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손가락이 빗이 되었다. 손끝이 머릿결을 따라가며 형태를 잡아주고, 집게 핀으로 고정한다. 눈을 감은 채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가끔 꾀를 부리고 투덜거릴 때가 있다. 머리핀을 집으려다 바닥에 떨어뜨렸고, 떨어지는 핀을 나도 모르게 발등 리프팅으로 받아치려다 실패했다. 핀은 바닥을 굴러 화장대 아래로 들어갔다. 손을 뻗자 닿을 만큼의 거리에 있었다.
플래시 불빛을 비추니, 그 근처에 작고 검은 물체가 있었다. 한쪽 끝은 뾰족하고 다른 한쪽에는 작은 검은 테두리. H의 발톱이었다.
검은 고양이 H.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를 잃었다. 집 앞에서 서럽게 울던 그 작은 소리에 문을 열어준 것은 어머니였다. 그날 이후, 그녀는 우리 집 첫 번째 고양이가 되었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집에서 자랐고, 집에서 길러졌지만, 길고양이의 프라이드를 잃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이가 든 고양이가 되어서야 함께 지내게 되어, 집사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 성격이 꽤 스트릿 했기에 그녀의 손톱자국은 잊을 만하면 내 손과 팔에 새겨졌다. 빨간 볼펜으로 채점하듯 ’이 건 틀렸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야’라며 오답으로 그어졌다.
고양이 H는 몇몇 단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먹는 것과 관련된 단어들과 ‘모기’. 처음으로 함께 보내는 여름에 모기를 잡겠다고 내가 손뼉을 치면 소리에 민감한 그녀가 놀라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마주치며 ‘모기’라고 외치며 설명을 덧붙였다. “너를 헤치는 게 아니야. 너와 나를 보호하는 거야.” 운이 좋게 잡았을 때는 ‘모기’ 하고 보여주면 냄새를 맡기도 했다. 반복하다 보니 그녀는 ‘모기’라는 소리를 들으면 눈을 반짝이며 두리번거리곤 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 언어로 충분히 대화하면 어느 순간 들리기 시작하듯, 그녀와의 대화도 그랬다. 공놀이하며 말을 건넸고, 영화를 보며 설명했고, 음악이 흐르면 멜로디를 흥얼거려 주었다. 가끔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느 날부터 그녀가 표현하는 소리가 다양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한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음의 굴곡들. 칙칙한 기분이 밝고 맑아지는 신기한 소리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야옹’ 하고 대답할 때면 그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먹지 않기 시작했다. 검사를 하고 입원도 시켰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어둡고 조용한 곳을 찾았다. 약해져 가는 그녀를 보며 내 시간도 마른 가지처럼 되어갔다. 마음에 들어 하는 장소에 물그릇과 밥그릇, 좋아하던 방석과 숨숨집을 옮겼다. 노트북을 들고 곁에서 일을 했다. 이름을 부르면 꼬리만 겨우 움직이던 그녀는 새벽이 오기 전, 고양이 별로 떠났다.
검은색 털이 사라져 갔다. 밥그릇과 물그릇도 치워졌다. 눈에 보이는 흔적은 하나둘 줄어들었지만, 그녀의 이름과 함께했던 기억은 방 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머리핀이 떨어졌던 날 화장대 밑에서 그녀의 발톱을 발견했다.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작고 투명한 용기에 넣어 서랍 안에 넣어 두었다.
Memento mori.
애도(哀悼) 주얼리, Mourning Jewelry.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유행했던 주얼리다.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버트 공의 죽음 이후 검은 옷과 주얼리를 착용하며 애도의 상징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고 가까이 두기 위한 방식이었다. 애도하는 방법,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는 방법이다.
반지에는 이름이나 날짜를 새기고, 머리카락을 유리나 수정 아래에 감추어 넣기도 했다. 브로치나 작은 핀으로도 만들어 심장 가까운 곳에 품었다. 펜던트나 목걸이 팔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고인을 그렸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직접 만져보면 엮인 머리카락은 꽤 튼튼하다고 하셨는데,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장신구를 만지는 일은 왠지 모를 거리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화장대 밑에서 찾아낸 고양이의 발톱을 버리지 못했던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리움이 차오르면 반지나 브로치가 없어도 우리의 마음 어딘가에는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새겨진다. 시간이 흘러 상처는 아물고 기억의 초점은 흐려지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이름이 속삭인다. 그때마다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조용히 우리를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