table and you see a platter, a plate, a jar and  I can see a couple of linens.White linens all crumpled up on the table.
Don’t you like the old style wooden tables?
Let’s talk about placement.
The two crumpled linens are on the left of the table, stretching out almost to the middle of the table.
And on top of that is a platter of very, very round red fruit with stems. Cherries! Lots and lots of cherries on the platter.
 Behind the platter of cherries, is a ceramic jar with two loops on the side to hold. And next to that is a plate of...that’s right! Peaches!
Roundish peaches...not exactly round. A little bit oval. Some are round.
And there are five on the plate and one on the table in front of the p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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