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제5번
"작곡가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야. 인간의 삶을 찬미하고 지켜야만 해”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Sergei Prokofiev, 1891~1953)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 작곡가였습니다. 9세 때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오페라를 작곡할 정도로 일찍이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13세 때 작곡가 글라즈노프의 권유로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학교 내 진보적 교수들이 해임되는 모습을 보며 불안과 긴장감의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1918년 발표한 교향곡 제1번 “고전”은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안겨다 주며 러시아 내에서 입지를 다지게 되지만 혁명으로 인해 내란이 발발하자 그는 같은 해 시베리아와 일본 등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을 합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미국 망명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으며 보수적인 미국 음악계는 그의 현대적 시도의 작품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곡가로서 보다는 피아니스트로 유럽 등지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1927년 구 소련의 거듭되는 요청을 이기지 못해 고국을 떠난 지 9년 만에 귀국하였고 공산화된 조국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인 작품들은 형식주의라는 공산당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호된 시련을 겪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틀 안에서 검열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53년 3월 5일 그는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그를 괴롭혔던 독재자 스탈린도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동료 음악가들과 친구들은 스탈린의 장례식에 강제적으로 참석해야 했고 프로코피에프의 떠나는 길은 그의 명성에 비해 너무나 쓸쓸하고 초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제5번은 그의 대표작을 꼽힙니다. 제4번 교향곡의 실패 후 15년간의 공백기를 지나 작곡한 교향곡 제5번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여름 기간에 작곡되었으며 곡을 완성하는 데는 두 달여 남짓 걸렸다고 전해집니다. 프로코피에프 본인은 이 작품에 대해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에 대한 찬가이며, 인간의 위대한 힘과 순수하고 고귀한 정신”에 대한 곡이라고 밝혔지만 소련 당국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 것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제5번을 사용하였습니다. 1945년 독소전쟁에서 레닌그라드가 해방된 것을 축하하는 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초연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며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의 작품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에 대해 심히 낙담하였고 3주 뒤 심장발작까지 일으키며 건강도 악화됩니다. 그는 1946년 교향곡 제5번으로 스탈린 상까지 받으며 사회주의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지만 아이러니하게 2년 뒤 악명 높은 즈다노프 비판의 희생양이 되어 서구화된 형식주의자로 낙인찍힌 후 남은 여생을 우울증과 패배감에 휩싸여 보내게 됩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제5번이 큰 인기를 얻으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46년 보스턴에서 쿠세비츠키가 이 작품을 초연한 후 미국의 유명 지휘자들이 앞다투어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며 1950년 미국에 매카시즘(McCarthyism,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 퍼지게 되고 이 여파로 1951년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유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이 작품을 연주하려던 지휘자 모리스 아브라바넬은 살해 협박까지 받기에 이릅니다. 다행히 연주회는 아무런 사고 없이 이루어졌지만 이 소식을 들은 프로코피에프는 더욱 절망에 빠지며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왜 이 작품을 연주한다고 해서 지휘자가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가? 음악은 인류와 영혼을 위한 찬가가 아닌가? 더군다나 교향곡 제5번은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을 위한 찬가인데... 내가 생각할 때 작곡가는 시인이나 조각가, 화가처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야. 인간의 삶을 찬미하고 지켜야만 해.”
교향곡 제5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이하게도 바로크 합주 양식에 가까운 느림-빠름-느림-빠름의 구조를 보입니다.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특징은 현대미술을 보는 듯한 다채로움 색채감과 예상치 못하게 진행되는 화성의 독특함과 신선함에 있습니다. 이런 자유분방한 그의 음악적 성향은 모차르트를 연상케 합니다.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제5번 2악장
베를린 필하모닉 / 카라얀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