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에서, 페리도트
새로운 달의 첫날,
달력을 넘기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탄생석이다.
보석의 이름과 모양이 떠오르고,
그달에 태어난 사람들의 얼굴이 뒤따라온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그들의 생일 즈음에 맞추어 작은 그림 카드를 만들어 폴더에 넣어 둔다.
한 달을 마감하고 새 그림과 숫자를 마주할 때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그 달의 요정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울림일까.
그 목소리는 매번 다른 음색으로 인사를 건넨다.
8월의 목소리는 유난히 활력이 넘친다.
크고, 환하다.
입꼬리를 길게 당긴 얼굴요가 하는 표정.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다.
태양 빛에 물든 과일의 향처럼,
솔직하고 건강하다.
탄생석과 어울리는 목소리가 들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8월이 그렇다.
붉고 강렬한 루비의 여름을 이어받은 뒤,
계절의 문을 닫는 보석. 페리도트.
처음 페리도트를 보았을 때,
색이 독특했다.
보리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속으로
올리브오일 한 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듯했다.
연두색도 아니고, 초록도 아닌 색.
노란빛이 살짝 섞인 초록이다.
초록과 노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이고 있다.
9월이 오면 가을이 시작된다.
녹음이 물러나고, 단풍은 노릇한 빛을 준비한다.
그 빛의 경계에 서 있는 8월.
여름이 끝나기 직전의 숨결을 닮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 반짝임을
태양의 언어로 읽었다.
황금빛이 흩뿌려진 녹색을 향해
“태양의 보석”이라 부르며
그 빛을 잔에 담아 신들과 교감하려 했다.
하와이의 전설에서 페리도트는
불과 화산의 여신, 펠레의 눈물이다.
그녀의 눈물에는 창조와 파괴,
두 온도가 함께 깃들어 있다.
그래서 페리도트는 번영과 행운,
그리고 치유를 상징한다.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어주는 보석이다.
그 가치는 색과 투명도, 그리고 크기로 결정된다.
노란빛도, 갈색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초록이 가장 귀하다.
태양이 낮아지고 빛이 희미해질수록,
페리도트는 오히려 더 풍부하고 선명한 빛을 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한여름 밤의 에메랄드.
여름 한낮의 쏟아져 내리던 햇살이 가라앉고,
야외 카페의 불빛이 잔 위로 흘러 내 손끝에 닿는다.
마주한 친구가 조용히 웃을 때면,
그 미소 안에 내 하루가 고요히 녹아든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길들이
밤의 부드러운 공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빛이 머물던 자리에 남은 것은 마음.
은은히 반짝이는 페리도트의 미소가
정말 밤의 에메랄드 같다.
여름의 마지막 날,
나의 마음도 그 빛 한 조각을 닮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