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3개월 여행의 끝에서

by 펜얼티밋

3개월 여행의 끝에서 가슴 깊이 느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와서 다행이다. 대학교 1학년만 하고 와서 다행이다. 아무런 목표도 열정도 없이 강의실에 앉아 당장 십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길을 생각하노라면 단 하나의 강의도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과 동기들 사이에서 뒤쳐짐을 느끼며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무의미’를 어깨에 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막막함에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때 내가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다. 그대로 2학년을 강행했더라면 그 어떤 목표도 열정도 없이 좀비처럼 단기성 시험 공부만 하며 진짜 배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나에 대한 열정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휴학과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내 홈그라운드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만났고, 이런저런 삶의 형태를 보며 ‘과연 내가 살고 싶은 삶의 형태는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었다.


여행 중 흥미를 느낀 건 여러 가지였다. 인테리어, 출판, 디자인, 번역 등 다채로운 분야의 랜덤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를 보더라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보려고 하는 내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는지, 왜 여기선 이게 인기인지 내가 아는 티끌만큼의 사회·문화 지식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들어맞는 설명을 찾으려고 했다. 영국인에게 차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서적인 측면에서 한 번 보고, 사회역사적인 측면에서 한 번 보며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사회학을 다시 공부해야겠다 생각했다.


여행 도중 전과를 여러 번 고려한 것도 사실이나, 세상을 인간의 시각에서 탐구해보고픈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덕분에 이게 내 가슴을 뛰게 한다는 것도 배웠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내가 강의실에 앉아있는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목표와 열정을 찾았고, 내가 뭘, 왜 하고 있는지 알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안 해봤던 걸 해보고,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보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이야기해보라고 말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것보다 잠깐 헤매고 옳은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게 낫지 않은가.


두 번째, 대학 가는 법밖에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능력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었다. 그게 필요하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다. 대학 가는 것 이외 노력은 다 ’딴 짓‘으로 치부되는 12년의 공교육에서 내가 얻은 거라고는 추억과 배움 따윈 기억나지 않는 고등학교와 우울증, 후회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알렉스와 케이티를 만나고 내 십대를 손해본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연애하고, 싸우고, 깨지고, 여행하고,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느낄 동안 나는 딴 짓 안 하는 모범생이 되어, 다시 말해 수능 끝나면 다 잊어 버릴 단순 암기와 문제 풀이를 하루 열네 시간 하는 열일곱 살이 되어 3년 또는 그 이상을 그렇게 하도록 요구 받았다. 프로젝트는 생활기록부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면 다 딴 짓이었고, 책도 생활기록부 독서 기록에서 그럴 듯해 보이는 게 아니면 딴 짓이었다.

정작 여기저기 도전해보고 실패하여 ’나‘에 대해 탐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21세기형 인재는 비판적 사고가 중요하다 운운하지만 정작 학교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면 '시간 낭비하는 건방진 애'로 찍혔다.


나도 케이티와 알렉스처럼 내가 어떤 식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어떤 취향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중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런 질문을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던져도 '수업 진도는 안 나가고 딴 짓 한다'고 욕 먹는 교사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2학년 법과 정치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주었다. 『한국이 싫어서』는 청년층 입장에서 느끼는 한국의 문제점을 날카로우면서도 누군가의 일기처럼 쉽게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내가 느꼈던 끝없는 우울과 막막함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수능 교과 내용과 관련 없는 얘기를 한다고 불평했다. 당장 대학 가는 게 눈앞의 목표이자 최종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 대신 자기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사는 게 최종 목표인 걸 당연시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오직 대학 간판만을 위해 쓰기에 12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다. 그 시간을 조금 나눠 스스로와 세상을 탐구할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졸업생 취업률이 아니라 졸업생 행복도 또는 인생 만족도라면 어떨까?


세 번째, 내가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달 동안 하루 종일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의사의 필기체 손글씨를 알아봐야 했고(그렇다고 잘 알아보게 됐 다는 건 아니다), 한동안 뭘 하든 내가 하는 방식은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며, 농담도 못하고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정원일도, 요리도, 페인팅도, 심지어 대화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고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미성숙한 아이 같았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이 모든 걸 견뎌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못하고 겁내는 것을 어떻게든 마주해서 지나온 것이다. 영어로 말하는 게 어색한 상황에서도 영상 통화로 첫 호스트 에런과 인터뷰를 했고, 지구 반대편 모르는 사람 집에 가 몇 달 일 도와주며 살다오는 여행길에 올랐고, 밤 12시 몽트뢰유 밤거리에 혼자 떨며 낯선 남정네를 기다렸으며, 그 남정네에게 성추행당한 뒤 온몸을 떨면서 탈출했고,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름에도 4살 아이와 함께 살았다.


나 스스로를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뚝 떨궈놓았기에 처음에는 부족함밖에 느끼지 못했다. 나에 대한 실망과 좌절, 스트레스가 컸다.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심지어 나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서 내가 온 길을 뒤돌아봤을 때 거기에 좌절만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아진 내가 있었다.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을 때는 부정적인 것밖에 안 보였지만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그래도 내게 그 모든 걸 무사히 마칠 능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배웠고 이전보다 덜 멍청하고 꽉 막힌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보였다.


책을 읽으면 책을 소화할 시간이 따로 필요하든 경험도 나중에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여행에 대해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구나’ 다. 스스로를 용감한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오히려 롤러코스터도 못 탈 정도로 겁이 많은 편에 속한다. 그래도 다행히 세상 살아갈 정도의 용기는 있는 것 같다. 여행할 당시에는 스스로가 괴로울 만큼 창피하고 실망스러웠는데 지금 보니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완전 쓸모없는 여행은 아니었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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