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보석에 관한 글을 쓰려 앉았는데 시작이 어렵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잠시 쉬어가기다. 시선을 돌리기 위해 책 한 권을 들었다. 읽기 시작한 첫 페이지의 검은 잉크 틈 사이로 커다란 구멍이 열리고, 나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둑한 정류장 앞이었다. 속도가 느린 세상. 버스 한 대가 멈추고, 젊은 여자가 내렸다. 그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투명한 망토를 두른 채 소설 속을 걷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 없었다. 누군가는 눈만 보이고, 누군가는 머리카락 사이로 코와 입술만 드러냈다. 삶에 밀려 바닥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얼굴을 그릴 여유조차 없다. 쉼 없이 달리는 리듬에 휩쓸려, 희미하게 남은 서글픔의 잔상만이 보일 듯 말 듯 내 마음을 무겁게 채웠다.
책을 덮고,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값비싼 보석들의 사진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의 화려한 표정을 접어 넣고, 천천히 화면을 닫았다.
보석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줄이 그어진다. 빛의 농도, 투명도의 단위, 값어치가 적힌 숫자들. 땅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자라난 그들에게 생경한 이름표가 붙는다. 누군가는 다이아몬드, 또 다른 누군가는 준보석이라 불리며, 그 이름 아래에 작은 서열표가 생긴다.
깎이고 다듬어지고, 빛을 받는 각도가 정해지면, 그들은 오디션 무대 위에 선다. 빛이 쏟아져도 눈을 감을 수 없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저 웃으며, 늘 반짝임을 유지해야 한다.
그들의 삶이 낯설지 않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빛을 흉내 내며, 깎이고 다듬어지는 삶.
수많은 경우의 수 속에서, 화학작용과 열과 압력이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 어떤 이는 루비가 되고, 또 다른 이는 이름 없는 돌이 된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어 낸 보석이야말로 그 값어치가 커진다고 하지만, 그 인고의 시간도 탄생의 순간에 이미 결정된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애초에 다이아몬드가 될 수 없는 수정이 다이아몬드를 흉내 내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날 것이다. 왜 나는 더 빛나지 않는가. 아무리 투덜거려도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선택할 수 없다는 냉정한 사실 앞에서, 이제 우리는 질문은 접고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삶이란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나’라는 원석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나만의 각도를 찾아 깎고 다듬는 일이다. 타인의 빛을 흉내 내지 않고, 나의 색이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깊이와 밝음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가장 나다운 반짝임을 가진 보석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빛은 화려함이 아닌, 깊고 사색적인 빛으로 우리의 삶을 천천히 이끌어 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잔향처럼 남은 온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반짝이며, 그렇게 우리는, 사라져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