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제2번
“불행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열중하는 것이다”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중에서 초기 작품인 1번과 2번은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선배 작곡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해 가는 과도기적 작품들입니다. 특히 교향곡 2번은 빈 고전주의 양식의 놀라운 진보를 들려줍니다.
제1악장의 서주는 1번 교향곡에 비해 매우 장대하고 깊이 있게 변화했으며 제2악장은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제3악장에서는 교향곡 처음으로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음악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음악형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철학과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이전까지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귀족들에 속해 있었고 대부분 그들의 유희를 위해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런 면에서 반항아였지요. 음악가는 특정 계급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닌 독립된 위대한 예술가로서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전까지 교향곡 3악장에서 사용된 미뉴에트는 우아한 귀족의 춤곡이었지만 ‘해학’이라는 어원의 스케르초는 매우 빠르고 익살스럽고, 거친 면도 있어서 귀족적인 이미지와는 상반됩니다. 베토벤은 이를 통해 귀족사회에 대한 자신의 반감과 시민계급을 대변하고자 했던 자신의 신념을 나타냅니다. 마지막 제4악장은 매우 힘이 넘치는 악장으로 베토벤의 열정과 유머의 반전이 돋보이는 악장입니다.
이런 음악적인 특징들뿐만 아니라 교향곡 제2번에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베토벤의 잔혹한 운명을 정복하려는 의지와 삶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베토벤은 청각장애로 고통받았고 30대 후반에는 전혀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베토벤 귀에 이상 징후가 온 것은 그의 나이 23세인 1798년 무렵부터입니다. 그는 이것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은밀히 여러 곳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고 마지막 방법으로 의사의 조언에 따라 1802년 빈 근교의 조용한 시골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여섯 달을 보내게 됩니다. 여전히 차도는 보이지 않았고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베토벤은 동생 칼과 요한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입니다. 이 편지는 일반적인 유서와 달리 죽기 직전에 쓰인 것은 아니지만 베토벤의 비통한 심정과 분노가 절실하게 적혀있습니다.
“6년이 넘는 동안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는 나는 분별없는 의사들 때문에 더 이상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않게 되었다. 열정적이면서도 활기 넘친 기질의 소유자이자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고독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내 곁에 서있는 사람은 멀리서 부는 플루트 소리를 듣는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니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32살의 젊은 음악가에게 주어진 시련은 너무나 비참했지만 결국 베토벤은 예술을 통해 운명에 맞서 나가겠다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이런 일이 조금만 더 계속됐다면 아마 난 내 삶을 끝장냈을 거다. 나를 다시 불러온 것은 오로지 나의 예술이었다. 아, 나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불러내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결국 베토벤은 음악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했고 곧이어 작곡한 것이 바로 교향곡 제2번입니다. “불행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열중하는 것이다” 그가 남긴 말처럼 베토벤은 이후 넘치는 창작열로 작품들을 써내려 갔는데 깊은 절망의 수렁을 지나온 삶의 애착이 더욱 강해졌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하고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에게 던지는 이런 삶에 대한 메시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제2번
과천시립교향악단 / 김예훈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