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하늘과 바다의 색

3월, 아콰마린의 약속

by Dear 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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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은 시간의 얼굴을 품는다. 계절 따라 웜톤과 쿨톤으로 변하는 세상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실감한다. 봄은 대지에 온기가 스며들고 모든 것들이 생기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살굿빛 립밤으로 입술을 촉촉하게 하고 옅은 복숭앗빛 블러셔로 마무리한다. 꽃망울들이 겨울옷을 털어 버리면 세상은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모든 색이 선명해지는 여름에는 화장을 덜어낸 건강한 나무들이 뷰러로 꼭 집은 속눈썹처럼 초록을 세우고 하늘 높이 오른다. 틴트를 입술에 올린 꽃들과 엄마의 짙은 립스틱을 몰래 바른 꽃들이 더위를 식히느라 비 소식을 기다린다.


가을이 실수로 떨어뜨린 노란 잎을 주울 때면 하늘은 점점 푸르고 높아진다. 베이지부터 레드 브라운까지, 나뭇잎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바람의 손을 잡고 걸어본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꽃과 나무들은 시린 손으로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가을을 한껏 품었던 옷가지를 정리하고 눈꽃 송이들을 맞이한다. 창백한 피부와 앙상한 손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창문에 입김을 불어 본다.


창은 빛을 들여오는 자리다. 세상이 넓고 높아 내가 작아지는 날이나, 마음에 비바람이 칠 때면 창이 있는 곳에 앉아본다. 같은 크기의 세상이 창에 담기면, 어느덧 두 손에 담아 놓을 수 있을 만큼 작아진다. 나의 두 손에 빛이 초대된 순간이다.


바람(wind)과 눈(eye).

창(window)은 고대 노르드어 Vindauga에서 유래되었다. 바람의 눈이 바라보는 세상을, 집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바람이 휘파람을 불며 산책할 때면, 집의 눈을 열고 나도 그 노래를 따라 흥얼거려 본다. 바람은 감정의 움직임에 예민하다. 갑작스러운 온도차에 누군가와 언쟁이라도 하고 나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빠르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가 쿵쾅거리며 사라질 때까지 적당히 눈을 갖는다.


지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한 장과 짧은 문장 하나. 침대 옆에 커다란 창이 있고 한쪽 창문이 열려 있었다. 오전의 부드러운 빛이 카메라에 잡혀 있다. 적당히 다듬어진 정원의 모습도 보인다. 세수를 갓 하고 말간 얼굴을 한 이파리들이 있다. 그들은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고 두드리듯,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듯했다.


파랗게 보일 것 같은 하늘에는 넓게 펼쳐져 있는 얇은 구름이 지나가며 맑은 회색 길을 만들어 놓았다. 넓은 창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침대의 상체 각도가 높아 그가 ‘편안히 창문 밖을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갑작스러운 입원 소식이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을, 열려있는 창문이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이제 어두운 생각은 하지 않겠으니 걱정하지 말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창문은 나와 세상을 가르는 경계이면서도,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다. 살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마음을 요동치게 할 때면, 영혼까지 어지러울 때가 있다. 삶이 무한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성난 바다에 흔들리고 있는 배 위에 서 있는 기분일 듯하다. 시간이 지나 동요하던 마음이 정리가 되면, 짙은 색 바다도 다시 투명한 파란빛으로 돌아온다. 하늘과 바다 끝이 맞닿는 곳까지 바라보며, 어두운 생각과 먼지들을 멀리멀리 던져버린다.


아콰마린은 폭풍이 지나간 뒤의 바다를 닮았다. 깊고 투명한 푸른빛을 머금은 이 보석은 ‘내면의 평온(inner tranquility)’과 ‘명료함(clarity)’을 상징한다. 처음으로 이 돌을 보았을 때 떠올랐던 것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티스푼으로 떠 올린 바닷물이었다. 소란스러움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바다를 들여다볼 힘을 준다.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오랫동안 바다 사람들의 부적으로 쓰였다는 이 돌은, 폭풍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보호해 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보석이다.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을 바라는 희망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평온을 찾고 맞서 이겨낼 용기와 슬기로움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지인의 시간이,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처럼 따스하고 평온하기를. 아콰마린의 진실한 약속이 그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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