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영원히 바꿔버린 날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by 김예훈
“그는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하였어.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야.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은 달라질 걸세!”


독일의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음악 작곡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가리켜 악성(樂聖)이라 부릅니다. 음악의 성자! 음악가에 있어서 이보다 더한 명예스러운 호칭이 있을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그를 악성이라 부를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그의 청각장애와 결부시켜 단순히 인간승리의 음악가로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또한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베토벤을 진정한 악성으로 이해하려면 그 이유를 그의 음악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성자와는 거리가 먼,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음악 안에는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감동과 기적, 이 모든 것들이 불멸로 살아 숨 쉬며 그를 악성이라 추앙하기에 부족함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영국 BBC가 2003년 제작한 영화 ‘에로이카 (Eroica)’는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의 비공개 초연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Orchestre Revolutionnaire et Romantique)’가 직접 출연하여 교향곡 전곡을 베토벤 당시의 악기로 연주하는데 18세기 오케스트라 및 그 시대의 정치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던 하이든이 영웅 교향곡을 듣고 평가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하였군…… 그는 작품의 중심에 그 자신을 두었어. 그리고 그는 그의 영혼의 일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야.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은 달라질 걸세!”


영화의 무대가 되는 영웅 교향곡의 비공개 초연은 후원자였던 로브코비츠 공작 저택에서 1803년 12월에 열렸는데 하이든의 평가처럼 영웅 교향곡은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것이었고 청각장애로 고통받고 있던 베토벤의 내면적 음악세계가 드디어 확립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우선 영웅 교향곡의 파격은 그 규모에서부터 압도적입니다. 그 당시 형식을 따라 4악장의 모습을 갖추고는 있지만 모든 악장이 확장되어 전체 연주 길이가 거의 1시간에 육박하지요. 당시의 일반적 교향곡의 평균 길이가 20~30분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영웅 교향곡은 ‘괴물’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급격한 리듬과 셈여림의 변화, 빈번한 스포르찬도 (특정한 음에 악센트를 넣어 강하게 연주하는 기법)와 조바꿈, 불협화음 등으로 인해 폭력적인 인상을 줄 정도로 강력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런 소리는 당시 청중들뿐만 아니라 귀족 취향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연주자들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니었죠.


그리고 ‘장송행진곡’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느린 2악장은 음악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매우 영적이고 감동적인 악장이며 이 것은 당시 음악을 단순한 유희의 도구로 여겼던 사람들 (특히 귀족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악장에 나오는 호른 3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편성)의 우렁찬 솔로와 4악장의 변주곡과 푸가를 통한 음악적 실험은 훗날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줌과 동시에 악기의 개량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roica_Beethoven_title.jpg 영웅 교향곡의 표지, 나폴레옹의 이름을 칼로 긁어낸 흔적이 남아있다.


영웅 교향곡의 가장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는 나폴레옹에 관한 것이지요. 실제로도 베토벤은 이 곡을 ‘혁명가’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생각이었지만 그가 황제로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군!" 하고 소리치며 표지에 적혀있던 나폴레옹의 이름을 지워버린 일화는 유명합니다. 당시의 계급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웅’으로 기대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3번 교향곡 속의 진짜 ‘영웅’은 청각장애라는 치명적 결점을 딛고 일어나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나갔던, 또 음악을 통해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는 '베토벤' 그 자신일 것입니다.


영화 <에로이카>의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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