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으로 그린 판화

끌로드 드뷔시 - 바다

by 김예훈
"회화를 논하는 음악가도 없으며 음악을 말하는 미술가도 없다.
바다는 에고이즘을 발휘하는데 가장 적당한 곳이다"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는 바다를 사랑한 음악가였습니다. 그가 바다를 주제로 작곡한 3개의 교향악적 스케치 ‘바다’ (La Mer)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 힘입어 너무나 훌륭하게 바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바로 내 앞에 거대한 대양이 움틀 거리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미 드뷔시는 그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제2막에서 밤바다의 모습을 신비롭게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바다의 인상을 악보에 적었습니다. 그럼 드뷔시가 어떻게 음악으로 바다를 나타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끌로드 드뷔시


드뷔시의 '바다'는 전체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악장은 상기네르 섬들의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출판된 악보에는 ‘새벽에서부터 정오까지의 바다’ (De l’aube a midi sur la mer)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곡은 아주 약한 팀파니의 트레몰로 위에 콘트라베이스의 여린 음으로 시작됩니다. 이 소리는 마치 안개 자욱한 미명의 새벽을 연상시킵니다. 곧이어 이어지는 2대의 하프 연주는 밤새 고요했던 바다가 서서히 깨어나는 미묘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그 후 악기들이 점점 첨가되며 바다의 아침을 서서히 준비합니다. 트럼펫과 잉글리시 혼이 새벽을 깨우는 듯한 팡파르를 연주하며 곡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저 멀리 동이 트고 있음을 알립니다. 그 후 현악기가 연주하는 음형과 리듬은 파도의 움직임을 묘사하여 다채로운 바다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때로는 한가롭고 또 때로는 거친 파도가 일며 갈매기가 날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곡이 후반부에 다다르면 이제 본격적으로 거대한 태양이 저 멀리 떠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이 부분은 1악장의 하이라이트이며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제2악장은 '파도의 희롱' (Jeux de vagues)이란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제목처럼 다양한 모습의 파도에 대한 음악적 묘사입니다. 특히 타악기의 효과적인 사용은 파도의 섬세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도 매우 짜임새 있는 악장으로 2개의 중심 테마가 여러 악기들에 의해 변주됩니다. 제2악장은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백사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3악장은 '바람과 바다의 대화' (Dialoque du vent et de la mer)란 제목으로 거센 바람을 타고 일어나는 파도의 거친 모습과 폭풍우 후의 잔잔한 바다의 모습 등을 보여줍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시작되는 거친 음형은 바다에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징조가 있음을 예고합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비장한 듯한 트럼펫의 팡파르가 울려 퍼집니다. 이것은 1악장에서 보여준 트럼펫의 팡파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며 곧 본격적으로 폭풍우가 밀려옵니다. 계속되는 현악기의 급격한 음형의 연주들은 폭풍우와 파도의 분위기 묘사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한차례의 격렬한 폭풍우가 지나가고 바다에는 고요한 정적이 흐릅니다. 그 고요함 속에 목관악기들이 파도와 바람의 조용한 대화를 들려주고 다시금 바다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돌아가 힘차게 곡을 끝맺습니다.



드뷔시는 1905년 3월 5일에 '바다'를 완성하였고 그 해 10월 15일 파리의 라뫼르 관현악단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드뷔시가 한창 이 곡을 작곡 중일 때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대양이 부르고뉴 언덕의 경사진 비탈길을 어떻게 씻어 내릴 수 있겠느냐고 당신은 말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편이 현실보다 나의 감각에는 좋습니다. 현실의 매력은 사고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너무나 무겁게 덮쳐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1905년 영국 여행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바다는 영국 사람처럼 정확히 물결을 치고 있다. 깨끗이 청소되어 있는 잔디밭 같은 그 해변에는 뽐내는 제국주의자 영국인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놀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일하기에는 좋은 곳이랴! 하등의 잡음도 없고, 소음도 없다. 단지 상쾌한 기계적인 피아노가 있을 따름이다. 회화를 논하는 음악가도 없으며 음악을 말하는 미술가도 없다. 요컨대 에고이즘을 발휘하는데 가장 적당한 곳이다"


드뷔시의 ‘바다’는 음악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듣는 이들은 충분히 이 음악을 통해 바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다의 모습과 소리, 그리고 그 내음까지 그리워한다면 이 한 곡의 음악만으로 그 갈증은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드뷔시 '바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https://youtu.be/SgSNgzA37To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