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
2022년 봄, 우리에게 ‘해방’이라는 단어는 새롭게 다가옵니다. 바로 2년의 걸친 펜데믹으로부터의 해방, 곧 다가올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의 참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은 무엇보다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일 것입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은 작곡가의 고향 핀란드에서 100여 년의 걸친 러시아의 지배와 압정에 항거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심정을 대변한다고 하여 ‘해방 교향곡’으로 불리는 곡입니다.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로 추앙받는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는 우리에게 교향시 ‘핀란디아’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죠. 시벨리우스는 1865년 핀란드 내륙의 소도시 헤미린나에서 스웨덴계 핀란드 가정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의 재능을 보여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14세 때에는 바이올린의 매력에 푹 빠져버립니다. 후에 작곡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금도 위대한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19세 때 헬싱키 대학에 진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는 동시에 헬싱키 음악원의 청강생으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는데 결국 법대를 포기하고 음악의 길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합니다. 시벨리우스 음악의 특징은 핀란드 역사와 자연을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고 있으며 당시 19세기 서유럽 음악 시류였던 복잡한 심층적 구조 대신 음악의 구조를 단순화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7개의 교향곡을 남기며 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받습니다.
서양음악에서 교향악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매우 큽니다. 교향곡은 당시의 음악 조류와 작곡가의 역량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르입니다. 교향악은 오랜 기간 독일 악파가 주도권을 잡아 발전시켜 왔는데 하이든으로부터 시작되어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등을 거쳐 브루크너와 말러에서 그 정점을 이루며 사라져 갑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민족주의 성향의 작곡가들입니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체코의 드보르작,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구 소련의 쇼스타코비치가 대표적인데 그중에서 시벨리우스가 진정한 교향악의 계승자라고 평가받으며 20세기 교향악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깁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은 그가 36세 되던 해인 1901년에 작곡되어 1902년 시벨리우스 본인의 지휘로 헬싱키에서 초연되어 유례가 없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시벨리우스는 이 곡을 작곡할 당시 가족을 동반하고 이탈리아의 작은 해변 마을인 라팔로에 머물렀는데 아름다운 풍경과 야자수가 무성한 이국적 분위기는 핀란드의 긴 겨울에서만 살아온 시벨리우스에게는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교향곡 제2번은 라팔로의 자연에서 느낀 그의 감동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어 시벨리우스의 ‘전원교향곡’이라고도 불립니다. 또한 그의 눈에 비친 라팔로의 마법과도 같은 환상적인 느낌은 돈 환의 전설과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게 하였고 이것을 테마로 만들어 2악장의 소재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4악장에서 펼쳐지는 승리와 환희의 음악은 이 교향곡의 절정을 이루는데 영웅적인 피날레는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에 비견됩니다. 특히 비극과 고통, 좌절과 혼돈이 찬란한 승리로 마무리되는 이 곡의 결말에 대해 '나의 작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시벨리우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인들은 러시아의 압정에 저항했던 자신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을 ‘해방’에 대한 자신들의 찬가로 받아들였습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 유카-페카 사라스테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