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심을 찾아가며, 토파즈
생일날 초록이 매달린 작은 항아리를 받았다. 친구가 오던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가 예뻐서 샀다면서 선물 상자와 함께 전해 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손에 쥐여주는 투명한 주머니 속 녹색 생명체를 보니 마음 한구석에 집게를 꽂아 놓은 듯했다. 꺾인 꽃 선물은 시들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 작은 화분 속 식물은 괜히 잘못될까 봐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덤으로 받은 선물과 집으로 돌아왔다.
물만 주면 잘 자란다고 했다던 초록이는 새끼손가락 길이만큼의 작은 아이들 넷이 함께 있었다. 항아리 안에는 당연히 흙이 있을 줄 알았는데 물에 불린 골판지 사이에 하찮은 뿌리로 버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안쓰러워 흙과 화분을 사 왔다. 그렇게 나름 분갈이를 하고 사흘이 지나도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길래, 비로소 잘 적응하고 있나 보다 했다.
내 손에 들어오는 식물들은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곤 했다. 인테리어 잡지 속 큰 화분에 큰 키를 가진 멋진 나무들이나 여러 가지 종류의 식물들이 어울린 화려한 실내 정원은 꿈꾸지도 않았지만, 선물을 받거나 하나씩 둘씩 사서 모았던 식물들이 힘없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부터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조화를 화분에 담아 두었다.
일을 잘 못해서 그랬는지 일만 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는데 식물 키우기도 그중 하나이다. 어머니가 사다 주신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잘 자랐다. 오호! 하는 생각에 먹고 남은 씨앗들을 심어 보았더니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었다. 삶의 에너지가 일하는 곳에만 집중되어 있었을 때와는 달리, 문제없이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균형 잡힌 삶의 영역이 우리 주변의 생명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쨌든 그렇게 화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침 공기도 잠이 덜 깬 이른 주말이면 초록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건조해 보이는 잎에는 물을 뿌려준다. 하나둘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를 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기분 좋은 향으로 내게 전해져 온다. 특별히 몇몇 아이들은 물과 마주하는 순간 신선하고 맑은 향이 피어난다.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밝은 초록의 향이다. 그들은 마치 “고마워.”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다시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으로 답한다. 이 고요한 아침의 시간은 마치 꼭꼭 눌러쓴 손 편지를 하나씩 열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반복과 고요함 속에서 허락된 개인적인 위로이다.
처음에는 꽃이 핀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즐거웠는데, 언젠가부터 꽃보다 잎을 바라보게 되었다. 눈에 띄게 자라지 않는 식물들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사진을 찍어 비교해 보기도 한다. 오감으로 느껴질 듯 말 듯한 작은 변화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순간 꽤 많이 자라 있는 모습들을 보면 너무도 대견하다. 물과 햇살만 받고도 싱그럽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내게 보여준다. 조용한 성실함 속의 겸손.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들의 시간을 통해 천천히 내 호흡의 속도를 배우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편의점 출신 초록이 4 쌍둥이들은 이제 꽤 자랐다. 연두색보다도 훨씬 더 여린 잎들이 가녀린 줄기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옅은 연두색에서 건강한 짙은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으면 또 다른 여린 잎들이 고깔모자를 쓴 얼굴을 내민다. 물을 마시고 빛이 닿을 때면, 그들은 반작이는 귀걸이처럼 흔들린다.
그 옆자리의 크로톤은 황금빛 토파즈를 닮았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잎 가장자리가 더욱 선명한 오렌지빛으로 타오르고, 흐린 날에는 그저 은은한 황록색을 유지한다. 나의 휘토니아와 단풍나무도 물감과 붓으로 흉내 낼 수 없는 각자의 농도로 반응하며 자란다.
토파즈는 은은한 빛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려 깊고 사색적인 보석이다. 불을 뜻하는 Topas에서 유래된 이름처럼, 희망과 용기를 준다. 사랑과 건강, 아름다움과 지혜를 상징하며, 치유와 보호의 힘을 지닌다. 다채로운 색의 스펙트럼도 가지고 있다. 무색, 파란색, 그리고 핑크빛을 띠는 것도 있지만, 꽉 찬 가을의 들판과 같은 황갈색, 주황, 분홍, 보라 등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푸른빛을 지닌 블루 토파즈는 인기가 많다. 맑은 하늘빛의 스위스 블루, 잉크 빛의 런던 블루, 그리고 핑크색 염료가 소량 섞여 있는 오렌지-붉은빛의 임페리얼 토파즈 (Imperial Topaz), 무지개처럼 빛나는 미스틱 토파즈 (Mystic Topaz) 등이 있다.
결국 삶의 중심이란, 어떤 빛이 쏟아져도 잎을 돌려가며 자신의 색을 찾아내는 조용한 성실함에 있다. 높은 하늘에 깊어진 바다, 단풍과 낙엽과 맑은 공기. 이 모든 가을의 색을 품은 토파즈는 11월의 탄생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