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인생의 과업
내가 과연 아이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래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섣불리 ‘네’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남편은 나에게 자녀를 출산하는 것 또한 남들과 경쟁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처음엔 ‘아니 뭐 이런 걸로 경쟁해?’라고 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완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것 또한 경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은 늘 남들과 비교해서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냥 중간, 평균에서 조금 위쪽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 만2년 3년 차인 우리 부부가 따로 피임을 하지도 않았고, 인공수정도 시도해봤지만 임신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경쟁 사회에서 뒤처졌다고 생각한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남들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만들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아침마다 보던 신혼부부가 있는데, 나랑 결혼도 비슷하게 한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봤는데 여자분이 핑크 배지를 가방에 달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임신했다는 것은 축복을 해줘야 할 일인데 이걸 경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임신한 것을 보고 하루 종일 우울해하는 나의 인성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은 유난히 직장 동료들이 육아에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 아기가~’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나는 할 말도 없고, 너무 우울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한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혼자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니 진짜 이건 내 인생 최대의 우울감인 것 같았다. 가끔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사람을 만나 관계 맺는 것을 엄청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어울리는 것은 좋아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아무도 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외향형인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우울한지 곰곰이 자기 분석을 해보았다.
나는 임신을 내 인생의 사이클에서 한 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0대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20살에 대학을 가야 했고,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20대 후반에는 결혼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의 인생 과업은 모두 이뤘는데 30대 초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과업을 이루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심하게 이야기해서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에 우울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3번의 인공수정이 실패하고, 시험관을 할지 말지 한약을 먹으며 고민을 하고 있다. 잠시 나의 몸에 쉼과 휴식을 주고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나의 정신 건강을 정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몸만큼이나 마음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깊게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