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잔향에 대하여
가끔 들르게 되는 피자 가게가 있다. 길을 잃어서 걷다가 찾은 곳이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을 때면 이렇게 발견되는 보석이 있다. 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돌이 내게는 흙이 묻은 원석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그날은 장소만 확인하고 메모해 두었다. 친구와 약속 장소를 정하면서 처음 가 본 날이었다. 화덕으로 피자를 굽는 곳이었다. 자리를 안내받을 때, 나는 화덕이 잘 보이는 곳을 택했다.
그날 저녁의 냄새는 유난히 따뜻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가 감정의 온도를 적당히 올려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불꽃이 흔들리고, 밀가루가 익는 냄새에 올리브 오일의 향이 섞인다. 공간이 금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피자 냄새가 스며들어와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피자는 시칠리안 피자야!”
후각은 가장 먼저 기억을 깨우는 감각이다. 시각이나 청각보다 깊고, 넓다. 공기 속의 기억이 던져 놓은 곳에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큰 손짓, 그리고 더 크게 울려오는 이탈리아어의 리듬, 내 앞에 놓였던 깔조네(calzone)가 있다.
수업시간에 왜 피자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시실리가 고향인 선생님이 “진짜 피자는 시칠리안 피자지!”라고 외치며 나폴리 피자를 두고 한참이나 열띤 논쟁을 벌이던 모습은 또렷하다. 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종강 날 피자를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선생님이 추천한 식당에서 각자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했다. 관광객들은 찾지 못할 그 식당에서, 빛이 노랗게 내려앉던 늦은 오후의 시간이, 어둡고 긴 보라색 그림자로 내 뒤에 서 있다.
기억의 맛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여도, 그때의 공기와, 그때의 대화를 되살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식어지고 굳어져 버린다. 기억이라는 오븐으로 다시 데워도, 어제의 피자처럼 그 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잔향은 여전히 남는다.
좋은 기억은 삶의 중심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어준다. 지나간 시간의 어느 곳에서 여전히 나 여기 있노라고 속삭인다. 어느 날 불쑥 빛으로 다가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를 일깨운다. 그때의 빛과 감정이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 어쩌면 보석은 아름다웠던 순간의 빛과 기억의 온도를 담아 우리 곁에 머무는 마음의 조각일지도 모르겠다.
보석을 배우던 시간과 노력이 현실에서 쓰이지 못한 채 남아 있지만, 그 기억은 색으로 내 안에 남았다. 토마토소스의 붉은빛, 올리브오일 속에서 반짝이던 미세한 초록의 흔들림이 되어 아직 굳지 않은 시간을 비추어 준다. 여름의 끝과 닮은 페리도트의 온도가 느껴진다.
향이 사라지면, 빛이 그 자리를 채운다. 기억은 그렇게 모양을 바꿔 우리 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